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경찰청과 경찰이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사고 피해자와 가족 등을 사찰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해경 본청의 ‘세월호 전복사고 관련 정보관 현장 지원 계획 알림’(이하 알림) 문서와 진도파출소가 작성한 ‘진도 침몰선박 미구조 가족 동향 보고’(이하 보고) 문서를 단독 입수했다. 두 문서 모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16일 작성됐다.
알림 문서를 보면 해경은 참사 당일부터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본청 정보관 3명, 동해청 정보관 4명 등 전국에서 16명의 정보관을 세월호 참사 현장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문서를 보면 당시에는 이미 서해지방해양경찰청(서해청) 소속 정보관 36명이 ‘현지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참사 첫날 사고와 관련해 파견된 해경 정보관만 52명이었던 셈이다. 알림 문서에는 이들의 활동 목적이 ‘실종자 가족 동향 파악, 현장 정보활동과 의전 지원 등’이라고 적혀 있다.
진도파출소가 작성한 보고 문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참사 당일 진도파출소는 목포해양경찰서에 “미구조 가족들 중 성명 미상의 신원인으로부터 카톡으로 지금 배에 갇혀 있으니 구조해달라는 문자가 왔다고 하는 언동임” “진도체육관 사고대책본부에는 왜 해경은 한 명도 없느냐 하며 항의하고 있다는 언동임” 등의 내용을 보고하며 “계속하여 가족 동향 파악 중에 있음”이라고 적었다. 해경은 세월호 참사 당시 늑장 대응 등 무능한 구조활동으로 ‘조직 해체’라는 수모까지 당했다. 하지만 세월호 피해자 동향 파악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나선 셈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경찰, 정부 비방 막는 데만 혈안</font></font>해경 등의 세월호 피해자 사찰 정황은 9월1일~2일 서울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제3차 청문회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특조위는 청문회 이틀째인 9월2일 서해청 정보과의 ‘정보동향보고’ 문서 등을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들을 보면 참사 당시 경찰 정보 활동의 목적이 정부 비방을 틀어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조위가 9월2일 공개한 2014년 4월20일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실종자 가족 동향 등’ 문건을 보면 “(가족 대표 구성) 가족 대표 13명(학부모, 일반, 교사)이 구성되었으며, 이 중 ‘밀양 송전탑’ 강성 시위 전담자도 있는 것으로 추정(향후 보상 등 협상에서 주도적 발언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이라고 적혀 있다. 해경이 사고 수습과 무관한 세월호 피해자 이력 파악에 주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 피해자 동향 파악에 나선 것은 해경뿐이 아니었다. 서해청의 2014년 4월23일 보고 문건을 보면 “경찰청에서는 경비·정보·수사 등 경찰 전 기능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견지, 한편 사고 현장이 야권의 텃밭으로 이번 사고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SNS 의견 개진 등을 차단해 민심 동요 없도록 대처”라고 돼 있다.
경찰이 2014년 4월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같은 해 6월4일 치러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야권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단속하겠다는 의미다. 권영빈 특조위 청문위원은 “경찰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해경 보고 문서에는 “경기지방청은 향후 경기·안산 지역에서 장례·보상으로 인한 대정부 반발, 유가족 간 갈등이 초래될 것에 대비 사망·실종자 가족들의 성향 분석을 위해 직·간접 접촉선 확보 및 강성단체·불순세력과의 연계를 차단하기 위해 예방 정보활동 강화”라고 적혀 있다. 경찰이 세월호 피해자 간 갈등을 조장하는 데 앞장선 것이 아니냐는 의문까지 드는 대목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분향소 차량 조회”</font></font>청문회에 비공개 증인으로 출석한 세월호 유가족들은 경찰의 사찰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들은 “최근에 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분향소에 주차된 차량 번호를 조회하는 것을 봤다. 몹시 기분이 나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하다가 청와대에 민원을 넣기 위해 이동하려 하자 경찰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몇 반 학부모인지 어느 동네 사는지까지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를 따질 해경과 경찰 관계자는 아무도 이날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편 세월호 3차 청문회에서는 해경의 TRS(주파수공용통신) 교신 내용도 새롭게 공개됐다. 특조위가 공개한 교신 내역을 보면 해경이 참사 당시 ‘보여주기식’ 구조활동에 나선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 여럿 나온다.
해경은 참사 이틀 뒤인 2014년 4월18일 세월호 선체에 공기 주입을 성공했다고 밝혔다.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전남 진도 현장을 방문해 “공기라도 좀 집어넣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많은 가족 바람”이라고 발언한 바로 다음날이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진짜’ 바람은 당시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식당칸에 공기를 주입하는 것이었다. 해경 계획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4월18일 오전 10시16분께 이춘재 당시 해경 경비안전국장은 TRS 교신에서 “그 공기 호스로 식당칸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안 되니까 그 현재 35m 지점에 설치된 그 부근에 객실에 바로 공기주입구를 설치하는 걸로 여기서 지시가 내려갔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객실 쪽으로도 공기가 주입되지 못했다. 공기 주입은 세월호 선원이 도망쳐 나와 아무도 없을 것으로 여겨지던 조타실 쪽에서 이뤄졌을 뿐이다.
해경이 4월21일 투입한 ROV(무인잠수정)도 별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7시7분께 이뤄진 TRS 교신 내역을 보면 해경 관계자가 “그쪽에 언딘 추가 다이버 예정에 없는지”라고 묻자 상대 쪽 해경 관계자가 “되지도 않는 ROV, ROV 줄하고 엉킬까봐 지금 언딘 샐비지가 다이빙을 못하고 있음”이라고 대답한다. 또 “(ROV가) 출수(물에서 나오다가) 줄이 엉켜가지고 지금 어디로 유실됐는지 찾지를 못하고 있음”이라는 내용도 나온다.
실종자 수색을 위해 진행됐던 공기 주입이나 ROV 투입 모두 구조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박종운 청문위원은 이 밖에도 현장을 비출 수 있는 영상장비 보유 함정 추가 투입 지시 등의 해경 교신 내용을 소개하며 “(당시 해경의 활동이) 결국 청와대 보고용 작업이었던 성격이 강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특조위가 입수해 분석한 해경 교신 내용은 2014년 4월16일부터 29일까지 이뤄진 7천여 건의 TRS 기록이다. 이 기록은 옛 해경 본청에 있는 서버 컴퓨터에서 확보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특조위는 2014년 4월16일부터 같은 해 12월31일까지 서버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이 101만9731개로 총 68.3GB 분량이며 TRS만이 아니라 기타 교신 내용도 보관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TRS 외의 통신망으로는 해경 지휘부가 교신에 사용한 ‘탱고망’, 헬기들이 이용한 ‘MTS망’ 등이 있다. 이같은 다른 망들의 교신 기록은 지금껏 제대로 공개된 바가 없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해경 교신 기록이 비밀의 문”</font></font>권영빈 청문위원은 “특조위가 확보한 교신 기록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해경 서버를 확보해) 생생한 음성 내용을 확인하면 비밀의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해경은 진실에 접근할 비밀의 문이 열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길환영 전 KBS 사장의 박근혜 대통령 관련 보도 개입 정황도 3차 청문회에서 추가로 드러났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9월1일 청문회에 나와 “길환영 사장이 대통령 보도를 다루는 원칙이 있다. (메인 뉴스) 러닝타임 20분 이내에 소화하는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김 전 국장은 구체적으로 “(참사 다음날인) 4월17일 대통령이 진도 현장을 찾아가서 KBS 9시 뉴스에 ‘박 대통령 현장 방문, 1분 1초가 급해’라는 보도를 만들어 13번째 순서로 편집했다”며 “사장이 20분 편집 원칙에 따라 더 올리라고 주문했고 (해당 내용이) 세월호 참사랑 관련이 있어서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해서 7번째로 올렸다”고 말했다.
이날 김 전 국장은 당시 길 전 사장과 나눈 문자 내용도 공개했다. 이 문자에서 김 전 국장은 “사장님~ 말씀하신 대로 그 위치로 올렸습니다”라고 보내고 길 전 사장은 “수고했네!”라고 답변한다.
이 밖에도 김 전 국장은 “4월23일 ‘박 대통령 시진핑과 통화, 북 핵실험 중단 요청’이라는 기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 없는 아이템이라 세월호 참사 보도를 먼저 하고 이 아이템을 31번째로 배치했다”며 “(그런데 길 전 사장이) 이 아이템도 (순서를) 밀어올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 문제로 김 전 국장은 길 전 사장에게 “사장님~ VIP 아이템 오늘은 뒤로 배치하고 내일부터 자연스럽게 올리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자칫 역풍이 불게 되면 VIP께도 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김 전 국장은 “큰 흐름상 맞지도 않고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길 전 사장을) 설득했다. 길 전 사장은 ‘대통령에게 누가 된다’라고 하면 말을 잘 들어줘서 이때도 저렇게 문자를 보내 순서가 바뀌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통령 보도에 KBS 사장 개입’ 증언 </font></font>길 전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뉴스 보도 내용과 순서를 적은 ‘큐시트’를 받아본 정황도 나왔다. 김 전 국장은 “길 전 사장이 큐시트를 요구해서 근무일에는 매일 오후 5시께 팩스로 보냈고 휴일이나 출장 기간에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KBS에서 일하던 시절 세월호 보도 외압을 조사하기 위한 ‘KBS 기자협회 진상조사단’ 실무책임자를 맡았던 심인보 기자는 “여러 간부들과 선배 말로는 (사장이 큐시트를 받는) 그런 사례는 없던 것으로 들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3차 청문회는 9월2일 마무리됐다. 지난 3월 열린 2차 청문회에서 침몰 원인 및 선원 조치의 문제점, 선박 도입 및 운영 과정 등 주로 ‘참사 당시’에 주목했던 특조위는 이번 3차 청문회에서 구조 과정과 정부의 언론 통제 의혹 등 ‘참사 이후’까지로 시선을 넓혔다. 해양수산부, 법무부 등 주요 부처가 자료 제출과 조사를 거부하고 증인 출석 요구를 받은 정부·여당 관계자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청문회가 더 많은 진실을 공개하지 못한 한계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옛 해경이 보유한 방대한 교신 기록 자료 등 특조위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도 뚜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는 특조위의 마지막 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6월30일 이후 특조위의 조사활동 기간이 만료됐다고 주장하는데다 특조위 조사 기간을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 논의가 국회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방해는 노골적이다. 특조위가 청문회를 앞둔 8월23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강신명 전 경찰청장, 연영진 해수부 세월호 인양추진단장 등 증인 39명의 명단을 발표하자, 해수부는 “조사 기간이 종료돼 특조위는 청문회를 개최할 수 없다”고 밝혔다. 9월30일까지 종합보고서와 백서 발간 작업만 해야 하는 특조위가 조사활동이나 청문회는 열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청문회 장소에는 특조위 관계자와 유가족, 방청객들이 120여 석의 자리를 가득 채우며 진실의 조각을 찾아나섰다. 정부는 종합보고서 및 백서 작업 종료 시점으로 못박고 있는 9월30일 이후 특조위를 강제 해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참사의 진실마저 강제 해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마지막이 될지 모를 청문회 </font></font>정부·여당 쪽 증인이 한 명도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조위는 고육지책을 냈다. 청문위원이 질문하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이 과거 세월호 국회 국정조사에서 진술했던 동영상으로 답변하도록 구성한 것이다. 방청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픔이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청문회에서는 참사 당일 오전 8시55분께 전남 119구조본부에 걸려온 단원고 학생의 육성 신고 전화 내용이 공개됐다. “살려주세요. 배가 기울고 있어요.” 공포에 질린 다급한 목소리가 청문회장에 퍼지자 방청객들은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
3차 청문회 첫쨋날 일정이 끝난 저녁 7시께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세월호 유가족 정성욱씨는 “저희가 알고 싶은 것은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왜 안 구했는지다”라며 “돈? 저희는 싫다. 돈 대신에 우리 아이들을 갖다달라”고 말했다.
특조위가 사라져도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과 진상 규명을 바라는 마음은 여전히 날이 서 있을 것이다. 유가족만의 바람은 아니다. 청문회 기간에 김대중도서관 근처에선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바라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휴가 등을 내고 나와 청문회 관련 유인물을 행인들에게 나눠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6개월이 다 돼가지만 이 사고를 잊지 않는 이들은 해산되지 않고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었다. 청문회가 모두 끝난 9월2일 저녁, 김대중도서관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구호가 울려퍼졌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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