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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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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페미니스트, 아닙니다

기생충학자 서민 <한겨레21> 페미니즘 특강

“성차별 없는 사회 위해 남녀 같이 노력해요”
등록 2017-10-24 17:23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8ABD">기생충학자라는 보기 드문 지적 배경을 지녔다. 삐딱하며 군더더기 없고 속 시원한 글쓰기로 칼럼니스트로서 입지가 단단하다. 최근에는 방송인으로서 귀여운 모습까지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정체성 하나가 추가됐다. 메갈리아의 ‘여성 혐오에 대한 미러링’이 논란이 될 때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후 칼럼니스트 데뷔 뒤 그다지 먹어본 적 없던 온갖 욕을 먹고 있다. 서민은 엎어진 김에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드러내기로 했다. 에 칼럼을 연재했다. 칼럼을 모아 책 를 펴냈다. 책 표지에 저자는 이렇게 소개된다. ‘남자 페미니스트 서민’.
10월18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열린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두 번째 강의는 남자 페미니스트 서민이 맡았다. 그가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남자 페미니스트로서의 고충은 무엇인지, 온라인에서 드러나는 한국 남성의 심리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풀어낸 2시간의 강의 여정에 참가한 ‘수강생’들은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강의가 끝나자 객석의 말문이 터졌다. 한 20대 남성도 ‘남자 페미니스트’로서의 고민을 드러냈다. “저는 흔한 20대 후반의 무직 남성입니다. 저는 건물주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고, 아무런 권위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회가 잘못됐다, 서로가 혐오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래 남성 집단에서 이 말을 하기가 꺼려집니다. 그들에게 배척당하는 건 아닐까, 왕따당하는 건 아닐까 해서요. ‘여자에게 관심 받으려 한다’는 비난도 많이 받습니다. 여성들과 논의할 공론장도 없습니다. 페미니스트 여성에게도, 또래 남성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아요.”
한 여성은 가족 안에서부터 ‘여혐’을 느낀다고 했다. “대학에 와서 페미니즘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남’(‘한국 남성’의 줄임말로, ‘된장녀’에 대한 미러링으로 온라인상에서 쓰는 단어)이란 단어를 보고 주위의 첫 ‘한남’이 아빠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도 남동생이 아니라 저한테만 집안일을 시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여기’ 2강은 곳곳에 흩어져 있던 페미니스트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218장의 파워포인트 강의 자료를 현란하게 선보이며 수강자들에게 용기와 웃음을 준 서민 교수의 강의를 요약 전달한다. _편집자 </font>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가 <한겨레21> ‘지금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두 번째 강사로 섰다.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가 <한겨레21> ‘지금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두 번째 강사로 섰다.

전 30살까지 보통 남성이었습니다. 혹자는 저를 ‘어릴 때 왕따당하는 중 여자가 친절하게 해줘 페미니스트가 됐다’고 하는데, (웃음) 그 당시 남자는 물론 여자도 저한테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여자분들도 저를 따돌리는 데 많이 동참해주셨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페미니스트가 된 건 아닙니다. 처음으로 저를 일깨워주신 분은 강준만 교수입니다. 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으며 성차별의 현실에 대해 처음 알게 됐어요. 이 말을 듣고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니, 세상은 정말 기울어진 운동장이더라고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페미니즘을 책으로 ‘영접’</font></font>

그때부터 페미니즘 책을 탐독했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은 정희진 선생님의 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도 읽었는데 이건 너무 어렵습니다. 페미니즘을 처음 공부하시는 분들은 읽지 마세요. 학을 뗄 수 있습니다. 당시엔 페미니즘 관련 책이 별로 없어서 나오는 대로 다 읽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공부하는 기생충도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게 됐어요. 그랬더니 암수 관계가 좋은 기생충이 훨씬 더 잘 살더라고요. 회충과 편충, 전형적인 쇼윈도 부부예요. 잠자리를 한 뒤부터 바로 내외해요. 아이도 돌보지 않아요. 당연히 멸종했죠. 요충은 교미 후 수컷이 도망하고 암컷이 독박육아를 합니다. 몸속에서 알을 품다가 사람 항문까지 먼 길을 간 뒤 거기서 출산을 해요. 그리고 사람이 항문을 긁게 하려고 항문을 간질이는 일을 하다가 과로사로 죽어요. 이 독박육아로 요충은 지금도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기생충은 주혈흡충입니다. 주혈흡충 수컷은 가운데 큰 홈이 있어요. 이 홈에서 암컷이 원하면 언제든 쉴 수 있고, 여기다 암컷을 태우고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먹이도 수컷이 구해요. 하등동물 중 거의 유일하게 일부일처제인데 주혈흡충 암수가 같이 있을 때 다른 암컷을 넣어줘도 주혈흡충은 바람도 안 피워요. 고환이 7개라 남성성도 넘치는데 말입니다. (웃음) 이렇게 암수 다정한 주혈흡충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꼭 박멸해야 할 병원체 6’에 포함됐고, 박멸시키려고 엄청 노력하는데도 매년 수많은 감염자를 만들며 번창하는 ‘강한 기생충’입니다.

제가 페미니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동안 세상엔 여성 혐오가 심해졌어요. 제가 보기에 여혐을 하는 이유는 여성의 입을 닥치게 하려는 거예요.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은 여혐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입니다. 여자가 피해자인 경우 가해자를 옹호하고, 없는 사실을 꾸며서 만드는 ‘주작’도 서슴지 않습니다. 여자가 목소리를 내면 떼로 달려들어 입을 닫게 만듭니다.

‘호식이두마리치킨 CEO의 성추행 의혹’이 보도됐을 때를 보죠. 처음 달리는 댓글들은 굉장히 신중합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보자” “꽃뱀 우려가 있다”. 김 여사 욕할 때도 이런 신중함을 발휘해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다 여자가 합의를 해주니까 ‘역시 꽃뱀이었다’라며 환호합니다. 물타기도 남성들이 잘 쓰는 수법입니다. 전혀 관계없는 기사에 ‘여성부 폐지’ ‘여자도 군대 가라’ 같은 댓글을 다는데, 그때마다 이 댓글들이 베스트 댓글이 됩니다.

저는 이렇게 여성을 대상화하고 ‘맘충’ 등으로 혐오하는 세상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을 여성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백인을 끌어들이지 않고 인종 문제 해결이 어렵듯, 남성이 같이하지 않으면 성차별 완화도 어렵다’고 봅니다.

제가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래서입니다. 일단 저는 남자니까 여성들처럼 위협을 받지 않아요. 게임방송 유튜버인 갓건배라는 여성은 남성 유튜버로부터 공개 살해 위협을 당했잖습니까. 저는 남성이어서 그런지 ‘서민 죽이러 가자’는 결사대는 조직되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저는 대학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라 고용도 안정적입니다. 김자연 성우는 메갈리아에서 파는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일하던 게임업체에서 해고됐죠.

<font size="4"><font color="#008ABD">남성 페미니스트의 외로운 싸움</font></font>

다만, 이 일이 외롭기는 한 것 같아요. 온라인 사이트 가운데 오늘의 유머와 일베는 정반대 성향의 조직인데 ‘메갈리아를 옹호한 뒤부터 양쪽에서 같이 욕을 먹어요. 페미니스트 진영에서도 저를 공격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출연했던 라는 프로그램에서 저더러 “여자에게 사랑받으려는 생존형 페미니스트거나 페미니즘이 돈이 되기 때문에 하는 생계형 페미니스트일 것이다”라고 얘기했거든요. 그 이후 생계형 페미니스트가 저를 욕하는 사람들의 단골 메뉴가 됐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페미니스트 해서 돈 번 거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발언 이후 책이 더 안 팔립니다. 안 그래도 욕을 엄청 먹고 있는데 ‘생계형 페미니스트’라는 말까지 듣는 건 억울합니다.

제 이야기의 결론은, 남자들이 변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자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셔야 합니다. 강한 기생충 주혈흡충처럼, 남녀가 같이 합심해야 우리나라가 더 강해질 수 있거든요.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되면 남자들도 덕을 봅니다. 여자분들도 남자의 동참을 이끌어주세요. 서로 연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시대가 변하지 않을까요?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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