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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영화에 ‘여성’은 없다

손희정 대중문화 연구가가 말하는 음모론 시대의 남성성과 검사 영화
등록 2017-11-21 08:52 수정 2020-05-02 19:28
11월15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열린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여섯 번째 강의 주제는 ‘음모론 시대의 남성성과 검사 영화’였다. 강사 손희정씨는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로 등의 책을 썼다. 이번 강의에서 그는 음모론이 득세하게 된 정치·사회적 배경을 분석하고, 음모론과 남성성에 대한 상상력이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검사 영화에서 관철되는지 분석했다. _편집자
손희정 대중문화 평론가가 강의하고 있다.

손희정 대중문화 평론가가 강의하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의 정치적 열정과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는 음모론이다. 음모론은 고통을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고통이 해결되지 않았다. 이걸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명박근혜’라는 완전히 실패한 구멍에 빠져버렸다. 그렇다면 당면한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중세처럼 종교가 고통을 설명할 수 없고, 독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이데올로기도 고통을 설명할 수 없다. 음모론이 득세하는 지점이다.

천편일률적인 ‘검사 영화’ 서사 구조

200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의 감정 상태를 상징하는 한국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2003년 개봉한 의 명장면. 경찰(송강호, 김상경)이 그토록 잡고 싶어 했던 용의자(박해일)가 깜깜한 터널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진실은 저 터널 안쪽으로. 그렇게 놓친 진실이 지금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이나 블랙리스트 같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등 검사 영화의 서사 구조는 대개 비슷하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너서클(내부자들) 안에 거대한 음모가 있고, 정의 구현과 복수를 위해 그 음모를 파헤칠 수 있는 것은 ‘흙수저’ 출신 검사라는 상상력이 전부다. 여기에 ‘흙수저 검사’를 대체하는 짝패는 경찰이다.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정의로움과 당당함과 남성다움을 가진 경찰이 권력의 음모를 파헤치기도 한다. 영화 의 황정민, 의 마동석이다. 의 조승우는 경찰이었다가 검찰이 된 인물이다.

시민검사, 시민경찰 연대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여성은 없다. 내부자들도 정확히 남성-동성사회적 내부다. 이 안에 여성의 역할은 서로 주고받는 선물이거나, 흠집을 내기 위해 갖고 있는 히든카드이거나 승진을 위한 사다리다.

질문해볼 것은 검사 영화의 욕망이 정말로 흙수저/시민의 복수와 정의 구현에 있느냐다. 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백윤식·이경영 등 권력자들이 은밀한 고급 술집에서 여성의 몸덩어리를 옆에 두고 술을 먹는 장면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봤을 때 내부자들이 응징되는 것에만 즐거움을 느꼈을까. 관음증과 함께 내부자들이 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진 않았을까. 검사 영화가 남긴 유행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류승범 대사), “어이가 없네”( 유아인 대사)는 모두 권력자들의 것이었다.

엄마 없는 가족 이야기

하나 더, 영하 에서 조승우가 연기한 캐릭터에겐 어머니가 없다. 한국 사회는 외환위기 뒤 경제난을 ‘아버지의 위기’로 치환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해고되고 비정규직이 된 여성의 고통은 지워졌다. 아버지의 기를 세워주고 아버지가 재난을 극복하게 해줄 거라는 상상력 안에서 엄마 없는 가족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들 끝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영화는, 여성은 시체로만 등장하는 이거나 역시 여성은 없고 중국동포를 희화화하고 대상화한 같은 영화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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