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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의 위험은 외주화되고 있다

한수원→1차→2차 하청업체로 이어지는 핵발전 하청 구조… 저가 입찰 경쟁 속
전문성 없는 영세업체 난립, 간접고용 노동자들 고용 불안·방사선 노출 등 시달려
등록 2014-10-02 15:06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그는 보이지 않았다. 물 위에는 산소마스크만 떠올랐을 뿐이다.

지난 1월6일 오전, 문아무개씨는 해안가와 맞닿은 전남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 한빛(영광) 핵발전소 냉각수 방수로 근처에 서 있었다. 그는 한전KPS의 하청을 받은 ㄷ사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한전KPS 직원 김아무개씨와 함께 방수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닷물 역류를 막는 수심 10m의 방수로 문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수를 한 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김씨를 구하려고 물속에 뛰어든 문씨도 마찬가지였다.

계획예방정비(Overhaul)를 시작한 핵발전소에는 평소보다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그 자리를 채우는 이들은 하청업체 직원이다. 이날 사고도 한 달 넘게 이어진 한빛 핵발전소 5호기의 계획예방정비 중에 벌어졌다. 영광 지역 노동단체는 하청업체 직원인 문씨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사고 재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노동청에서는 안전 소홀 등의 이유를 들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아닌 하청업체인 한전KPS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 사고는 핵발전소 안 노동의 단면을 보여준다. 국내 핵발전소 현장에는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한수원 노동자와 비슷한 규모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이 핵발전소 노동자의 이야기를 종합해본 결과, 발전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한수원→1차→2차 하청업체의 구조였다. 핵발전소의 구조는 운영·건설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한수원을 중심으로 크게 5가지 분야의 하청업체가 존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전KPS 등의 업체가 정비 업무를 맡고, 포스코ICT의 자회사인 포뉴텍 등은 발전소 계측제어설비 정비를 담당한다. 한국정수공업 등이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용수를 처리하는 일을 하며, 방사선 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나 청소·경비 업무를 맡는 업체도 있다. 그 밖에 두산중공업·현대건설 등 핵발전에 진출한 민간기업과 이어지는 하청업체도 존재한다.

이명박 정부가 부채질한 ‘간접고용 확대’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형태는 핵발전산업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건설업계 등을 중심으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지난해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안 대림산업 공장의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은 단기계약직 노동자 6명도 대형 건설회사의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이처럼 경쟁과 효율성 강화를 통해 적은 인건비로 위험한 노동을 떠넘기는 형태가 핵발전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핵발전소에서 간접고용 형태가 등장한 건, 한수원으로 분리되기 전인 1994년 한국전력이 민간업체에 발전소 업무를 맡기는 내용을 담은 ‘원전 비주력 업무 운영 개선 계획’을 통해서였다. 이명박 정부가 한수원 등 발전 자회사를 수익을 낸 뒤 재투자하는 ‘시장형 공기업’으로 전환하고,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하면서 한수원 정원을 1천 명 넘게 줄인 것이 간접고용 확대를 부채질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회공공연구소의 ‘원자력발전, 안전한 운영을 위한 교훈·비판 그리고 과제’ 연구보고서를 보면, 한전KPS 등으로부터 업무를 수주하는 기계·전기·송변전 등 원자력 정비 분야 2차 하청업체는 2013년 기준 모두 197개였다. 보고서는 또 “하청업체의 난립은 전문성 없는 영세업체를 양산해 항상적 사고 위험성을 높인다. 저가 입찰 경쟁은 정비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포함해 설비의 안전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라고 지적했다.

하청노동자 피폭선량, 정규직의 최대 18.9배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는 핵발전 노동자들은 간접고용 탓에 끊임없는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핵발전소 하청업체는 대부분 1~3년마다 입찰을 통해 선정된다. 새 계약을 맺은 업체는 관행적으로 기존 업체의 직원들과 계약을 맺어 그대로 고용을 승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전문적 업무를 맡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체 사장과 간부만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약에 대한 부담 탓에 하청노동자들은 정당한 요구를 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경쟁과 효율성 강화를 통해 적은 인건비로 위험한 노동을 떠넘기는 형태는 핵발전소도 예외가 아니다. 핵발전소에서 간접고용 형태가 등장한 건, 한수원으로 분리되기 전인 1994년 한국전력이 민간업체에 발전소 업무를 맡기는 내용을 담은 ‘원전 비주력 업무 운영 개선 계획’을 통해서였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빛 핵발전소에서 방사선 안전 업무를 맡고 있는 ㅇ업체 보건물리원들의 사례를 보면 그렇다. 이 발전소는 전체 39명의 보건물리원 가운데 24명이 하청업체 소속이다. 올해 초 ㅇ업체가 한수원과 새 계약을 맺은 뒤, 전아무개씨 등 6명을 이유 없이 고용 승계에서 제외했다. 앞서 하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 승계를 받았던 이들은 “한수원 직원과 같은 업무를 보고 업무 지시를 받았다”며 지난해 10월 한수원을 상대로 불법파견을 확인해달라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낸 바 있다. 이들은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내 보복성 해고를 당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다른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한 보건물리원은 “현재 노동조합이 꾸려져 10년 전보다 나아졌지만, 늘 고용 승계를 보장받는 건 아니다. 발전·청소 분야의 경우는 더 힘들다”고 말했다.

간접고용뿐만 아니라 핵발전 노동자가 겪는 큰 어려움은 ‘피폭’이다.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업무를 하다보니, 법적으로 정하는 피폭선량 한도를 신경 써야 한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 아래에서 피폭선량이라도 넘기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다. 현재 원자력안전법에서는 방사선 피폭선량 한도를 정하고 있는데, 일반인은 한 해 동안 1mSv(밀리시버트·피폭단위)를, 방사선 작업 종사자는 한 해 평균 20mSv, 5년 동안 100mSv를 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피폭의 위험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온다. 지난해 10월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에너지정의행동과 함께 한수원으로부터 받은 ‘한수원 출입 방사선 종사자 업체별 인원수 및 총피폭량’ 자료를 보면, 2013년 한수원 출입 방사선 종사자 1만4715명 가운데 한수원 노동자 5250명의 1인당 피폭선량은 0.14mSv였다. 하지만 가장 피폭선량이 많았던 월성 1호기 압력관 교체 공사를 한 하청업체 노동자들(4명)의 평균 수치는 2.65mSv로 18.9배였다. 법으로 정한 피폭선량에는 미치지 않지만, 핵발전 노동자 평균 피폭선량인 0.73mSv를 훨씬 웃도는 결과다. 핵발전 정비 업무를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까지 포함한 이 자료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얼마나 피폭 위험에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

최근 국내 핵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여러 분야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공공비정규직노조 지회를 세우고 월급 인상과 고용 형태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원전 비리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한수원 입찰 제한을 받은 한국정수공업 소속 월성·한울(울진)·한빛 핵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 140여 명이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냈다. 그동안 위험에 노출돼 있던 핵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위험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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