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세월호 참사 146일째, 한가위

등록 2014-09-04 16:50 수정 2020-05-03 04:27
<ahref href="mailto:morgen@hani.co.kr">morgen@hani.co.kr">



저는 평소 한국 경제가 극히 짧은 시간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두 가지를 꼽곤 합니다. 일본이 식민지 조선 사회의 발전에 도움을 줬다는 주장, 이른바 근대화론을 꺼내려는 게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초기 조건’이 상당히 평등해졌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죠. 자본주의는 초기 조건이 평등할수록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성장할수록 되레 불평등을 낳는 건 또 다른 숙명입니다. 오늘날 극심한 불평등 구조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역설도 여기서 나옵니다.
초기 조건의 평등주의가 우리 경제의 눈부신 성장에 도움을 주었을지언정, 상처를 안겨준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회’의 붕괴, 또는 미성숙이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죠. 하루아침에 구질서와 전통, 가치규범이 무너져내린 ‘평등한’ 땅에, 시장경제라는 괴물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손쉽게 이식됐습니다. 사회란 결국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적 이해에 따른 첨예한 갈등을 중재하고, 완화하고, 때론 적당히 무마하는, 완충지대입니다. 사회라는 이름의 영역이 튼튼히 뿌리내릴수록, 그 공동체는 한쪽으로 맥없이 휩쓸리지도, 야만의 선동에 눈멀지도, 냉혹한 시장 논리에 운명을 내맡기지도 않습니다.
세월호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로선, 그 어느 때보다 사회의 부재가 안겨다주는 허기를 절실히 느낍니다. 곡기를 끊은 채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며 진실 규명만을 바라는 부모의 가슴을 후벼파는 저 야만의 목소리는 결코 사회의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정부·여당의 사악함과 야당의 무능함이 빚어내는 이중주를 끝낼 최종병기는 오로지 튼튼한 사회의 재구성뿐입니다. 최소한의 예의와 품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회 아닌’ 이 땅의 비극입니다.
4월16일에 터진 세월호 참사는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비가 46일간 곡기를 끊었음에도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참사 이후 처음 찾아오는 한가위(9월8일)는 하필 참사 146일째 되는 날입니다. 1, 4, 6이란 숫자가 참으로 어지러이 얽히네요. 갈 길 잃은 우리 ‘사회’처럼.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릴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우선, 은 제1027호부터 가격 인상에 나섭니다. 정기독자들께는 양해를 구하는 편집장의 엽서를 제1027호와 함께 따로 보내드립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10~11쪽 ‘알림’에 담았습니다. 구차한 변명일랑은 피하렵니다. 가격 인상의 열매는 더 나은 기사와 서비스로 반드시 되돌려드리겠습니다.
또 하나. 이번 한가위 합본 특대호에서도 변함없이 퀴즈큰잔치 마당을 차렸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은 남습니다. 이 매년 설과 한가위에 진행해온 퀴즈큰잔치 1등 상품은 으레 자동차였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완성차 업체가 예정된 연간 광고집행액 일부를 퀴즈큰잔치 경품으로 제공해온 덕분이죠. 1997년 이래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이어진 전통입니다. 올해에도 협찬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던 해당 업체는 퀴즈큰잔치 지면 마감일(수요일), 돌연 여러 사정을 들어 경품 협찬 취소 결정을 알려왔습니다. 공교롭게도, 취소 결정을 통보해온 시점이 이 직전 호(제1026호) 표지이야기(‘이렇게 달려?’)로 이 업체의 사내하청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직후네요. 독자님들의 이해를 구합니다.

*은 한가위 합본 특대호를 내고 일주일간의 휴식에 들어갑니다. 한 해 중 가장 풍성한 명절이라지만, 올해 한가위를 맞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건 비단 가족들만은 아니겠지요. 상처는 어루만지고 고통은 함께 나누며 분노엔 당당히 연대하는 한가위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다짐합니다.

</ahref>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