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씨는 요즘 농부 겸 카페 주인으로 지낸다. 이날 만남 장소도 그가 1년 전 집 근처에 차렸다는 카페였다. 유리창 너머로 배추·보리 등을 심은 텃밭이 보였다. 그는 밭에서 기른 농작물을 재료로 만든 음식과 카페 근처에서 볶은 따뜻한 커피로 손님을 맞았다. 자신의 카페를 “주변 농산물을 품는 사랑방”이라고 표현한 그는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과의 연대를 만들고 있었다.
“주변 농산물을 품는 사랑방”에서
코미디언 겸 방송 진행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방송 출연이 어렵게 됐고, 진행을 맡고 있던 시사 프로그램에서 중도 하차했다. 그 뒤 법정 소송까지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가 세상을 향해 연대의 손짓을 적극적으로 내민 것도 그때쯤이었다. 이날 비정규직 설치·수리 기사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천의봉 현대자동차 울산비정규직지회 법규부장과의 인연도 그랬다. 김씨는 현대차의 불법파견 인정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울산 현대차 공장 앞 30여m 철탑에서 296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천씨와 최병승씨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수많은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그들의 현재는 11월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와 서울파이낸스센터 사이 전광판 위에 올라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씨앤앰케이블방송의 비정규직 노동자 강성덕씨와 임정균씨다. 지금 그 앞에서는 노조원 109명이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천의봉(이하 천)= 최병승씨가 꼭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고공농성 중에 하늘에서 땅을 그리며 찍은 사진 뒤에 편지를 써서 보냈다.
김미화(이하 김)=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는 자리가 생겨 고맙다. (천의봉씨) 고생했어요. (사진을 보며) 우리는 그저 사진 풍경이 예뻐 보이는데 위에서 이걸 바라보는 심정은 어땠을까, 아휴.
장연의 SK브로드밴드지부 연대팀장= (모자를 벗어 삭발한 머리를 보여주며) 우리는 오늘 낮 1시부터 조합원들이 총파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김= 사람값이 비싸지는 사회, 제값을 배울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들 먼저 지쳐서 쓰러지지는 말았으면 한다. 사실 철탑에 오르거나 머리를 깎는 건, 오죽하면 그러는 것이겠나. 말이 안 통하니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면서 ‘저분들이 빨리 지치면 어쩌나’ 걱정된다. 사람들은 그런 사정을 속속들이 몰라준다. 정규직·비정규직 편 갈라서 싸우는 것으로 알지,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걸 원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고공농성장 앞에서 김장 109포기 담그기
박석훈 씨앤앰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이하 박)= 우리 동료가 올라간 지 오늘로 9일째 됐다.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데 걱정이 많다. 올라간 동료들이 머리도 아파하고, 배도 많이 아파한다.
천= 우리는 멋모르고 (철탑에) 올라갔다. 음식이 단절될 거라 생각하고 자질구레하게 먹을 걸 챙겨서 올라갔다. 밤 되면 추우니까 침낭 좋은 거 사시고…, 온기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걸 경험 삼아 얘기해주면 안 되는 건데….
김= 늘 마음이 좀 그렇다. 함께 더불어 잘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과도기를 겪는 것인지, 선진국도 그런 것인지 궁금하다. 그저 여러분들이 지치지 않는 방법을 택했으면 좋겠다. 응원하는 분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달라. 각박한 세상에 그런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견딜까. 나도 어려움을 겪을 때 많은 사람들이 손을 잡아줘서 견뎠다. 그런 용기를 절대 잃지 말아달라.
박= 나도 이런 염려까지 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파업 시작할 때는 정말 멋모르고 저기 가세요 하면 가고, 여기 가세요 하면 갔다. 1년 동안 우리 파업은 안 하고 대오를 이끌고 연대만 다녔다. 그런데 고공농성을 시작하면서 정말 연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니 그분들이 뭐든 지 지원해준다. 깔판 하나까지 말이다.
김= 사실 모든 게 다 정치다. 정치인들을 잘 활용하는 것도 (문제 해법에) 중요하다. 전방위적으로 호소하고, 여기 계신 분들이 현장에서도 지쳤는데 우리 얘기 들어주세요 하는 방법도 힘들어한다면 마음이 아프다.
천= 정치도 우리가 밑받침이 되지 못하면, 그저 활용의 수단에 그치게 된다. 회사와 교섭을 가도 우리가 회사의 기준에 밀려 정리될 뿐이기 때문이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이하 점)=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 가운데 한 명이 쓴 편지를 읽고 다들 많이 울었다. 어린아이와 아내를 남기고 새벽에 나왔다더라. 다른 한 명은 재능 이어달리기를 함께 다니던 친구다. 판화가 이철수씨 집도 함께 갔다. 그렇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에 다들 속이 상해 있었는데,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예전에 자신들이 삼성 본관 앞에 있을 때 큰 힘이 됐다며 이번 주말에 고공농성장 앞에서 김장 109포기(노숙농성 중인 노조원 수를 뜻함)를 함께 하자고 했다.
김= 아, 김장 담글 배추가 있나? 우리 텃밭에서 뽑아가시라.
점 =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배추를 주시기로 했다.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와서 김장에 보태고 싶어 해주셔서 고마웠다. 두 친구 때문에 속이 상한데 마음이 모아지니 빨리 해결될 것 같다. 우리가 마음만 잘 모으면 (두 사람이) 빨리 내려오게 할 수 있겠다.
박 = 그래도 좋은 소식도 조금씩 들려온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에서 지난해 그만둔 씨앤앰 원청 대표이사를 불러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청 협력사 14곳의 대표들도 노동청 서울지청에서 불렀다고 하더라. 그동안 우리가 6개월 이상 잠 설치고 부르짖어도 안 됐던 일들이다.
김= 다들 너무 고생이 많은데 내가 도와줄 일이 많지 않아 걱정이다. 작은 후원금을 준비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따뜻한 저녁 한 끼 해드리고픈 바람이 있다.
재능 이어달리기 다음 주자는 탁현민 교수김씨는 다음 ‘진짜 해피콜’의 재능 이어달리기 주인공으로 공연 연출가이자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인 탁현민씨를 지목했다. 소개 이유에 대해 “공연 기획을 많이 하고 유명한 사람이라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많이 될 친구”라고 말했다. 만남을 마치고 이들은 카페 옆 텃밭에서 김장에 보탤 배추 20여 포기를 직접 거뒀다. 그리고 김씨의 안내를 받아 카페 뒤켠 언덕의 나이 많은 도토리나무 아래에 가서 각자 소원을 빌었다. 마음이 든든해지는, 연대의 시작이었다.
용인=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김진수 기자 jski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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