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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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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재발견 질문과 저항의 힘

서울 후암동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와 말테 리노 목사
등록 2018-01-05 04:53 수정 2020-05-03 04:28
2017년 12월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후암동 중앙루터교회에서 말테 리노 목사(왼쪽)와 최주훈 목사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한국 교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아름답다.

2017년 12월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후암동 중앙루터교회에서 말테 리노 목사(왼쪽)와 최주훈 목사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한국 교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아름답다.

엄동의 칼바람이 뺨을 후려치던 2017년 12월27일 오후, 서울 남산 기슭 후암동 언덕에 자리한 아담한 외관의 중앙루터교회를 찾았다. 소박한 목사실에서 눈이 맑은 두 사람을 만났다. 한국 사람이 다 된 독일 사람 말테 리노(60) 루터대 교수와 한국인 루터학자 최주훈(49) 담임목사. 말테 리노 교수는 중앙루터교회 협동목사이기도 하다. 미소가 아름다운 두 목사가 전하는 500년 전 종교개혁의 본질은 “질문하는 힘”이었다. 고장난 한국 교회를 때리는 마르틴 루터의 목소리가 다시 살아난 듯, 해맑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금세 약속한 2시간이 지나갔다. 한국에 온 지 25년이 지난 말테 리노 목사는 내내 유창한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었다.

종교개혁 본질은 ‘질문하는 힘’ 500년 전 종교개혁의 본질이 ‘질문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

말테 리노 목사 한국 교회의 많은 목사가 질문 아닌 질문을 한다. 정답이 뻔한 질문을 던진다. 루터는 전혀 달랐다.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도록 했다. 정해진 답을 주는 법이 없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십계명 조항을 예로 들어보자. 루터는 ‘남의 것을 빼앗는 것’만을 도둑질이라고 하지 않았다.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지 않는 것도 도둑질’이란 생각을 보탰다. 내가 서울역 앞 노숙인들을 그냥 지나쳤다고 해보자. 나는 도둑질한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질문을 자신한테 던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면서 대답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루터의 힘이고 종교개혁의 힘이다.

최주훈 목사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질문하는 힘이었다. 루터 이전까지는 라틴어 성경밖에 없었다. 라틴어 성경에 나온 “죗값을 치러야 천국에 간다”는 구절을 근거로 교회는 면죄부를 팔았다. 루터가 헬라어(그리스어) 성경을 찾아보니 그 내용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거였다. 1100년 동안 속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교회가 언로와 질문을 막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루터가 목숨 걸고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아무나 성경을 읽고 자기 판단으로 질문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현실은 왜 이렇게 다를까’ 질문하지 않겠는가. 거기에서 저항이 생겨난다. 저항은 여럿이 손을 잡는 저항으로 발전한다. 질문, 저항, 소통, 그렇게 만들어가는 새로운 공동체, 이 네 개가 개신교의 핵심 키워드다. 개신교의 영어 표현도 프로테스탄트, 곧 ‘저항’이잖나.

두 사람은 중앙루터교회를 이끄는 단짝 담임목사다. 종교개혁 500년의 주인공이어야 할 중앙루터교회에선 지난해 특별히 성대한 행사를 치르지 않았다. 대신 리노 목사는 , 최 목사는 이란 책을 펴냈다. 두 사람 책의 공통점은 쉬운 표현으로 풍성한 영감을 던진다는 것이다. “루터는 어머니가 아이한테 말하듯이 쉬운 언어로 글을 쓰라고 했어요. 성서를 번역할 때도 일부러 시장을 많이 다녔어요. 시장통 언어를 쓰려고요. 그래야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는 거지요.”

저서에서 “한국 교회, 개신교라고 말할 수 있나”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더라.

말테 리노 한국 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으로부터 너무 멀리 갔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스위스로 건너가면서 모습이 달라졌고 다시 프랑스에서 네덜란드, 영국을 거쳐 신대륙으로 갔다. 미국의 개신교는 경건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변질을 거듭한 미국 교회가 한국에서 또 토착화 과정을 겪은 것이다. 루터가 원했던 교회의 모습과 미국 교회는 엄청나게 다르다.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루터의 종교개혁조차 잘 모른다. 많은 신학자가 스위스의 종교개혁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칼뱅은 엄격한 법학자였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구분해 결정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루터는 사상의 다양성을 중시했다.

최주훈 목사 칼뱅이 확실성을 강조한다면, 루터는 변증법적 긴장성을 강조했다. 칼뱅의 신앙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실하게 가르친다면, 루터는 모순의 양쪽에서 팽팽히 당기는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한국 교회는 목사가 CEO”
말테 리노 목사가 자기 방에 걸어둔 마르틴 루터 초상화 옆에 섰다.

말테 리노 목사가 자기 방에 걸어둔 마르틴 루터 초상화 옆에 섰다.

한국 교회의 추한 민낯이 자꾸 드러난다. 명성교회 세습 사건을 어떻게 보나.

말테 리노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와 친하다. 돈을 너무 좋아한다. 교회를 개인의 소유물로 여긴다. 목사가 종교 비즈니스의 최고경영자(CEO)이고, 아들한테 그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 루터교회에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모든 교회 재산이 총회 소유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너무 크거나 작을 때, 문제가 생긴다. 명성교회처럼 너무 크면 욕심이 생긴다. 반면 너무 작아서 목사 월급을 제대로 못 주는 교회도 많다. 그런 교회의 목사들이 은퇴 뒤 생계를 위해 교회 부동산을 매각하는 일도 벌어진다. 작은 교회들이 협력해야 한다. 교회 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

최주훈 목사 명성교회 세습은 100% 잘못됐다. 부와 권력의 대물림은 사라져야 한다. 세습 절차의 정당성도 굉장히 결여돼 있다. 형식적 모양만 취했다. 교인들이 모두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다. 다만 교회 세습을 모두 나쁘다고 봐서는 곤란하다. 자식 말고는 이어갈 사람이 없는 가난한 교회도 많다.

제주의 방주교회에선 교회를 설립한 재단 이사장이 목사를 해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말테 리노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공동체다. 교회의 주인은 자기 재산으로 교회를 세운 재단 이사장이 아니고 목사도 아니다. 주님이다. 재단 이사장이 너무 나서면 안 된다. 중세 유럽에서도 영주가 개인 교회를 세우는 일이 있었다. 그 경우에도 영주가 주민을 섬긴다는 책임의식이 강했기에, 교회를 자기 재산으로 악용하는 일은 없었다. 한국 사회는 기업적 성향 또는 졸부 근성이 너무 강하다. 내가 투자했으니 내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한다. 반면 사회적 책임의식은 약하다.

저서에서 한국 교회의 선교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한국 교회, 무엇을 돌아보고 어디로 가야 하나.

말테 리노 1993년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코이노니아(Koinonia)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일치’ 또는 ‘공동체’라는 뜻인데, 도그마의 반대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극도로 배타적이었다. 선교를 우선시하던 시대에는 배타성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에게 간단히 설명해야 하므로 배타성이 유용했다. 교회 내부에서도 안과 바깥을 나누는 안팎 사상이 심하다. 경계선을 그어두고 안과 바깥을 나누는 교파주의 도그마에 빠져 있다. 우리 교회만 교회이고, 경계선 바깥의 다른 교회는 비판한다. 이제 선교의 시대, 교회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새 시대를 끌어갈 새 개념이 바로 코이노니아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하면 진리와 가까워질 수 없다. 견해가 다른 쪽과도 대화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최주훈 목사 성경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고귀하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것이다. 코이노니아를 ‘소통’이나 ‘교제’란 말로 풀이할 수 있겠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소통하는 세상을 지향한다. 기독교 역사는 (서로 다른 의견의) 공존의 역사였다. 무지개 같다고 할까. 공존할 때 (무지개 같은) 참다운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

말테 리노 교회가 사회로부터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다면 교회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사회개혁과 사회복지에 앞장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목사는 여러 교인 중 한 명일 뿐” 목사들이 높은 곳에서 일방적으로 설교한다. 교권주의에 빠진 목사들이 먼저 바뀌어야 하지 않나.

최주훈 목사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묻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다. 목사가 이야기하면 다 먹혀들었다. 이제는 묻는 시대다. 교인들이 목사보다 더 똑똑하다. 목사도 교인도,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교인 각자가 질문하고 옳은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말테 리노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교회의 중심은 공동체 전체이다. 루터는 세례를 받으면 누구나 사제가 될 수 있다는 ‘만인 사제론’을 폈다. 목사는 교인 중 한 명일 뿐이다. 루터교회 목사는 목회를 할 때만 목사다. 전철 탈 때, 휴가 갈 때는 목사가 아니다. 아무 데서나 목사 태를 내는 목사는 루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게 교권주의의 시작이다. 독일 교회는 한국 교회보다 훨씬 평등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담임목사 개념도 없다. 한국 교회의 설교 내용도 문제다. 순종하라는 메시지가 너무 많다.

최주훈 목사 교권주의를 멀리하는 작은 교회의 목사도 많다. 그런 목사들은 교회 안에서 ‘나도 (교인들과 같이) 한 표’라고 생각한다. 후암동에는 교단과 교파가 다른 9개 교회가 협의체를 운영한다. 교회와 동사무소가 협력해서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자는 교동협의회를 잘 꾸리고 있다.

두 목사는 목사들의 교육 시스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반 대학을 졸업한 뒤 신학대학원 3년 만에 목사가 되는 지금의 교육제도가 엉터리 목사를 양산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지식수준 높은 교인들이 이제는 스스로 성서를 이해하고 표현하려고 한다. 상호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다. 목사의 역할은 위에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간에 일치(코이노니아)를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신학 말고도 인문학 등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가까운 교회에 나가세요”중앙루터교회의 운영 방식이 독특하다고 들었다.

말테 리노 1958년 한국 루터교회를 처음 설립했고, 후암동의 중앙루터교회는 세 번째 루터교회다. 전국에 49개 있는 한국 루터교회의 어머니 역할을 한다. 루터교회 목사는 60여 명에 불과하다. 천연기념물보다 수가 적은 멸종위기 종자라고 우리끼리 이야기한다. 1950년대 루터교회 선교사가 처음 한국에 왔을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 이미 교회가 많으니 교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자고 방향을 잡았다. ‘루터란아워’ 같은 라디오 선교방송을 했는데, 마지막 멘트가 “가까운 교회를 나가세요”였다. ‘우리 루터교회에 나오라’고 홍보하지 않았다. 교회가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생각을 실천했다.

리노 목사는 “우리 목사님들 다 착하다”고 말했다. “다른 교회의 교인이 찾아오면 등록을 말려요. 그 교회 그대로 다니라고 거듭 권유하죠.” 한국의 루터교에선 해마다 교회 2개를 새로 설립하고, 그 교회를 끌어갈 예비 목사의 2배수인 4~5명을 경기 용인 루터대의 신학과 대학원생으로 받아들인다. 대학원생의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 목사가 됐을 때 교회와 사택, 급여, 아이들 학비까지 모든 ‘돈’을 책임진다. 천천히 꾸준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착한 목사들을 길러내고 있다.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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