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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힘, 시민의 힘으로

세월호 특조위 성과 잇는 국민조사위 출범

유가족과 시민위원 직접 조사하며 세월호 진실 찾기 나서
등록 2017-01-11 21:44 수정 2020-05-03 04:28
1월4일 서울 서교동 한국YMCA전국연맹 5층 회의실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창립 및 활동계획 발표 기자간담회 중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1월4일 서울 서교동 한국YMCA전국연맹 5층 회의실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창립 및 활동계획 발표 기자간담회 중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세월호 참사 1천 일을 앞두고 시민의 힘으로 참사의 진상을 밝히는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진다. ‘4·16세월호 참사 국민조사위원회’(조사위) 준비위원회는 1월4일 조사위의 창립 배경과 역할 등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새로운 특조위를 위한 디딤돌

조사위의 창립 배경은 정부가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2016년 9월30일 강제 해산한 뒤 진상 조사의 주체가 사라진 데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의 새로운 특조위 구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기존 특조위의 성과를 이어나갈 민간 조사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다만 민간 차원의 조사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밝힌 내용을 정리해 널리 알리고, 계속 미뤄지는 세월호 선체 인양 정보 수집과 조사 연구 등에 활동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새로운 진실을 밝히는 일은 시민들의 ‘집단지성’에 기대를 건다.

조사위는 최근 8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 를 공개한 네티즌 ‘자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여러 의혹을 제기해온 한겨레TV의 등 여러 시민과 민간 조직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특조위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한 박용덕 조사위 준비위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시민 조사 역량의 참여와 결집을 이뤄내는 것과 조사의 중요한 과제와 쟁점을 어떻게 국민과 함께 공론화하느냐가 국민조사위 성공의 열쇠”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 당사자가 조사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기존 특조위와 다른 점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장훈 조사위 준비위원은 “기존 조사에서는 피해 유가족을 피해자나 참고인으로만 봤다”며 “이젠 직접 조사 당사자가 되어서 조사를 해보자는 것이 조사위의 설립 목적이고 취지다”라고 말했다.

장 준비위원은 또 “피해자들이 가장 사건에 대해서 잘 안다. 팽목항에도 제일 많이 갔고, 사고 해역에도 제일 많이 갔고, 인양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의 전모를 가장 잘 아는 유가족이 직접 나서서 진상을 밝혀내겠다는 취지다.

조사위에는 김서중 ‘민주사회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 박재동 화백, 안병욱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황진 한국YMCA 전국연맹 이사장 등 12명의 공동대표단이 참여한다. 진상 규명에 함께할 시민위원은 1월4일 기준으로 119명이 모였다.

조사는 조사연구단에서 주로 진행하며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장훈 준비위원 등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7명이 상임연구원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공식 발족식은 1월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선 세월호 참사 1천 일을 앞두고 ‘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는 주제의 촛불시위가 열렸다.

여전히 남은 가장 큰 의혹, 대통령의 7시간

유가족은 물론 많은 시민들이 끊임없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전히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수사를 막았고, 정부는 조사를 방해했다. 권력이 갖은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진실을 왜곡하는 동안 긴 시간이 흘렀다. 세월호 선체는 바다에 잠겨 녹슬고 있다. 참사와 관련된 이들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증거들은 사라지고 있다. 더 늦게 전에 진상을 밝혀야 한다.

여전히 남아 있는 가장 큰 의혹은,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다. 꽁꽁 숨겨왔던 그날의 비밀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을 거치면서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최근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2014년 4월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하기 전 머리 손질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시간은 일부분일 뿐이다. 대통령의 오전 행적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은 1월5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에 출석해 “(참사 당일) 오전 8시30분 (대통령이) 호출해 청와대 관저에서 업무를 봤다”며 “오전 10시쯤에는 급한 서류가 와서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참사 당일 안봉근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관저 집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어떤 업무를 했으며, 관저 집무실로 전달된 서류가 무엇인지 등 그날을 재구성하기 위한 핵심적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거나 ‘말할 수 없다’로 일관했다.

이날 박 대통령의 행적을 밝히는 게 중요한 이유는 ‘대통령의 사생활이 궁금해서’가 아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때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서다. 해양경찰청과 국가정보원, 소방방재청 등의 보고를 실시간 받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전원 구조 오보를 믿었다’는 핑계를 대는 이가 다시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함이다.

세월호 침몰 원인도 규명돼야 한다. 대법원은 2015년 11월 청해진해운 선원 등의 재판에서 세월호가 급격하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최근에는 네티즌 ‘자로’가 다큐멘터리 를 만들어 세월호에 외력이 작용해 침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수백만 명이 8시간 넘는 긴 영상을 시청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세월호 침몰 원인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세월호 선체 조사도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이다. 세월호 인양은 애초 2015년 6월에서 7개월 가까이 늦어지고 있다. 언제 인양이 가능할지 기약도 없는 상황이다. 이른 시일 내에 온전히 선체를 인양해 세월호에 기계적 결함이 있는지 등을 조사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선체 인양을 통해 미수습자 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와 국가정보원의 관계도 규명돼야 한다. 국정원은 세월호 보안측정, 선원 조사, 구조 활동 등에 개입한 바 있다. 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이같은 활동을 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참사 1천 일, 새로운 시작

세월호 수사 방해 시도 역시 중요한 진상 규명 과제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정부로 돌아올 것을 우려해 해경을 상대로 한 수사를 막았다는 수많은 증언과 증거가 있다. 수사 방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밝혀야 할 내용이다.

이 밖에 세월호 피해자를 비난하는 유언비어 유포에 권력기관이 개입했는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청와대의 보도 개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등도 모두 밝혀야 한다. 세월호 참사 1천 일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이유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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