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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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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 돼버린 ‘중국의 꿈’

겉으론 만인의 행복 외치면서 뒤에선 이주노동자 꿈 빼앗는 시진핑 정부의 ‘중국몽’
등록 2017-12-09 22:01 수정 2020-05-03 04:28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 베이징 다싱구의 임대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 베이징 다싱구의 임대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대한 민족의 부흥을 실현하는 게 중화 민족 최대의 꿈이다. ‘중국몽’은 국가의 부강, 민족의 부흥, 인민 행복의 실현을 뜻한다. 이것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3월 취임 때부터 제시한 ‘중국의 꿈’이다. 건전한 국가체계와 가치관 아래 모든 국민들이 행복하게 공존하고 세계에 중국의 힘과 영향력을 보여주고 함께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중국몽은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핵심 사상이 됐다. 모든 정책은 이 이념을 따라 설계된다. 하지만 요즘 벌어진 한 사건을 보면 중국몽이 중국에서 잘 실현되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11월18일 베이징 근교 다싱구의 한 아파트에서 큰불이 나 18명이 사망했다. 이 아파트는 안전 기준에 못 미치는 건물이었고, 숨진 이들 대부분은 이주노동자였다. 중국 시골은 발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은 수도 베이징으로 이주해 이주노동자가 된다. 그리고 공장 노동자,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등이 되어 고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 때문에 다싱구를 비롯한 베이징 근교엔 수많은 공장과 주택 등 복합형 이주자 아파트나 마을이 생겨났다. 대다수 건물은 안전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또 현행 중국의 규정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은 베이징에서 장기 체류할 수 없어, 대부분은 불법 신분으로 이곳에 산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된 결과 베이징은 교통난, 대기오염, 전력과 물 공급, 범죄 등 심각한 도시문제를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자들이 베이징 시민들이 꺼리는 고된 일을 맡으면서 지역 서민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중국 공문서와 언론에서는 이들을 ‘저단인구’라 한다. 사회 최하층 계급이란 뜻이다.

최근 몇 년간 베이징 당국은 이주노동자들을 쫓아내려 했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베이징시 정부는 이튿날 안전표준을 위반한 시내 아파트 2만 5천 곳에 강제 철거를 하러 나섰다. 방법은 매우 폭력적이었다. 당국은 이주자들에게 1~3일 안에 떠나라고 했다. 철거팀은 심야에 주민들이 잠자고 있는 아파트에 들이닥쳐 방의 유리창과 가구, 기계 등을 부수고 떠나라고 협박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새집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향에 돌아가거나 도시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수십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이번 철거로 거주지, 재산, 직장을 잃게 됐다. 시민과 비정부기구(NGO)는 무료 숙박과 취직 정보를 정리해 인터넷에 올리며 이들을 지원하러 나섰지만, 몇 시간 뒤 삭제됐다. 이번 철거에 대해 일부에선 마치 나치가 유대인을 집단 제거한 것 같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베이징시 당국은 이번 사태에 비난 여론이 들끓자 “저단인구를 쫓아낸 게 아니다. 저단인구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배상과 이주 절차 없이 시 당국이 도시 안전을 명목으로 벌인 철거 때문에 더 심각한 사회 갈등이 생겼다. 저단인구란 말 자체에 이미 차별이 깔려 있다. 가난한 이주노동자들은 더 잘살려는 꿈을 품고 베이징에 왔는데, 결국 이 꿈은 철거 과정에서 무너졌다.

이는 국제관계에만 주목하는 대다수 한국 독자들이 모르는 중국몽의 현실이다. 인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민주적 소통이 안 되는 중에 생겨나는 중국몽은, 누군가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양첸하오 대만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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