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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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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만 정상이면 뭐하냐고요

극단적으로 좌절하고 혐오하는 젊은이·여성들에게 정부란 무엇인가

<한겨레21> 페미니즘 특강 마지막 회,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의 진단
등록 2017-12-05 16:42 수정 2020-05-03 04:28
10월11일 시작된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연속 강의가 11월29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 강사로 나선 이는 연속 강의의 첫 강좌를 맡았던 여성학·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씨였다. 그는 이날 ‘좋은 정부와 나의 삶’을 주제로 젠더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 정부이며, 이 정부 아래서 여성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희진씨는 “기대할 게 없다”는 부정적 전망을 감추지 않았다.
페미니즘과 민주주의를 화두로 내걸고 열린 8차례의 강의엔 총 416명이 참석했고, 이 가운데 100명은 전 강의를 모두 들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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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전 달력을 넘기다 깜짝 놀랐다. 12월20일에 ‘대선’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민주화 386과 문화권력 90년대 학번의 결합

문재인 정부가 지난 5월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나는 이제 (고된 지적질을 그만두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임명이 강행되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 강의의 원래 제목은 ‘문재인 정부와 젠더’였다. (탁 행정관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에서 젠더 문제는 손댈 수 없는 ‘언터처블’ 같은 것이 됐다. 이런 현상을 돌아보면,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젠더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이끄는 세력은 누구일까.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386(세월이 흘러 486, 586이 된)세대다. 이들은 1980년 5월 광주의 충격과 ‘87년 체제’ 속에서 탄생했다. 이 40~50대 남성 운동권이 한국 사회의 주류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던 때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였다. 한국 사회가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에 진입하기 전이었다. 이들은 87년 체제의 결과물인 민주주의와 (1980년대 중반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으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동시에 누렸다.

이들은 한국 현대사에서 처음 대중화한 정치세력이다. 제주 4·3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한국전쟁으로 많은 지식인이 월북하거나 납북됐다. 그러나 386세대는 민주화운동 경력을 자산으로 제도 권력에 효율적으로 진입했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대규모 학살이나 납북 등으로 인한) 인적 손실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여러 ‘낙인’으로부터도 자유롭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상징적 낙인은 ‘친일파’다. 386이 공격당하는 유일한 빌미는 ‘종북’인데 이제 종북 낙인은 효과가 떨어졌다. 언젠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트위터에 “나는 종북(從book)”이라고 쓴 적이 있다. (웃음) 이들과 (그 바로 아래 세대인) 나영석, 김태호 등 문화자본을 가진 90년대 학번이 결합하면서 두 집단이 상호 보정적 관계가 됐다. 탁현민 행정관도 90년대 학번 세대에 속한다.

이 두 세력이 결합한 문재인 정부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정부의 가장 큰 자산은 다름 아닌 대통령 본인이다. 그에겐 일반적인 한국 남성이 가지지 않은 여러 면모가 있다. (웃음) 수줍어하면서도 부드럽고 진정성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주사 맞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한번 떠올려봐라. (웃음) 게다가 그는 영남 출신이다. 흠이 없다.

문제는 이 정부를 살아야 하는 여성과 젊은이들의 삶이다. 문재인 정부든 어느 정부든 우린 금융유통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속해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일어난 서울 지하철 구의역 사고처럼, 이 체제 아래선 현장실습에 나간 10대 고등학생이 프레스기에 깔려 죽는 사고가 이어진다. 고실업, 불안정 노동을 경험하는 청년 세대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이케아·다이소 같은 자본이다. 값싼 원료, 값싼 노동으로 값싼 제품을 생산해 적은 돈으로 어떻게든 삶이 유지된다. 이 과정에서 부의 재분배나 축적은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그 결과 여러 참사가 벌어진다.

혐오 누그러뜨릴 범퍼 만들어야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여기서 극에 달한 청년들의 좌절감을 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와 같은 말을 하면 내 세대는 자신을 ‘새’와 동일시했다. 근대적 인간은 새다. 리처드 바크의 을 생각해보라. 인간은 꿈을 가진 갈매기다. 그러나 현재 젊은이들은 자신을 ‘벌레’와 동일시한다. 이들에게 새는 자신을 위협하는 무서운 독수리다. 젊은이들이 벌레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늦게 일어나 새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하나’라는 식이다.

혐오는 이런 사회적 환경에서 생겨난다. 혐오는 분노가 아니다. 분노는 상대방과 나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저항적 행위다. 혐오는 혼자만의 투사다. 현재 한국 사회엔 혐오가 만연해 있다. 심지어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혐오를 한다. 좋은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런 혐오가 어디서 오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이들의 혐오는 개별적 좌절에서 오는가, 체제에 대한 좌절감 때문에 오는가.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이들의 혐오를 누그러뜨릴 범퍼를 만들어야 할까. 이런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40~50대 남성 지배세력의 관심은 이런 현실보다는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미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민이 잘살 수 있게 방법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치다. 하지만 이들은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어떻게 보이고, 어떤 위상을 갖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대한민국이 어떤 ‘국격’을 가지는지, 정치 전선을 어떻게 독점할 것인지가 관심의 전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의 ‘독도새우’ 해프닝을 생각해보라. 이는 일제강점이라는 역사적 경험으로 인한 식민지 콤플렉스와 분단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비극을 겪으며 한국의 지배세력은 주권과 영토가 있는 정상 국가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하다.

지금은 국가라는 것 자체가 허상이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이라고 하지만 이미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 ‘내셔널’은 없다. ‘글로벌 시티의 연합체’만 있을 뿐이다. 이케아, 노스페이스, 스타벅스가 전세계 어디든 똑같이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보다 삼성이나 LG가 익숙하다. 우리는 글로벌 마켓의 소비자로 존재할 뿐이다. 이렇게 세계화가 진전된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은 거르고 조정하는 필터에 국한된다. 그것을 이명박 수준에서 하느냐, 문재인 수준에서 하느냐의 차이다. 현 정부는 이에 대한 진단이 없다. 지배세력은 정상 국가 열망에 정신이 빠져, 고실업·저출산 문제나 여성들이 호소하는 혐오와 젠더폭력의 피해 등 실제 사회문제에는 무관심하다.

직접 만나 정상성을 확인하자

이 정부를 어떻게 견인하고 비판해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한국 사회는 스마트폰 속 세상에 갇혀 (원치 않는 지적엔) 귀를 닫는 팬덤으로 분절돼 있다. 그럴수록 오프라인에서 깨어 있는 시민들이 모여 서로의 정상성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리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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