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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행복한 세상 만들어야”

‘심리구호’ 하는 마음복지관 2호점 연 홍정수 성공회 신부, 정부 지원 없는 빠듯한 살림에 PC방 아르바이트 고민
등록 2016-02-16 16:16 수정 2020-05-03 04:28

‘개성공단 중단? 박근혜 정부 무지가 부른 자살행위’. 2월10일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는 발표를 한 뒤 나온 언론 기사의 제목이다.
자살, 자살골, 자살행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의 선택을 가리키는 말이 정치적 행위를 평가하거나 스포츠 경기를 설명하는 데까지 뻗어 있다. 이른바 ‘은유’의 꼴을 갖추고서. 제아무리 은유라고 한들 무심히 보아 넘길 일일까.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줄곧 1위다. 지금도 한반도 남쪽에서는 30~40분마다 1명씩 스스로 삶을 등지고 있다. 자살이 현실이지 비유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언론 홍보하지 않는 이유

홍정수 성공회 신부는 말했다. “마음복지관 홍보보다 인권이 우선입니다.” 박승화 기자

홍정수 성공회 신부는 말했다. “마음복지관 홍보보다 인권이 우선입니다.” 박승화 기자

“마음복지관을 찾는 분들에게 우리는 ‘자살’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상담은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해지려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자살이라는 말 대신 행복이라는 말을 씁니다.” 2월2일 홍정수(46) 성공회 신부를 서울 노원구 마음복지관에서 만났다. 2013년 2월 서울 성북구에 1호점을 연 뒤 3년 만에 노원구에도 ‘마음의 둥지’가 하나 더 늘었다.

홍 신부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낙인’에 따른 인권침해다. “경미한 우울인데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의료보험 기록에 남기지 않으려고 ‘비급여’를 선택하는 분들까지 있습니다. ‘심리적 감기’쯤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사회가 이상하게 보니까 드러내지 않으려는 겁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마음복지관을 알리는 일을 자제한 이유도 복지보다 상담자들의 인권을 무엇보다 먼저 고려했기 때문이다.

홍 신부가 마음복지관에 마음을 둔 것은 2008년 즈음이다. 당시는 ‘최진실 사건’이 있었던 때다. 그는 성공회 교류 차원에서 버마(미얀마)를 방문했다. 버마 사람들에게 자살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반응은 뜻밖이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가난하고 낙후된 땅에서 살지만 그들 마음에는 여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년간 홍 신부의 고민이 이어졌다. 이후 2012년 8월 동작·심리·음악·미술 치료 전문가 10여 명이 모인 ‘사회통합치유연구소’에서 마음복지관 설립을 결의했다. 이듬해 이맘때 마음복지관이 개관했다.

빈민운동 보고 사제 되겠다 결심

마음복지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크게 다섯 가지다. 먼저 아동·청소년·부모 상담. 익기도 전에 병들거나 생채기가 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여러 놀이와 상담이 이뤄진다. 누구나 마음속에 옹이처럼 박힌 상처를 보듬고 풀어낼 수 있도록 돕는 개인 심리상담도 병행한다. 집단프로그램도 있다. ‘마음 챙김’에 바탕한 스트레스 이완 프로그램(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을 비롯해 명상·요가와 동아리 활동 등으로 마음을 다스리도록 돕는다.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심리구호 프로그램도 때마다 펼치고 있다. 2012년 9월 경북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때를 홍 신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던 주민 대피소 2곳을 들어가봤어요. 주민들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있는데 치료를 위한 개입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떤 분은 연기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했고, 어느 주민은 (죽으려고) 농약을 사러 간다고까지 했어요. 대피소에서 심리적 어려움이 더 증폭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죠.”

경남 밀양의 송전탑 반대 투쟁 사례도 있다. 홍 신부는 2013년 11월부터 3주마다 밀양으로 향했다. 경찰·한국전력공사와 ‘굉장한 싸움’을 몇 년째 해오던 주민들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묵묵히 주민들과 더불어 지내면서 관계도 돈독해졌다. 지금까지 심리 치유캠프를 4차례 열었다. 명상도 같이 하고 음악 공연도 열고 춤치료도 했다. 그는 “이치우·유한숙 어르신 사망 뒤 ‘나쁜 일’이 없었던 일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에도 홍 신부는 밀양 주민들을 위한 치유캠프를 마련했다.

지난 1월 마음복지관이 경남 밀양·경북 청도 주민들과 함께한 치유캠프 모습. 남어진 제공

지난 1월 마음복지관이 경남 밀양·경북 청도 주민들과 함께한 치유캠프 모습. 남어진 제공

마음복지관과 함께 홍 신부가 걸어온 3년은 우둘투둘한 자갈길이었다. 애초 그는 성공회의 빈민운동 일환인 ‘나눔의 집’을 보고 사제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8년 전 성공회 신부 서품을 받은 그는 교회 개척이라는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다만 스스로 제도권 교회를 만들기보다는 ‘다른 교회’를 상상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의 신념에 영향을 준 스위스 신학자 한스 큉의 말을 그는 인용했다. “교회가 세상이나 자기 자신에게 마음을 둔다면, 그런 교회는 인간을 불행하고 비참하게 하며 노예화한다.”

성공회 급여가 박봉인 탓에 버스 운전이나 PC방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까지도 했다. 그러다 2011년 홍두호(44) 예방의학과 전문의를 만났다. 당시 홍 전문의는 의사 생활을 접고 시민단체 활동가로 ‘전업’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그해 희망제작소의 모금전문가학교를 마친 뒤 캠페인을 벌였다. 마음복지관을 만들자는 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홍 전문의는 마음복지관 사무국장으로 홍 신부와 줄곧 함께하고 있다.

마음복지관 운영은 녹록지 않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이 필요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실적’으로 보는 것을 경계하려는 뜻이다. 언론 홍보를 하지 않고 ‘인연’을 따라 후원자나 재능기부자를 찾는 방식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후원자 수는 300명 남짓이다. 살림살이는 늘 빠듯하다.

홍 신부는 어려운 재정 상황에도 상담 비용을 올리거나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 기초생활수급권자는 한 번 상담받을 때 5천원만 내면 된다. 형편에 따라 2만원까지 상담비를 받고 있다. 가난하지만 돈을 내고 상담받는 것이 그들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는데다 지속적으로 상담을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일반 상담기관에 견주면 여전히 저렴한 비용이다. 정부 위탁기관과 달리 상담 횟수를 제한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2년 넘게 상담받는 이도 있다고 한다. 그는 “근래 마음복지관 재정이 어려워서 PC방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몇 해 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준 적이 있다. 과연 우리는 안녕한가. 홍 신부의 대답이다. “마음복지관은 가난하고 심리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낙인이 없게끔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입니다. 다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좀더 도움을 주는 곳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 마음복지관이 모델이 되어서 자꾸자꾸 만들어지고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교회가 사람들이 죽어서 천국에 가느냐를 생각할 게 아니라 지옥 같은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주한 너와 내가 치유받는 과정

상담은 진실하게 말하고 진정으로 듣고 진짜 삶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마주하는 서로가 모두 치유를 받게 된다고 홍 신부는 말했다.

상담·후원·재능기부 문의 02-951-7873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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