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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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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명절에도 쉴 권리는 없다

지난 9월9~10일 울산 설치·수리 기사들과 함께 보낸 일터에서의 한가위 연휴
등록 2014-09-18 15:19 수정 2020-05-03 04:27

간접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인 설치·수리 기사들에겐 명절에 쉴 권리가 없다. 과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가 함께 진행하는 ‘진짜 해피콜’ 캠페인의 두 번째 차례로 설치·수리 기사들의 한가위 연휴 이야기를 전한다. 기록노동자인 희정씨가 지난 9월9~10일 울산에서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 소속으로 통신 장애, 인터넷 개통 업무를 담당하는 기사 2명과 동행취재를 했다. _편집자


SK브로드밴드 개통기사인 B가 전봇대에 올라 작업하고 있다. 특수고용직인 B에게는 안전장비, 작업공구가 지급되지 않아 모두 자비로 사야 한다.

SK브로드밴드 개통기사인 B가 전봇대에 올라 작업하고 있다. 특수고용직인 B에게는 안전장비, 작업공구가 지급되지 않아 모두 자비로 사야 한다.

사무실 인터넷이 끊기면, 누군가 고객센터 번호로 전화를 건다. 통신기사는 30분 내로 오고, 인터넷이 다시 작동되면 사람들은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각자의 일로 돌아간다. 취재차 만난 통신기사 A는 내 사무실로 오는 기사가 어느 업체 소속이냐고 물었다. 아, 글쎄요. 수리기사의 등 뒤에 어떤 기업 로고가 새겨져 있었더라? 그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말없이 수리를 하다가 갔다. 그에게 인사나 제대로 해본 적이 있나. 통신기사의 수그린 등은 떠오르지도 않는데, 인터넷이 끊겼을 때의 기분은 생생하다. 답답함에, 그가 어떻게 그리 금방 올 수 있는지는 의문 한번 가져본 적이 없다.

“추가 접수 건이죠.”

그날 하루 할당된 일 이외에 통신기사들에게 요구되는 추가 업무. 대부분 급박한 사정에 의해 당일 처리를 해야 하는 일들이다. 많게는 하루 대여섯 건의 추가 업무가 생긴다. 인터넷을 설치하거나 장애를 찾는 일은 10분이면 끝나기도, 두세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통신망, 집 구조, 전봇대 위치 등에 따라 다 다르다. 1시간 넘게 고장난 케이블을 붙들고 있는데 추가 업무가 생기면 식은땀이 난다.

고객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A는 말했다. “평소처럼 할까요?” 그리고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내 사무실로 오던 기사도 어느 층계 어느 길목을 저리 뛰다가 왔을까.

주 6일 근무에 한 달 1~2번 당직

동행취재에 응한 통신기사 A는 고객에게 자신을 이렇게 칭했다.

“에스케이(SK)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SK브로드밴드. SK텔레콤의 계열사인 SK브로드밴드는 인터넷과 그에 따른 전화, TV 등을 개통·관리하는 업체다. SK라고만 해도 고객들은 안다. 그런데 정작 그는 SK 직원도, SK브로드밴드 직원도 아니다. 정확히는 협력업체인 SK브로드밴드 행복센터의 직원이다. 장애(담당)기사인 그는 그래도 정직원이다. 같은 센터에서 인터넷 개통 일을 하는 기사들은 센터장과 개별로 계약을 맺은 특수고용직, 개인사업주다.

통신업계에는 특수고용직, 계약직, 협력업체 등 다양한 간접고용 형태(비정규직)가 존재한다. 명색이 ‘사장’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쉬는 날조차. 추석 다음날인 9월9일, 한 기사는 주문 한 건을 처리하기 위해 당직을 섰다. 그 다음날인 대체휴일에 출근한 다른 기사는 주문이 하나도 없는 자신의 일정표를 보았다. 그래도 집에 가지 못한다. 앞서 말한, 추가 주문된 일을 기다려야 한다.

주 6일 근무에, 일요일마저 한 달에 1~2번은 당직. 운 좋게 명절 연휴에 쉬었다는 기사는 이게 2주 만에 쉬는 것이라 했다. 쉴 수 없는 이들이 모였기에 물었다.

“명절 당일에도 일해보신 분?”

어이없다는 표정들. “명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노동조합 만들기 전까지는 그냥 다 하는 거였죠.”

젊은 기사가 덧붙인다.

“나는 명절까진 참겠는데, 크리스마스 날 당직은 못 참겠더라. 그때는 주문을 넣은 고객한테도 화가 나.”

문제는 당직이 아니어도, 담당 구역에서 발생한 주문은 밤이건 휴일이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 주문이 접수된 뒤 일정 시간이 지나 수리·개통이 완료됐을 경우 불이익이 따라온다. 센터의 잔소리, 실적 평가, 무언의 압력이 휴일에 나와 일하는 풍토를 만든다.

“가족 중 누가 결혼을 해도, 고객 인터넷은 연결해놓고 가야 해요.”

명절 차례? 마찬가지다.

안전장비·작업공구 모두 자비 부담

경력 6년차, A는 아파트 통신 장애를 담당하고 있다. 주문사항을 보던 그는 고객 집이 아닌 지하실로 내려간다. 지하 벽에 붙은 철 박스(후에 들으니 ‘엘투장비’라 한다) 문을 여니 수백 개의 선이 복잡하게 엉켜 있다. 그중 몇 가닥을 끼웠다 뺐다 반복한다. 도통 뭘 하는지 모르겠는데, “3번인가? 이건 아니네” 중얼거리더니 그는 고객 집으로 올라간다.

신입과 경력직원을 가르는 차이. 경력이 생기면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쉽게 감을 잡을 수 있다. 원인을 한번에 찾아내지 못하면 시간이 지체된다. 주문 건당 수수료를 받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집에 올라가니 연휴인지라 가족들이 모여 있다. “이제 켜지네. 어머님이 24시간 TV 앞에서 보내시는 분인데.” 얼마나 답답했을까. 거실에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던 아이가 말한다. “아빠는 못 고쳤는데 아저씨가 하니까 된다!”

개통기사 B는 이것이 통신 일의 매력이라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특정 기술을 가진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부심이다. 그 기술 중 하나는 전주(전봇대)를 오르는 것. 머리에 고압선을 이고 안전장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전주를 오르는 모습에는 능숙함과 위태로움이 공존했다. 땅으로 내려와 어깨에 묻은 거미줄을 털던 그가 말했다.

“비 오는 날에는 손등으로 전주를 툭툭 치며 올라가요.”

추석 연휴 기간에도 인터넷 개통기사들은 쉴 수 없다. SK브로드밴드 개통기사인 B가 울산의 한 건물 옥상에서 케이블을 연결하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에도 인터넷 개통기사들은 쉴 수 없다. SK브로드밴드 개통기사인 B가 울산의 한 건물 옥상에서 케이블을 연결하고 있다.

감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감전되는 순간, 손이 전기가 흐르는 전주를 붙잡는 걸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통신기사들은 감전으로 전주에 매달려 기절도 하고 추락도 한다. 그래도 전주에 오른다.

“비 와서 인터넷 못 고친다고 하면 이해해줄 고객이 얼마나 되겠어요?”

위험작업이다. 그러나 회사는 그에게 안전모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안전장비는커녕 작업공구도 제공되지 않는다. 특수고용직이라 ‘사장’(?)인 그가 사야 한다. 유류비, 식비, 통신비도 마찬가지. 다 갖추면 80만원쯤 든다는 장비를 사고, 주문 한 건에 2만원 정도의 수수료가 떨어지는 벌이를 위해 뛴다. 그래도 생활이 가능한 돈을 집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휴일 없이 일하기 때문이다. 그는 묻는다.

“고객님, 던지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일하겠습니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일할 수가 없어, SK브로드밴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달라진 것은 저녁 당직을 서지 않을 권리, 회사가 갑자기 요구하는 추가 주문을 거부할 권리, 추석 당일 일을 못하겠다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는 거다. 근무시간 외 일을 거부할 수 있는 그 작은 권리조차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것인지. 노조가 생기자 회사는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대체인력으로 온 사람이 조합원보다 더 많은 일을 가져가기도 했다. “조합원은 일이 없어 대기 상태인데, 같은 구역 대체인력은 종일 일을 하더라.” 쫓아가 센터와 한바탕했다. 노동조합이 생긴 뒤, 크고 작은 항의가 있고 다툼이 있었다. 그 싸움들로 지켜낸 권리다.

통신기사와 동행한 날, 다행히 친절한 고객들을 만났다. 어느 집은 수박을 건넸다. 그러나 통신기사는 먹질 않았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다. 여기 화장실 있는데? 그가 말한다.

“화장실 이용하는 거 싫어하는 고객도 있어요.”

‘고객의소리’에서 그 불만을 들었을 때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뒤이어 ‘고객 갑질’ ‘진상 고객’ 이야기가 나온다.

“들어가자마자 모뎀을 집어던지는 고객도 있어요.”

이런 일에 익숙한 그는 “고객님, 던지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대처한다. 약속시간에 방문했는데 집에 아무도 없는 경우, 수리시간이 늦어지자 화를 내는 사람, 개인적인 요구를 하는 고객. “컴퓨터를 고쳐달라” “다른 업체 공유기도 연결해라” “가구를 옮겨달라”.

한 대형 통신업체가 기사들 실적 관리를 엄격하게 하면서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가 많아졌다고 한다. “실적 때문에 고객이 요구하는 건 다 하는 거예요.” SK와 KT, LG 등 3개 통신업체 간에 기사들 이직은 잦고, 경쟁은 서로 도입하는 편이다. 기업은 친절을 상품으로 내건다. 이제는 ‘친절’로는 안 되는, ‘감동’을 줘야 하는 시대가 왔다. 욕을 먹어도 웃는 친절이건 개인 심부름까지 하는 감동이건, 이를 수행하는 이는 통신기사다. 한 해에 몇억, 몇조원의 이윤을 내는 기업이 아니라, 그들이 직원이라 인정도 안 하는 간접고용(비정규직) 통신기사들이라는 말이다.

결국 그는 고객 집을 나와 주민센터 화장실을 찾았다. 안타깝게도, 명절 휴일이라 주민센터 문은 닫혀 있었다. 많은 이들이 쉬는 날이다.

울산=글·사진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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