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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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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은 협동조합인가 주식회사인가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 “농협의 존재 이유는

이익극대화 아니고 농가소득 올리는 것”
등록 2017-06-27 16:29 수정 2020-05-03 04:28
김현대 선임기자의 ‘김현대 기자의 질문’을 이번호부터 시작한다. 50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한 언론인 고 헬런 토머스는 생전에 “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왕이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김 선임기자는 ‘질문’을 통해 고정관념 없이 취재원에게 용감하게 질문하는 기자의 본령에 충실할 예정이다. ‘질문’의 첫 상대는 220만 농민을 대표하는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이다. _편집자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이 6월20일 인터뷰를 마치고 저서 <절박한 농심이 나를 깨우다>를 펼쳐 보였다. 그는 책에서 “농협이 그동안 (농민조합원 잘 살린다는) 목적은 잃어버리고, (이익 많이 낸다는) 목표만 챙겼다”고 자기비판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이 6월20일 인터뷰를 마치고 저서 <절박한 농심이 나를 깨우다>를 펼쳐 보였다. 그는 책에서 “농협이 그동안 (농민조합원 잘 살린다는) 목적은 잃어버리고, (이익 많이 낸다는) 목표만 챙겼다”고 자기비판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농협이 힘이 센지 내가 힘이 센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농협 개혁이 그만큼 어렵다는 토로였다.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을 만나, 임기 1년여를 돌아보는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 3월 취임한 김 회장은 전남 나주의 시골 농협에서 잔뼈가 굵은 39년 농협인이다. 1988년 선출직 전환 뒤 첫 호남 출신 농협 회장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정부가 허락한다면 북한의 생산자단체와 만나 “남는 쌀을 (북한에) 보내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연 30만~40만t씩 남는 쌀을 북한에 보내고 대신 우리한테 부족한 잡곡을 받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산하 5천 명뿐 아니라 전체 회원농협의 1만 명 등 농협 전체 비정규직 1만5천 명을 정규직화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회원농협까지 1만5천 명 정규직화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이어 농협의 비정규직 5천 명을 정규직 전환한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실현 가능한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준비해온 일이다. 올해 초 범농협 일자리창출위원회를 만들었다. 중앙회 산하 정규직화 대상자는 5226명이다. 내실 있고 지속 가능한 정규직화 모델을 만드는 실무 작업을 하고 있다. 완전히 마무리되는 데 3년 걸릴 것 같다. 정규직화 모델을 만드는 대로 전체 회원농협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면 비정규직 1만 명을 추가로 정규직화할 수 있다. 농협 전체로 1만5천 명 정도 정규직화를 기대한다.

농협중앙회의 상호금융까지 합치면 농협 금융부문의 전체 자산 규모는 신한금융지주회사를 압도한다. 국내 최대 금융회사다. 농민들이 생산한 전체 농산물의 절반은 농협을 통해 시장에 출하된다. 농협 조직은 방대하고 복잡하다. 농협 조직은 5단계로 구성돼 있다. 먼저 농민조합원 225만 명이 뿌리를 구성한다. 이들의 출자로 지역·품목별 1131개 회원농협을 구성한다. 사령탑인 농협중앙회는 그다음 3단계에 위치한다. 1131개 회원농협들의 100% 공동출자로 설립됐다. 농협중앙회는 다시 NH농협금융과 NH농협경제라는 주식회사 형태의 양대 지주회사를 거느린다. 그 아래 마지막 5단계인 31개 주식회사가 자회사로 배치돼 있다. 전체 직원은 10만 명에 가깝다. 신용 취급 점포가 5818개에 이른다.
농협의 어려움은 조직이 크고 복잡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협동조합인가, 주식회사인가? 일반 금융회사들과는 무엇이 다른가? 농협의 은행·보험·증권사 직원들은 멀리 떨어진 225만 농민조합원을 궁극적인 주인으로 인식하는가? 질문은 쏟아지는데, 실타래는 꼬여 있다. 농민조합원은 조합원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학자는 학자대로, 각자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주장을 편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금융 당국이 보는 농협이 다르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이해하는 농협이 다르다.

목적은 없고 목표만 남았다

취임 뒤 농협이념중앙교육원을 세웠다. 수십 년간 잊고 있던 협동조합 DNA를 깨우는 작업일 텐데, 냉소적 시각도 없지 않다. 가치도 좋고 말도 좋으나,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는 분위기가 있다.

오랫동안 농협 직원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일반 기업과 다를 바 없이 농협의 이익 극대화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농협도 그저 은행이 아닌가, 농산물이나 비료를 파는 회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서는 농협의 미래가 없다. 농협이 협동조합이라면, 최대 이익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만큼의 이익만 내야 한다. 농자재는 최저 가격으로 공급하고, 농산물은 높은 가격으로 구입해줘야 한다. 그래도 사업이익이 발생하면 조합원에게 이용배당으로 되돌려줘야 한다. 그래야 농협의 이익은 적어지더라도 농가소득이 올라갈 수 있다. 이제 (취임) 1년 됐다. 그동안 협동조합 이념 교육의 효과는 20% 있었다고 본다.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근본적 차이를 이해하는 임직원이 이제 20%는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갈 길이 아직 멀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라는 책을 펴냈다. 농협 직원들의 필독서다. 거기에서 “(농민조합원 잘 살린다는) 목적은 없고, (이익 많이 낸다는) 목표만 남았다”고 지금까지의 농협을 자기비판했다. “다른 은행들과, 다른 유통업체들 따라잡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니 농협은 늘 경쟁업체보다 한발 느리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2012년 정부 주도의 사업구조 개편이 시행된 뒤로는 경영체적 목표만 부각됐습니다. 수익목표만 가슴에 남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수익성도 좋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로 협동조합 이념마저 무너져 우리의 정체성이자 영혼을 잃었습니다.”

서남부채소농협·근동농협 좋은 모델

김병원 회장이 2016년 5월17일 농협중앙회를 방문한 국제협동조합연맹(ICA) 모니크 르루 회장과 환담을 나눴다. 르루 회장은 “협동조합의 목표는 최고의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수익을 얻으면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제공

김병원 회장이 2016년 5월17일 농협중앙회를 방문한 국제협동조합연맹(ICA) 모니크 르루 회장과 환담을 나눴다. 르루 회장은 “협동조합의 목표는 최고의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수익을 얻으면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제공

새 정부는 (특정 품목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품목별 협동조합 육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잡은 미국의 ‘선키스트’와 ‘웰치스’, 뉴질랜드의 ‘제스프리’와 ‘폰테라’도 모두 품목별 협동조합이다. 농협이 앞서 그 길을 닦아가야 하지 않나.

선진국과 우리는 태생적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평균 경지면적이 1.5ha에 불과하다. 거기에 이것도 심고 저것도 심는다. 그래서 종합농협 형태를 빌린 것이다. 축산과 원예, 인삼 같은 품목별 농협 성공 사례도 있다. 전남 무안의 서남부채소농협도 좋은 모델이다. 신용사업은 하지 않고, 마늘과 양파만 전문적으로 취급했다. 10년 만에 사옥을 짓더라. 그동안 창고에서 지내면서도 늘 흑자를 냈다. 밀 협동조합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작은 농협들을 모두 품목별 전문화로 끌고 가려는 건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몇 곳이나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농협조합원 중 65살 이상 노인이 50% 넘는다는 통계를 봤다. 고령농을 위해 영농을 대행해주거나 재가요양돌봄을 제공하는 작은 협동조합이 많이 생기고 있다. 농협이 농촌협동조합 복합체의 플랫폼 구실을 해야 하지 않을까. ‘1마을 1협동조합’ 운동도 좋겠다.

강화도 근동농협 사례를 들고 싶다. 보건복지부에서 10억원 지원받아 근처 농협들과 컨소시엄으로 재가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흑자도 냈다. 도별로 시범센터를 운영한 뒤 두루 확산시킬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절반을 내고 농협중앙회 30%, 회원농협 20% 부담하는 식으로 갈 수 있다. 요양돌봄을 제공하는 농민에게는 농외소득을 올릴 수 있어 더더욱 좋다. 지역별 실정에 맞는 복지사업 사례를 발굴하겠다. 복지는 정부의 역할이지만, 농협은 농협대로 농촌복지를 거드는 게 옳다. 정부가 못하는 일을 농협이 할 수 있다.

김병원 회장은 “전체 농민을 3등분해서 본다”고 했다. “고령농 중심 노동집약적 농사를 짓는 분이 70~80% 된다. 기술과 자본을 결합해 농사짓는 분, ‘스마트 팜(farm)’ 역량이 있는 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농협은 앞서가는 20~30% 농민을 키우는 데 힘을 쏟으려 한다. 그들이 안정적 사업모델을 만들 때까지 모자라는 자금과 기술, 브랜드와 디자인 역량을 농협이 보충해주겠다는 거다. 농협이라는 4천 개 유통망에 태워 판로도 열어줄 수 있다.” 농협 내부 조사에서 지역주의, 파벌주의, 학벌주의, 권위주의, 무사안일주의 같은 조직문화를 바꿨으면 하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핵심은 인사 문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농협은 예측 가능한 인사를 했지만, 지역별 편중 인사가 문제였다. 첫 인사를 할 때 조합원 수와 조합 수, 농협중앙회 직원 수, 이 셋을 평균해서 도별 쿼터를 만들었다. 부장 인사까지 그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했다. 다만 편중돼 있는 것을 고르려고 하니, 하루아침에 되기 어려운 사정은 있더라. 앞으로도 지역균형 인사를 꼭 할 것이다. 그게 무너지면 잡음이 난다. 또 하나, 숨은 일꾼을 발탁하고 있다. 조직의 역동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농협은 지역성이 강한 조직이다. 인사고과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일선에서 몸을 던져 일하는 것이다. 그런 지부장들을 찾아 ‘농협인상’을 시상하고, 인사 때 반드시 발탁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에도 지부장 한 사람을 자회사 사장으로 발탁했다.

쌀값 하락으로 농민의 고통이 크다. 새 정부에 정책을 제안한다면.

쌀농사 짓는 농민이 절반 이상이다. 정부가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쌀생산조정제를 실시해야 한다.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심어 사료 부족을 해결하고, 과잉생산에 따른 만성적 가격 하락을 막는 방책이다.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축산 쪽도 어렵다. 기업형 축산을 하는 사람들은 현대화 시설을 했지만, 전통 방식으로 축산하는 사람들 형편은 열악하다. 2018년까지 무허가 축사를 양성화한다는 법령이 제정됐는데, 정부의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

남는 쌀 북한에 보내야

남아도는 쌀을 북한에 보내는 방안도 있다. 농협 회장이 나설 수 있지 않나.

한 해 쌀 생산량이 420만~430만t인데, 그중 30만~40만t이 남는다. 이것을 북한에 보내면, 우리 쌀값도 지지되고 북한 동포도 도와줄 수 있다. 복잡한 대북관계 때문에 정부가 당장 나서기는 어려울 텐데, 정부가 허락한다면 농협이 북한 생산자단체와의 교류에 나설 수 있다. 농협은 북한에 양돈장을 지어준 경험도 있다. 우리가 쌀을 주는 대신, 부족한 잡곡을 북한에서 들여오는 방안도 좋은 아이디어다.

농협의 가장 큰 목표는 농민조합원의 소득 증대다. 구체적 방책이 있나.

우리 농가소득은 10년째 3천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농협의 존재 이유가 뭔가. 결국 농가소득을 끌어올리는 일이지 않나. 5천만원이란 목표를 세워 100가지 대책을 만들었다. 농가소득은 농업소득 30%, 농외소득 40%, 이전소득 30%로 구성된다. 태양광발전으로 농외소득을, 고금리 상호적금 상품을 만들어 이전소득을 끌어올리는 등 다양한 실천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올해 들어 총 5600억원의 농가소득을 더 만들어냈다. 전 직원이 스마트폰으로 매일 농가소득이 어디에서 얼마나 늘어나는지, 세부 현황을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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