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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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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삼성 ‘펀치’는 없다

검찰, 그룹 차원의 노조 와해 내용 담은 ‘S그룹 노사전략’ 문건 관련
이건희 회장 등 무혐의 처분, 에버랜드 임직원만 약식기소
등록 2015-02-08 13:39 수정 2020-05-03 04:27

검찰이 또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 삼성그룹 차원에서 노조를 와해시키는 내용을 담은 ‘S그룹 노사전략’ 문건과 관련해, 검찰이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검찰은 삼성에버랜드(현재 제일모직) 임직원 4명만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약식기소했다(제1019호 특집 ‘삼성 무노조 76년, 미세한 균열… 부당노동행위로 에버랜드 관계자들 처벌 가능성 높아져’ 참조).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다.

토의 내용 맞다고 인정하는데도 준 면죄부
2013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S그룹 노사전략’ 문건과 관련해 삼성그룹의 부당노동행위를 특별근로감독하라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2013년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S그룹 노사전략’ 문건과 관련해 삼성그룹의 부당노동행위를 특별근로감독하라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잠시 시곗바늘을 2013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10월14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150여 쪽 분량)을 공개했다. ‘노조 설립 상황이 발생되면 그룹 노사조직, 각사 인사부서와 협조체제를 구축하여 조기에 와해시켜주시기 바람’ 등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 담긴 문건이었다. 문건이 공개된 날, 삼성그룹은 “2011년 고위 임원들의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바람직한 조직문화에 대해 토의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라고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나 엿새 뒤인 10월20일 태도가 돌변했다. ‘자료 전체를 받아 검토한 결과, 삼성에서 만든 자료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에서 만든 문서라면 제목에 ‘S그룹’이라고 쓸 리가 없고, 문서 양식도 삼성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삼성그룹 공식 블로그) 애초 삼성에서 만든 문건이 외부로 흘러나가 제목만 바뀌거나 문서 편집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법원의 해석도 비슷했다. 삼성에버랜드에 노조를 설립했다가 해고된 조장희 노조 부위원장의 부당해고 취소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재판장 이승한)은 지난해 1월 “조 부위원장에 대한 징계, ‘방탄노조’라는 공격, 친사(親社) 노조 설립 등의 사실관계가 문건 내용과 일치하는 점 등을 볼 때 삼성그룹이 S그룹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추인된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이 문건에 의하면 노조를 소멸시키기 위해 조 부위원장을 해고한 것은 노조법에 금지한 부당노동행위”라고도 판단했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 대해서조차 눈을 감았다. 금속노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은 2013년 10월 S그룹 문건 작성, 노조 파괴 작업 등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삼성에버랜드 임직원 등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했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는 미적지근했다. 심상정 의원실 보좌관만 참고인으로 불러다가 문건 출처를 캐물었을 뿐, 삼성에버랜드에서 삼성그룹 쪽으로 수사가 뻗어나가지 못했다.

애초에 삼성그룹에 대한 수사 의지가 없었던 걸까?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병현)는 “문건 작성 자체는 범죄 사실이 아니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는 이상 그룹 차원에서 부당노동행위에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건희 회장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고 지난 1월27일 밝혔다. 다만 조아무개 삼성에버랜드 부사장 등 4명은 각각 벌금 500만~1천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삼성 임직원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되는 첫 사례다. 그런데 약식기소도 석연치 않다. 앞서 검찰은 노조 설립을 방해한 혐의(부당노동행위)로 신세계 이마트 최병렬 전 대표이사 등 주요 임직원들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이들은 1·2심 재판에서 최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등 대부분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검찰, 신세계는 잡아도 삼성은 안 잡는다”

삼성과 이마트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을 맡았던 류하경 변호사는 “두 사건은 거의 유사하다. 이마트 노조 파괴 문건도 작성자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지만 검찰이 대표이사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검찰이 신세계는 잡아도 삼성은 안 잡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수사의 단서를 던져줬는데, 검찰이 출처를 몰라서 수사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직무유기”라고 덧붙였다. 금속노조와 민변 등은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대해 2월 초 항고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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