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연극·뮤지컬 관객 withyou(위드유)’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바람피운 배우자를 참을 수 없을까, 성폭력을 저지른 배우자를 참을 수 없을까.
딸내미를 조심시켜야 하는가, 아들내미를 조심시켜야 하는가.
우문이다. 둘 다 둘 다다. 굳이 꼽자면 바람피운 배우자가 그나마 감당할 여지가 있을 듯하다. 적어도 타인의 존엄을 짓밟는 범죄는 아니니까. 대신 내 존엄은 내가 지키마. 품 안에 있을 때는 아들들을 더 잘 가르쳐야 한다. ‘노(No)는 노’라는 것을 정확하고 단호하게 일깨워줘야 한다. 딸들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일찌감치 자기성찰을 한다. 때론 검열도 한다.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존중하는 길이고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타인도 존중할 수 있다.
협박이나 폭행이 없는 ‘비동의 간음’은 입법 한계 탓에 처벌이 쉽지 않다고 한다. 피멍이 들거나 피칠갑을 할 정도로 저항하지 않는 한 가해자를 형사처벌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가만히 당하면 피해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죽어야 인정되는, 때론 죽어도 인정되지 않는, 끔찍하고 한심한 법망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내가 ‘나’를 반평생 온전히 지키고 살아온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많은 ‘본보기’와 ‘버팀목’이 있었다. 학교에서 배웠다면 훨씬 좋았을걸, 사회에 나와서 배웠다. 가령 “회식 자리에서 ‘나쁜 손’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포크로 찍어버려라”(언론인 김선주), “혹시 집적대는 개새끼가 있으면 곧바로 알려라”(한의사 이유명호). 나는 장단 맞추듯 “네, 그리고 술 취해서 기억 안 난다고 할게요” “개망신은 알아서 시켜주시리라 믿을게요” 착실히 대답하며 사회생활을 했다.
비교적 양질의 조직에서 일했으나 도처에 ‘나쁜 놈’들이 있었다. 조직 밖에는 더 우글댔다. 한 동료가 술자리 추행을 당했다. 나는 피해자를 데리고 나왔고 다음날 가해자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너 어제 어디서 누구에게 이런 짓을 했다. 내가 다 보고 기억하고 적어놓았다. 한 번만 더 그러거나 말이 들리면 이 메시지 네 마누라한테도 보낼 거다. 혹시라도 뭉개면 다음 단계가 있으니 각오해라.” 가해자는 그길로 피해자에게 싹싹 빌었다. 사실 다음 단계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함께한다’는 용기만 있었다. 남성 공채 정규직들이 꽉 잡고 있는 대부분의 회사 인사과는 믿을 수 없었다.
잃을 게 많은 가해자일수록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지점을 공격해야 한다. 한 친구는 임원인 상사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어느 날 그를 회사 비상계단으로 불러냈다. 그 자리에서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나 이 회사 어렵게 들어왔거든. 근데 너 때문에 그만두고 싶거든! 내가 혼자 그만둘 거 같냐.” 그리고 마무리 멘트. “×만 한 새끼, 승진은 개뿔, 밥줄부터 끊길 줄 알아라.” 몇 날 며칠을 이 악물고 연습한 결과다. 불타는 연기혼을 선보이고 친구는 몇 날 며칠을 앓아누웠다.
실명을 까고 반복해서 알려도 가해자들은 꿈쩍도 않는다. 성범죄라는 고질적 ‘생활 적폐’가 고작 일부만 드러났을 뿐인데 온 세상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만큼 뿌리가 넓고 깊다는 방증이다. 일부 입건된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조차 어떤 처벌을 받을지 가늠되지 않지만, 대부분 무탈하다. 빼도 박도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허울뿐인 반성문을 내거나 고개 한 번 숙이는 게 고작이다. 최근 거론된 인사치고 ‘제대로’(어쩌면 재빨리) 시인한 이는 내가 보기에 단 한 명이었다. 그나마도 피해 당사자에게 그 뒤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까지 스스로 밝혀야 제대로 된 공식 사과다.
컬링 스톤같이 짱짱한 아이들이 자라며 움직인다. 온몸으로 쓸고 닦아 반듯한 길을 내주는 피해자이자 생존자, 발언자들께 엎드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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