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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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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된 농정 사령탑 “소는 누가 키우노”

장관·비서관·선임행정관 줄줄이 지방선거판으로

농민의원 김현권 “현 정부 농정개혁 의지 있는가”
등록 2018-04-17 21:33 수정 2020-05-03 04:28
김현권 의원은 국회에 진출한 농민 출신 의원이다. 김 의원은 “농업예산을 직불금 중심으로 전환”하는 농정개혁을 강조했다. 김현권 의원실 제공

김현권 의원은 국회에 진출한 농민 출신 의원이다. 김 의원은 “농업예산을 직불금 중심으로 전환”하는 농정개혁을 강조했다. 김현권 의원실 제공

“소는 누가 키우노!”

농민들이 뿔났다. 농업정책을 이끌던 수장 셋이 한꺼번에 ‘책임’을 포기했다. 정치판으로 떠났다. 3월15일 김영록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장관직을 그만두는 이임식을 가졌다. 그는 곧바로 6·13지방선거 전남도지사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같은 날 전남 나주 도의회에서는 청와대에 사표를 던진 신정훈 전 농어업비서관이 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다.

“손뼉을 맞춰 농정개혁하라 했더니, 손뼉을 맞춰 농정을 버리는가.” “농정개혁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났다.” 농업계에서는 자조와 한탄의 소리가 이어진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더불어민주당의 전남도지사 후보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여, 실망감을 더욱 키웠다. ‘농업 버리기’는 두 사람에 그치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신 비서관을 보좌하던 이재수 선임행정관이 그보다 앞서 사표를 던졌다. 그는 춘천시장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농정개혁 외치는 유일한 의원</font></font>

“이렇게 다 자리를 떠나면, 소는 누가 키우노?”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4월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질문을 던졌다. 경북 의성에서 한우를 키우던 김 의원은 비례대표로 20대 국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에 처음 들어왔다. 농민 출신으로 국회에서 농정개혁 목소리를 내는 사실상 유일한 인물이다.

장관과 비서관, 선임행정관이 한꺼번에 지방선거판에 뛰어들었다. 농정 사령탑이 붕괴했다. 참담하다.

농업계 원성이 크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참 어려운 일이다. (장관과 비서관이 떠나는 것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농업에 대한 사회 전체의 관심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거다. 농업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 지 오래다. 그러니 농업계의 인재 풀이 새로워지지 않는다. 앞물을 밀어줄 뒷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왔다가도 떠난다. 농정개혁을 내 문제로 여기고 피 터지게 싸우는, 이거 하나는 끌어안고 쓰러지더라도 함께 가겠다는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다. 언론도 농업에 무관심하고 잘 모른다.

공감한다. 지난 2년 동안 홀로 농정개혁을 외친 셈인데, 어떤가. 외롭지 않나.

많이 외롭다. 재작년 쌀생산조정제 도입 예산을 확보하려고 뛰어다녔다. 기획재정부 반대로 못했는데, 본예산 통과 직전에 국회에서 혼자 반대토론을 했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서글픈 마음이었다.

어떤 사람이 새 농식품부 장관이 되어야 할까.

새로운 농정 철학과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장관을 맡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수동적이고 방어적이었다. 수입 개방을 전제로 두고, 피해 농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니 농정은 없고 농업예산 몇조원을 썼다는 기억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제, 농업을 적극적으로 바라보는 대전환을 해야 한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농업이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할지, 설계도를 새롭게 그려서 농업계와 국민과 소통하고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그게 장관의 몫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업비 중심 예산, 직불금 중심으로” </font></font>
김현권 의원이 지난 3월 경북 영천 포도밭의 눈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김현권 의원실 제공

김현권 의원이 지난 3월 경북 영천 포도밭의 눈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김현권 의원실 제공

“잠시 머무르다 정치판으로 떠날 사람이 또다시 장관을 맡지 않았으면 한다”는 기자의 바람을 말하면서, 김 의원한테 “직접 장관을 맡아보면 좋지 않겠나”라고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는 국회를 지켜야죠”라는 모범답안이 돌아왔다. “농정개혁은 장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청와대와 국회, 신임장관이 의기투합해야 한다. 국회에서 예산과 입법을 뒷받침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기대했던 농정 변화는 거의 없었다. 농민단체인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은 농정 수장들이 지방선거에 동시 출마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3월 중순 성명을 내고 노골적인 서운함을 표시했다. “도대체 누구와 농정개혁을 도모해야 하는가. 농정의 근본과 철학을 바꾸겠다고 공약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농정개혁 의지를 밝히지 않았다.”

농정개혁의 동력은 있는가. 문재인 정부가 농정개혁에 의지라도 갖고 있는가.

“농정의 틀을 새롭게 짜겠다”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이 차츰 실망하는 것 같다. 대통령 농정 공약이 국가정책기획위원회로 넘어가면서 많이 희석됐다. 직불제 중심으로 농정을 전면 개편하겠다는 내용도 실종됐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농정에 관심 없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 소리도 들리다. 사실 그렇지 않다. 대통령의 농업에 대한 애정과 농정개혁 의지는 확고하다. 대통령 뜻을 헤아려 허심탄회하게 농정을 이야기하고 큰 그림을 그릴 존재가 없는 게 답답하다. 현실적으론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위원회를 조속히 설치해 그 역할을 떠맡도록 해야 한다. 농식품부 스스로 개혁하기를 기대할 순 없지 않나.

김 의원이 생각하는 농정 적폐는 무엇인가.

결국 돈 문제다. 선진국에선 농업예산의 절대 비중이 농민들 주머니로 직접 꽂히는 직불금이다. 우리 예산은 여전히 사업비 중심이다. 사업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이 얽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농정 적폐의 핵심이다. 사업 꼭지마다 복잡한 지침이 있고, 그것을 관료들이 장악한다. 이른바 ‘농피아’가 생겨나는 뿌리이다. 농피아는 퇴직 후에도 그 길목길목에 취업한다. 선진 농업에는 복잡한 사업 시행 지침 자체가 없다. 농정 적폐 청산은 사업비 위주로 편성된 예산 구조 자체를 과감하게 바꾸는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농정개혁 또 다른 축은 조직 쇄신</font></font>그것 말고 다른 농정 적폐는?

농정 조직이다.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과 농어촌공사는 30년 동안 거의 안 변했다. 이 조직을 수술해야 한다. 농진청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박사를 보유한 두뇌집단이다. 농어촌공사도 6천~7천 명의 거대 조직이다. 새로운 미래 농업에 걸맞도록 구조와 체질을 바꿔야 한다. 농식품유통공사도 기획재정부 농산물 수입 쿼터를 관리하고 물가 관리를 보조하는 역할에 치우쳐 있다. 농민이 생산한 농식품 판매를 담당하는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농정개혁의 큰 축은 그렇게 두 가지, 농업 예산의 직불금 전환과 농정 조직의 쇄신이다.

농협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

우리 농협의 한계는 두 가지다. 중앙회 중심이고, 지역별 체제라는 것이다. 농협은 여전히 지역 단위로 움직이면서 동네 권력 행세를 하고 있다. 농민들은 이미 지역이 아니라 작목 중심으로 바뀌었다. 농협도 작목별 조직으로 가야 한다. 중앙회 중심이 아니라 작목별 협동조합들이 중심이 된 연합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 개헌안에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천명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렇게 헌법이 바뀐다면, 농업의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나.

헌법에 명시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담는다는 것은 농민이 농업의 가치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국민 전체가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농업이 나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명시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농정을 짜는 근본이 된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농민도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농민이 환경을 지키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농민단체도 그런 점에서는 아쉽다.
농민단체들이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먼저 나서서 살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기 정화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농민단체를 이끄는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다보니, 잘 나서지 않는 게 현실이다. 축산 악취와 분뇨 문제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농민들도 자기 허물을 자기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다만, 최근 축사 적법화 조처는 아쉬운 점이 있다. 축사 악취와 분뇨를 잡기 위한 일방적 규제 조처만 있다. 축산직불제나 축산분뇨 자원화 같은 유인책이 빠져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농촌 청년세대 집중 양성해야”</font></font>영국은 우리와 같았던 농식품부 조직을 1990년 초반 환경과 농촌을 묶는 환경농촌식품부로 개편했다. 그런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선진 농업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잘 활용한다. 농업은 인간에게 먹거리, 삶의 터,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생태를 보전한다. 그리고 우선 눈으로 볼 때 농촌이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아름답지도 않고 냄새도 난다. 지금의 농촌은 농민들의 생존 터이기만 한 게 아니다. 온 국민의 휴식처이다.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한다. 영국처럼 환경농촌식품부로 바꾸든 바꾸지 않든,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 농촌으로 가는 정책을 펴야 한다.

김 의원은 마지막으로 “농촌 청년의 역할”을 강조했다. “농촌에서 청년 세대가 실종됐다. 긴 관점에서 보면, 농업의 가장 큰 문제는 농사지을 다음 세대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청년들이 농촌에서 정착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줘야 한다. 과거 농정은 기업농, 전업농, 강소농 같은 소수의 억대 (수입을 올리는) 농부를 양성하는 데 예산을 집중했다. 이제는 그 돈을 농촌의 다음 세대를 양성하는 데 집중시켜야 한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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