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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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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콜’ 절실한 콜센터 노동자들

‘상담’ 아닌 ‘악착같은 영업’이 본업이 된 상담사들…

10명 중 3명은 ‘자살 충동 경험’하지만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기업
등록 2014-12-03 14:19 수정 2020-05-03 04:27
씨앤앰텔레웍스에서 전화 상 담사로 일하는 오지문(왼쪽)씨와 신선정씨가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 씨앤앰 농성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씨앤앰텔레웍스에서 전화 상 담사로 일하는 오지문(왼쪽)씨와 신선정씨가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 씨앤앰 농성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비정규직 설치·수리 기사를 응원하는 캠페인 ‘진짜 해피콜’에서 이번에는 콜센터 노동자들을 만났다. 지역 케이블 방송인 씨앤앰 설치·수리 기사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109명의 계약해지 등에 항의하며 노숙농성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씨앤앰의 콜센터 노동자들도 파업으로 힘을 보탰다. 서울 여의도에서 노숙농성 중인 LG유플러스 설치·수리 기사들은 지난 10월 회사의 불법 노동행위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전북 전주의 고객센터 상담사 이아무개(30)씨 사건과 관련해 11월26일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고, 고객센터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회사의 영업 강요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들에게도 ‘진짜 해피콜’이 절실하다. _편집자


3-2-2. 온종일 숫자에 짓눌린다. 디지털방송 3건, 초고속인터넷 2건, 인터넷 집전화 2건. 하루에 고객센터로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 영업으로 연결시켜야 하는 할당 목표치다. ‘목표’라고 했지만, 사실상 ‘강요’다. 지난 11월14일 서울 광화문 농성장 앞에서 만난 신선정(47)씨는 씨앤앰의 자회사인 씨앤앰텔레웍스에서 일하는 전화상담사다. 디지털방송, 인터넷 상품에 대한 가입, 변경 문의 등 고객 상담을 전담한다. 입사 14년차인 신씨는 “최근 들어 회사의 영업 압박이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IPTV 등 경쟁업체가 늘어나면서부터다.

영업 할당, ‘목표’ 아닌 ‘강요’

7-6-2. 운수 좋은 날이 있다. 나도 모르게 신규가입 신청이 잘 받아지는 날. 내가 다른 날보다 더 친절해서도 아니다. 콜센터로 걸려오는 상담 전화는 무작위로 상담사에게 배정된다. 디지털방송이냐, 인터넷 집전화냐, 상담 내용을 미리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운’이다. 그런 날 팀장은 “역시 오래된 상담사라서…” 한껏 추어올린다. 그러나 다음날은 1-2-2. 운수 나쁜 날이다. “아유, 뭐하시는 거냐.” 팀장의 질책이 따갑다.

오지문(42)씨가 일하는 일반상담팀도 비슷하다. “오늘은 우리 팀 유치 실적이 이렇습니다. 왜 이렇게 저조할까요?” 3-2-2 할당량을 못 채운 날이면 어김없이 팀장이 메신저에 ‘팝’(팝업)을 띄운다. 시간대별로 실적이 저조한 이유를 분석해서 제출하라거나, 정말 실적이 저조한 날은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목표치에 미달한 날은 ‘역추적’에 들어간다. 디지털방송 가입을 몇 번 권유했는지 ‘시도’ 건수를 체크하는 것이다. 팀장은 고객과 상담한 통화 녹음 내용을 하나하나 다시 들어본다. 진짜 ‘시도’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교육팀은 상담 전화를 실시간 감청하기도 한다.

‘친절’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 상담사님, 이번 상담 건은 고객님이 이러이러한 사유로 망설이고 있으니 카드 할인을 재차 언급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 상담사님은 가입 권유에 대한 욕구가 없으신가요?” 영업이 아니라는 말만 믿고 2012년 입사한 오씨는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메신저의 실시간 피드백으로 유치 업무가 어쩌고 하면 전화상담 업무가 안 된다.” 기본 업무인 친절한 상담을 회사가 오히려 가로막는 셈이다.

콜센터 상담사의 본업이 친절한 상담인지, 친절한 목소리로 하는 악착같은 영업인지 헷갈릴 정도다. 회사는 ○○카드 결제시 할인, 특별할인행사 기간이라는 갖가지 ‘당근’으로 가입자를 유치하라고 강요한다. 신선정씨는 “내가 말하면서도 고객에게 무안할 정도로 계속 상품을 권유하면 칭찬받는다. 고객이 싫어하는 내색이 느껴져서 더 이상 말하지 않으면 ‘그 대목에서 왜 한마디 더 안 했느냐’고 추궁당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영업 압박은 월급으로 직결된다. 가입자 유치율과 해지하려는 고객을 잡은 ‘방어율’, 디지털방송+인터넷+집전화 등 결합상품을 얼마나 팔았는지를 나타내는 ‘결합률’ 등에 따라 회사는 상담사를 4개 등급으로 나눈다. 등급에 따라 상담사마다 받는 수당은 월 15만원 이상씩 벌어진다. 또 디지털방송 월 110건, 초고속인터넷은 월 65건 이상 가입자를 유치하지 못하면, 건당 1500~3천원의 유치 수수료를 아예 받을 수 없다. 회사는 이 수당을 포함해 ‘월 170만원’으로 상담사 구인광고를 내지만, 실제 신입사원은 월 130만원(세전) 안팎을 받고 일한다.

가족에서 경쟁 상대가 된 옆자리 동료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가족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옆자리 상담사랑 경쟁 상대가 됐다. 인센티브가 달라지고, 팀장이 경쟁을 부추기고. 요즘은 출근할 때 ‘영업 못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앞선다.” 신씨는 심지어 화장실에 가고 물 마시러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화장실, 물을 순번제로 처리하는 팀도 있다.

씨앤앰텔레웍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월21일 전북 전주에 있는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던 이아무개(30)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유서는 ‘노동청에 고발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고객센터에 단순 문의하는 고객들에게 070인터넷전화, IPTV, 홈CCTV 등의 상품 판매를 강요하고 목표 건수를 채우지 못하면 퇴근을 하지 못한다. 목표 건수 역시 회사에서 강제로 정한 내용이다. 입사설명회 당시에는 추가근무수당을 지급해준다고 계약서에 쓰여 있으나 이행이 되지 않는다. (중략) 여긴 고객센터가 아니라 거대한 영업조직일 겁니다.” 그는 유서 마지막에 ‘철저한 조사와 담당자 처벌, 진상 규명’을 부탁했다.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씨앤앰 노동자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동조합’은 지난 11월26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과 부산,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했다. 윤진영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은 “콜센터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인 노동착취, 영업 강요에 따른 직무 스트레스, 감정노동 등으로 인해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12월1일부터 LG유플러스 전주 고객센터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전주본부 익산지부의 김중백 조직국장은 “회사 쪽이 메신저에 남아 있는 업무 지시 내용을 삭제하고 영업 매뉴얼을 폐기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고 있어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LG유플러스 쪽은 “향후 실태 조사에서 나오는 사항은 협력업체와 함께 적극 개선해나가고, 고객센터 상담사들의 근무환경, 복지 향상 등을 통해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 자료를 내놓은 바 있다. 이씨는 LG유플러스 본사와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이씨 같은 콜센터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은 위험수위에 다다른 상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맡겨 콜센터 노동자 303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 3명꼴로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업무 스트레스나 감정노동은 철저히 노동자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된다. 신선정씨는 헤드셋을 집어던지고 싶은 순간마다 숨을 크게 내쉰다. 그래도 안 되면 화장실에 가서 혼자 중얼거리는 걸로 분을 삭인다. 퇴근할 때마다 현관문 앞에서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3번 외치고 문을 연다. 오지문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가끔 욕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다음 전화벨이 울리기까지 3초 안에 짧게 화를 다스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오씨는 “나도 ARS 같은 기계적인 안내가 아니라, 고객과 사람 냄새 나는 친절한 상담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친절한 상담을 하고 싶다”

그래도 씨앤앰텔레웍스는 지난해 노조가 설립되면서 여러 근무조건이 나아진 편이다. 3-2-2 영업 압박도 다소 누그러졌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퇴근하지 못하는 관행도 사라졌다. 조회나 업무교육 시간도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아 시간외수당을 받게 됐다. 콜센터 노동조합이 설립된 회사는 현재 씨앤앰텔레웍스와 서울시 민원상담전화인 120 다산콜센터 2곳뿐이다. LG유플러스도 비정규직 설치·수리 기사들만 노조에 가입해 있을 뿐, 콜센터에는 노조원이 없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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