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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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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은 불러주오, 그 노래

결성 20주년 정기공연 ‘스무살,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마친

참여연대 노래동아리 ‘참좋다’… 그들의 노래는 거리의 역사
등록 2017-12-05 17:05 수정 2020-05-03 04:28
20대 뜨거운 청춘으로 참여연대 회원 모임 노래패 ‘참좋다’ 활동을 시작했던 이들이 어느새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됐다. 참좋다 20주년 정기공연에선 옛 회원들의 단독 무대도 마련됐다.

20대 뜨거운 청춘으로 참여연대 회원 모임 노래패 ‘참좋다’ 활동을 시작했던 이들이 어느새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됐다. 참좋다 20주년 정기공연에선 옛 회원들의 단독 무대도 마련됐다.

“우리 함께 분노했고 거리에서 노래했고 나 자신보다 우리가 더욱 소중했지/ 그때 우린 아름다웠고 생각보다 우리가 강한 것을 알았고/ 서로의 눈 속에서 빛나는 보석을 보았지”

음원 차트에선 절대 찾을 수 없는 노래. 그렇지만 한 번 들으면 노랫말 한 소절 한 소절이 가슴을 파고들어 입으로 다시 부르게 되는 노래. 평범한 인간의 삶의 모습이 담긴 민중가요란 그런 노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 등 거쳐간 회원 80여 명

11월 마지막 주 일요일이던 26일 오후 2시,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의 최신곡 를 부르는 노랫소리가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지하 1층 느티나무홀 연습실을 꽉 채웠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눈빛이 노랫말 속 ‘보석’처럼 반짝였다.

이날 모인 노래패 ‘참좋다’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시민운동을 이끈 참여연대의 회원들이 모여 만든 노래 동아리다. 참여연대의 1만여 회원 가운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노래로 세상과 호흡하고 싶었던 이들이 1997년 모임을 만들었다. 참여연대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동아리인 만큼 교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선 납품을 하는 이, 전산유체역학(CFD) 엔지니어, 정치평론가, 시민단체 활동가, 회사원 등 직업 또한 다양한 게 특징이다. 현재 동아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현역’ 회원은 8명이지만, 이곳을 거쳐간 이들은 80명이 넘는다. 그중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활발한 의정 활동을 하고 있는 이재정 의원도 있다.

이날 모여 열심히 노래를 연습한 참좋다는 12월2일 오후 5시 서울시청 8층에서 열린 20주년 정기공연 ‘스무살,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를 뜨겁게 마무리했다.

참좋다는 1997년 결성 뒤 노래와 함께 한국 사회의 여러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왔다. 이들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면서부터다. 그해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되자, 노래패 회원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 광화문, 조계사 등으로 매주 장소를 옮겨가며 촛불 문화제 공연에 참석해 노래를 불렀다.

이후 참좋다는 한국 사회의 주요 투쟁 현장에 단골 노래 손님으로 등장한다. 2010년엔 한국의 첫 젠트리피케이션 투쟁 현장인 두리반 투쟁과 함께했고, 이후 콜트콜텍·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집회(2011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규탄 집회(2012년), 쌍용자동차 집회(2012~2013년), 경남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 집회(2013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투쟁(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집회(2013년),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2014~2016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투쟁 현장(2015년), LG유플러스·기아자동차 고공농성(2015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2015~2016년),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 규명 서울대 농성장(2016년) 등 셀 수 없이 많은 현장에서 노래로 힘을 보탰다.

이들의 노래 품앗이는 결성 20주년을 맞는 올해도 끊이지 않았다. 세월호 광장 촛불문화제, 광화문 고공 단식농성 투쟁 문화제, 하이디스 수요집중 문화제, KBS·MBC 공영방송 정상화와 언론 적폐 청산을 위한 문화제 ‘돌마고 파티’ 등에서 연대 공연을 했다. 이들의 공연 목록이 곧 한국 사회의 거리 항쟁 역사와 겹쳐진다.

거리의 노래패 참좋다의 ‘스무살’ 내공은 단단했다. 12월2일 열린 공연은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무대를 장식한 이들은 옛 회원들이었다. 20대 때 청춘을 뜨겁게 노래하던 이들이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중년의 엄마, 아빠가 돼 무대에 섰다. 두세 번 맞춰봤을 뿐인데 이들의 노래는 오래 연습해온 사람들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다. “참좋다 회원들은 보통은 4~5년 활동하기 때문에 이 노래들을 함께 부른 경험이 여전히 몸에 남아 있어요.” 어느새 2살 아이의 엄마가 된 김은파(42·2001~2007년 활동)씨가 말했다.

“노래 실력보다 마음 실력이 좋다”

참좋다에서 마음 맞춰 노래하던 이들이 결혼하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 나선 옛 회원 10명 가운데 세 쌍이 결혼했다. 2015년 경북 문경으로 귀농한 뒤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한 조창환(42·2008~2013년 활동), 소은정(46·2011~2015년 활동)씨는 이날 20주년 정기공연을 위해 15개월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연습장에 왔다. “문경에서 오는 데만 6시간 걸렸어요. 3주째 주말마다 서울에 오고 있어요. 힘들지만 제 삶에서 노래하는 것, 참좋다에서 보낸 시간을 빼놓을 수 없거든요.” 소씨가 아기를 추스르며 말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6년 동안 참좋다 활동을 한 황지순(44·교사)씨도 “내가 부르는 노래가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한 톨의 밀알이 되는 기분이다. 이주노동자와 연대 공연을 할 때, 그분들이 좋아해주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싹 날아갔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인생에서 참 힘이 된다”고 말했다.

나머지 2·3부를 장식한 것은 현역 멤버들이었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참좋다 활동을 시작했고 이어가는 걸까. 지난 5월 참좋다에 가입한 막내 최요한씨는 “노래하고 싶은데 노래방 말고 노래할 곳이 없어 들어왔다”며 웃었다. 신입회원 정홍기씨도 “우린 3시간 노래 연습하고 6시간 뒤풀이한다. 요즘 쉽게 가질 수 없는 가족 같은 느낌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20년째 한결같이 노래한 이들도 있다.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전산유체역학 엔지니어 장남일(47)씨다. 처음 참좋다에 가입할 때 스물일곱이던 청년은 이제 중년의 아저씨가 됐다. 장씨는 꾸준히 노래패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동력으로 ‘마음’을 꼽았다. “저희는 사실 ‘노래 실력’보다 ‘마음 실력’이 더 좋거든요. 노래하기 위해 노래하는 게 아니라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사람을 알기 위해 노래했기 때문에 오래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문 걸고 건투를 비는
현역 회원들은 지난 9월부터 매주 금·토·일요일에 모여 20주년 정기공연을 연습했다.

현역 회원들은 지난 9월부터 매주 금·토·일요일에 모여 20주년 정기공연을 연습했다.

참좋다는 이날 공연에서 회원들이 만든 여러 자작곡을 선보였다. 참여연대 활동가이자 참좋다 5년차 회원인 신미지(38)씨는 경북 성주 소성리에 내려가 사드 설치 반대 투쟁을 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다.

“그대들 듣는가 이 땅의 외침을/ 골짜기마다 흐르는 그 울음을/ 무기는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외침/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없다는 울음/ 흔들리는 풀이 우리를 잡아줬듯/ 이제는 우리가 이 땅을 지키려네”

1997년 원년 멤버 허성희씨도 세월호 침몰 사건을 겪으며 떠나간 영혼들에게 바치는 진혼곡 을 만들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 얼마나 두려웠니/ 차디찬 깊은 절망 속에 너를 기다려/ 무거운 새벽안개 두렵게 막아서도/ 따스한 아침햇살 비춰오길 기다려/ 이제 넌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닌 거야/ 모두의 마음 모아 행복의 노랠 불러” 참좋다 회원들의 마음 실력이 개인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과 손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노래들이다.

참좋다 회원들에게 민중가요는 주문 같은 노래다. 내 삶의 각오를 다지는 주문이기도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문을 걸고 건투를 빌어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교사인 홍의표씨는 여러 투쟁 현장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며 주문을 건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해고노동자들이 1천 일, 2천 일 투쟁하는 현장이 많고, 광화문 사거리 고층건물 광고판 위에 목숨 걸고 올라가는 고공농성도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그들에게 민중가요 를 부르며 힘내라고 주문을 건다.

“그 작고 약한 꿈들에게 노래여/ 그 선한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여/ 타다 남은 잃어버린 도시에도 노래여/ 노래여 날아가라 우리 생명의 힘을 실어/ 깊은 겨울잠을 깨어 노래여 날아가라/ 노래여 날아가라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땅/ 평화의 바람으로 노래여 날아가라”

시간이 흐르며 많은 것이 잊히고 지워져간다. 민중음악계 대표적 작곡가 윤민석씨는 최근 페이스북에 “30년에 걸친 제 민중가요 창작 인생을 당분간(?) 접을까 합니다”라며 ‘폐업신고, 혹은 아주 긴 휴업신고’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후 와 한 인터뷰에서 “민중가요는 보람이 있기는 하지만 미래가 없다. 민중가요 부르는 후배들이 그러더라. 해고자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아, 나에겐 돌아갈 공장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다고 말이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현실적 이유들을 아프게 설명했다.

척박해진 민중가요판에서 그나마 새 음반을 내고 활동을 이어가는 노래패는 ‘우리나라’와 ‘꽃다지’ 정도다. 참좋다 회원들도 연대 현장에서 이들의 노래를 자주 부른다.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걷는 회비와 공연 뒤 받는 소액의 사례비 등을 모아 두 노래패를 후원하고 있다.

12월2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20주년 정기공연의 제목은 ‘스무살, 우리의 이름을 쓰겠소’였다. 공연 제목이기도 한 이 노래는 이례적이게도 민중가요가 아닌 대중 가수 SG워너비의 곡이다. 지난여름 방영된 드라마 에 나왔다. 노래는 이렇게 속삭인다. “여기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가끔 그대는 먼지를 털어 읽어주오/ (…) 다만 아주 가끔 기억해주시오.”

당신이 지금 우릴 잊더라도

“이 노래가 지금 우리가 노래하는 마음과 닮았어요. 민중가요는 무형문화재 같아요. 아무도 찾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기억 속에서도 잊히고 있잖아요. 그렇지만 가끔 누군가 먼지를 털어 찾고, 부르고, 기억할 수도 있잖아요. 당신이 지금은 우리를 잊더라도 혹시 기억나고 찾을 수도 있으니 우리는 계속 그 자리에 있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 노래하고 있어요.” 홍의표씨가 스무살 참좋다의 속내를 들려줬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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