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대 16.
이 숫자는 역대 개봉 영화들을 관객 수로 순위를 매겼을 때 1~10위 영화의 남성 주연과 여성 주연의 성비다. 그러나 양적으로 드러나는 수치보다 질적 격차는 더 크다. 여성 주연은 주인공이라기보다 여성 출연자 중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외적 수치만 비교해도 38 대 16이다.
기존 영화에서 여성 배역이 가지는 결함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수치로 입증된 역할 비중이고, 둘째는 주체성이다. 작가는 남성 캐릭터에게 문제를 주고 그것과 부딪치고 해결을 시도하게 하며, 극복하거나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것을 이야기로 만든다. 그러나 여성 캐릭터의 문제는 그냥 사회문제의 일단으로 보여주고 끝난다. 여성 캐릭터에게는 주어진 문제를 극복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것이 여성의 대상화다.
내가 쓴 시나리오에서도 여성 인물들에게 한계를 준 대목이 있었다. 국민참여재판에 선 두 변호사 대석(유해진)과 진원(윤계상 분)이 여검사 유인하에 대해 나누는 대화다.
“대석이 팔꿈치로 진원의 옆구리를 툭 치고 저거 좀 보라는 듯이 턱짓한다. 굽이 높고 좁은 스틸레토힐. 대석이 휘파람 부는 시늉. 진원은 씩 웃는다.
대석: 국민참여재판 전담 검사라 배심원 다 홀려 잡수겠다, 이거지.”
나를 포함한 남성 창작자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해왔을까. 변명하자면 남성이 여성을 적대하는 세계의 구조적 문제를 재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남성인물에게 주어진 문제는 문제, 문제의식, 충돌, 극복의 과정으로 이야기를 뽑아내지만 여성 인물에게 주어진 문제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 안에서 문제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재생산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질문들이 나를 바꿨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 과연 이게 충분한가? 공평한가? 이런 성비가 나오는 데 무의식적 우선순위가 투영되지 않았나?
2010년 한 인터뷰에서 “소설 속 여성 캐릭터가 왜 다 그 모양이에요?”라는 질문에 나는 “우리 세계가 그 모양이어서 그대로 베꼈다”고 답했다. 그러나 6년 뒤 ‘한국문학의 여성 혐오’라는 특집 기사에서 대담자로 참여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보다 주변화하는 것이야말로 한국문학의 치명적인 장애인데, 이게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지, 질환자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마루타’(실험도구) 중 하나로 내 작품들을 기꺼이 제공하고 싶다.”
이제 문화 소비자의 역할을 생각해보게 된다. 문화라는 전체 생태계를 볼 때 만드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보는 수용자의 목소리가 압력이 될 수도 있다. 창작자들은 에고가 강하다. 인정받고 싶어 한다.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자신이 바뀔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저를 바꿨듯, 창작자에 대한 압력과 발화는 지금 구제 불능으로 보이는 다른 창작자들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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