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인터뷰의 제목을 편집자는 ‘이 길을 내준 사람이 고맙다 고맙다’라고 달았다. 읽으며 나도 그랬다. 인터뷰 당사자인 안은주 국장도 함께 일하는 스태프가 ‘인터뷰 읽고 뽕 맞았다’고 했다며 고맙다고 했다. 선한 에너지의 파장이 따끈한 목욕물처럼 피부에 와닿는 느낌. 누군가를 다독이고, 일으키고, 지켜주는 일에는 늘 선한 에너지가 넘쳐난다. 그게 다시 그 에너지를 생산한 이에게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는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반올림을 주 활동 무대로 하는 산업의학과 전문의 공유정옥은 그런 선한 에너지의 정체를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만났다.
먼저, 반올림이란 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을 올리자는 의미다. 공식 명칭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삼성전자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산업재해 인정 투쟁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단체로, 주요 활동은 삼성전자반도체 노동자들과 백혈병에 관한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막강한 자본이라는 삼성에 맞서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활동이 평탄할 리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삼성과 맞서는 일은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의 활동 못지않은 용기와 희생을 요구한다. 반올림이 바로 그런 조직이다.
의사 면허 가진 노동보건운동가공유정옥은 반올림에서 산업재해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온 산업의학과 전문의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저쪽 편의 기만과 비합리성을 밝혀내는 대항전문가다.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나’이지만 대개의 전문가들은 기존의 길로 가지 않으면 누구한테 맞기라도 할 것처럼 행동한다. 공유정옥은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전문의가 되자마자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는 단체의 상근자가 되었다.
공유정옥은 반올림과 반도체 직업병에 대해서 주로 말하고 싶어 했고 나는 그의 삶과 생각을 통해서 그것들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는 반올림이 아니라 자신이 인터뷰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불편해했고 자신의 사생활이 소비된다는 느낌이 싫다고 했다. 뭔지 알아들었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공유정옥의 얘기를 듣고 정리했다.
- 본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한다면요.
=제일 대표적인 건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하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인 거 같아요.
- 의사에 방점이 찍힌 건 아니죠.
= 네. 전문 운동가였는데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그 이름에 의사라는 게 끼어든 거죠. 노동자 건강권 운동의 철학부터 아주 소소한 부분까지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7년을 풀타임으로 보냈기 때문에 현장의 전문성이 있다고 볼 수 있죠. 의사 면허가 있는 노동보건운동가라고 할까요.
- 삼성 직업병 통역사로 불리더군요.
= 제가 붙인 이름은 아닌데요, 언론에서 제가 무슨 연구 같은 걸 하고 이런 것처럼 말하기에 제가 하는 일은 삼성전자반도체 직업병과 관련해 유용한 연구나 자료가 있으면 그걸 이해하기 쉽게 통역해주는 일종의 통역사 같은 거다라고 설명했더니 그렇게 됐습니다.
- ‘이해’는 본인의 정체성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한 거 같습니다. 근데 쉽지는 않은 일이겠어요. 특히 삼성 쪽 사람들을 이해시킨다는 게.
= 그게 사실 복잡하고 전문적인 게 아니라 그냥 기본이 되는 얘기를 하는 건데 못 받아들여요. 제가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하면서 전문가라고 하면 우리 쪽이냐 회사 쪽이냐를 가리지 않고 ‘이건 이렇지 않나요? 제가 배운 건 이런 건데 제가 잘 몰라서요’ 그렇게 물었죠. 그런데 1년도 안 돼 그런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최신지견까지는 잘 몰라도 기본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게 맞더라고요. 복잡한 문법은 몰라도 알파벳 에이비시(ABC)는 확실히 아는 거죠. 에이는 대문자로 이렇게 쓰는 게 맞는데 저쪽에선 보도자료에 뒤집힌 에이를 써놓고 자기들 말이 맞다고 우기는 겁니다. 깊은 지식이나 최신 정보를 가지고 싸우는 국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삼성이란 집단, 이해력이 한참 떨어진다”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틀리는 것을 본 적도 없고 최종 승자가 아닌 것을 본 적도 없다. 시간의 문제일 뿐.
-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이겠네요.
= 적어도 덮어놓고 안전한 일자리는 없다는 상식에는 조금 가까이 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에이, 설마 삼성인데 그럴 리가’ 그렇게 말해요. 오랫동안 삼성의 직업병 문제를 다루다보니 이런 의심도 생겨요. 구조의 문제일지 가장 최고에 있는 의사결정권자의 문제일지는 모르지만, 삼성이라는 집단이 이 문제와 관련해 굉장히 이해력이 떨어지는 집단이라는 겁니다. 말을 못 알아듣는 측면도 있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경우엔 상대편 적진에 있는 우리 편, 즉 엑스맨 같기도 해요. (웃음)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같은 희귀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된다는 이야기와 사업체가 뭘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산업재해로 인정한다고 하면 사업주가 잘했건 잘못했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병에 영향을 미칠 만한 유해 요인이 존재했을까 안 했을까만 따져보면 돼요. 그런데 삼성은 유해 요인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혹은 프레임을 그렇게 만들어서 자사 직원이 산재로 인정받으면 회사에 큰 손실이 나고 직원들이 불안해지고 결국 한국 경제의 쌀인 반도체 산업의 근간이 흔들린다, 이렇게 가는 거죠. 자기네는 완벽하게 관리했다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연구들을 계속 학회에 발표하고 있어요.
- 우리나라 산재 불인정률이 88%나 된다면서요.
= 업무상 질병에 대한 논쟁을 할 때 저는 관련 전문가들이 과학을 참칭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사구시, 이게 과학의 기본 원리니까 현실을 보고 기존 이론이나 설명에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그걸 바꿀 생각을 해야지 현실을 버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자기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암에 걸렸다는 사람이 계속 나오면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이걸 무시해요. 과학의 이름을 내걸고 그런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해요. 우리는 과학자다, 과학적으로 이 질병의 원인을 못 찾았기 때문에 못 찾았다고 이야기하는 거다, 그러면 사회적 판단, 즉 산재 보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근로복지공단이 하는 거다, 우리는 연구원이고 과학자인데 과학자가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과학적 판단을 그르치면 큰일 난다는 거죠. 그런 얘길 들으면 저는 정말 하얗게 화가 나요.
- 하얗게 화가 난다? 뚜껑이 열린다는 뜻인가요.
= 그거랑은 조금 달라요. 뚜껑이 열리면 ‘풍’ 하고 하늘로 솟아오를 것 같은데, 하얗게 화가 나면 눈물이 나요. 막 울게 돼요.
죽은 아이들, 삼성에서 일하던 그 아기들그런 환경에 둘러싸여 7년 동안 거대자본 삼성과 맞섰다 생각하니 듣는 마음까지 하얗게 아득해지는 느낌.
- 전문가들의 기본이 안 된 그런 태도들이 문제로군요.
= 배에서 도장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작업할 때 스프레이를 엄청나게 뿌리니까 자고 일어나면 소변에서 술 냄새가 난대요. 유기용제, 시너, 톨루엔 이런 것에 노출돼서 그런 거죠. 그런데 소변검사를 하면 아무 이상이 없는 걸로 나온다는 거예요. 그게 월요일이나 화요일, 수요일 아침에 소변을 받아가서 그래요. 법에는 금요일 근무가 끝나고 소변을 받으라고 돼 있지만, 건강진단 기관들이 그때에 맞춰서 기다렸다가 받아가는 게 귀찮고 사업주도 이상한 거 나오면 골치 아프니까 하나 마나 한 검사를 하는 거예요. 술을 토요일까지 마시고 월요일 아침에 음주검사를 하면 뭐가 나오겠어요. 그런 식이니 나중에 직업병 걸렸을 때 노출이 없다는 혹은 노출되지 않았다는 이상한 근거로 외려 악용되는 거죠.
- 반올림 활동하면서 현실적으로 제일 어려운 점은 뭔가요.
= 두 가지가 일관되게 어려워요. 반올림 활동이 이제 7년 됐는데 하나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지 못해서 힘들고요, 또 하나는 죽음이 늘 주위에 맴도는 게 너무 힘들어요. 좀 못됐다는 소릴 듣더라도 그만 보고 싶고 도망가고 싶어요. 돌아가시는 모습을 실제로 세 분 봤는데 정말 더 이상 못 보겠어요. 그 슬픔이나 억울함에 잡아먹힐 것 같은 거죠. 그래서 거리를 두어야겠다, 최대한 안 봐야지 그러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잖아요. 그 일을 나눠야 하는데 나눌 사람들이 아직 그렇게 많지 않아서 동료들 몇 분이 굉장히 고생하고 있죠.
내 몸까지 움찔거려서 심호흡하고 마음속으로 두 손 모았다. 이런 것도 직업병이겠구나.
- 삼성 노동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가장 처음 떠오르는 인상은 공장 앞에서 본 모습들이에요. 삼선 슬리퍼 신고, 테이크아웃 음료 들고, 뱅헤어 하고 팔짱 끼고 가다가 우릴 보고 ‘어, 뭐야 뭐야?’ 이러기도 하고 ‘가자 가자’ 이러기도 해요.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듣는 전형적인 10대 여학생들의 말투 있잖아요. 근데 죽은 아이들도 저런 말을…(울음 때문에 한참 말을 못 이음. 물끄러미) 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 그 생각이 나서 우셨던 건가요.
= 네. 황유미씨 다이어리에도 그런 10대의 전형적인 표현이 많아요. 그걸 보면서 ‘아, 아기였구나. 그렇지. 나도 19살에 진짜 아기였지’ 그런 생각이 나요. 그리고 두 번째는 많이 만나보진 못했지만 엔지니어분들이에요. 영화 에 나오는 이경영이 연기한 그런 분들요. 1984년에 공장을 가동하고 나서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이런 것 하나도 못 보고 계속 일했대요. 혼을 실어서 일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 다 나와는 다른 세대인데 하나는 너무 어려서 서럽고요, 하나는 내 아버지 세대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봤음직한 헌신하는 조직 구성원이랄까요. 제게 삼성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 두 가지가 지배적인 이미지고 세 번째는 정말 못되게 구는 사람들이고요.
“이 좋은 것 포기하고 왜 돈을 버나”그는 사람들 얘길 하면서 줄곧 울었다. 내가 건넨 손수건이 민망할 만큼 많이 울었다. 나중에 녹취를 담당한 인턴기자는 녹취를 풀다가 울기는 처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파하는지가 맞은편 자리까지 공기처럼 밀려오는 느낌이어서 나도 한참 숨을 골랐다. 그렇게 힘든데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그래서 하는 것일까.
- 어떻게 버티세요.
=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버틴다는 말은 맞지 않죠.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반올림 활동을 시작할 당시엔 제가 자기 잣대를 확실히 가진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되고 싶은 어떤 방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의사 사회를 접하면서 저렇게는 되기 싫은데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안전한 길로 가는 게 낫겠다고 결심한 거죠. 산업의학과를 선택한 거나 전문의가 되고 나서 단체의 상근자 일을 하기로 결심한 건, 내가 더 재미있고 더 안전한 쪽의 일을 선택한 거죠.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란 게 있지만 의사라는 전문 직종이었기 때문에 그런 갈등이 더 심했을 거라고 예측하는 것 같습니다. 돈도 포기해야 했을 테고요.
= 돈을 포기하다니요. 왜 포기해요. 돈은 필요하죠. 그걸 어떻게 얼마만큼 벌겠다고 제가 스스로 결정한 거지 돈 버는 걸 포기한 적은 없어요. 돈이 필요할 때는 일을 조금 더 해서 모으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생활비를 줄여서 조금 거지같이 사는 거죠. 그래도 괜찮아요. 다른 쪽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으니까요.
성인이 된 우리 집 아이 셋 모두에게 ‘네가 가진 재능과 지식으로 돈 버는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해진다. 안 굶어 죽는다’고 당부했던 경험이 있어서 나는 그의 말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방 이해했다.
- 세계 각지의 재난 현장과 오지를 찾아가는 쿠바 의사에게 ‘왜 돈을 안 벌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진료하는가?’ 그렇게 물으면 어리석죠. 의사란 본래 아픈 사람을 찾아가는 직업이니까요. 근데 실제로 공유 선생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하죠.
= 왜 이 좋은 것을 안 하고 돈을 법니까? (웃음) 제 베프가 말해줘서 알았는데 제가 자주 하는 얘기가 ‘일노일쥐’래요. 그게 뭐냐 그랬더니 ‘하나를 쥐면 하나를 놔야 한다’는 얘기를 제가 많이 한다네요. 의료 파업도 있지만 대부분 의사들이 오래전부터 계속해온 얘기가 못 살겠다는 거거든요. 저보다 몇 배나 더 버는 분들이 힘들다고 하는 거죠. 저는 그게 진심일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힘든 거죠. 그런데 저는 훨씬 적은 돈을 벌면서도 돈에 찌든 모습을 안 보이고 사니까 이것도 효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 본인의 삶에 만족하시나봅니다.
= 참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해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할 만큼요. (웃음) 못 가본 길이 많아서 아쉬울 때는 있죠. 외과처럼 물리적 고통을 며칠 혹은 몇 주에 바로 덜어줄 수 있는 분야는 못 가본 길이라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해요. 좋아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후회하지는 않아요.
처음 가는 길은 다 어렵다- 노동보건 전문가로서의 활동이 좀 정리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 지금 바이올린을 6년째 틈틈이 배우고 있는데 어느 날 꿈에서 제가 마흔 몇 살에 음대 들어가고 그래요. (웃음) 쉬는 날엔 하루 종일 손뜨개질도 하고요. 뭐 만드는 걸 무척 좋아해요. 바쁜 호흡으로 기한에 맞춰야 하는 것에는 서툴고 천천히 오래 걸려서 하는 일들이 좋아요. 더 늦기 전에 시작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어요. 예를 들어 독립적이고 강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런 마음요. 그런 면에서 사람들에게 기대서 사는 것도 해보고 싶어요. 신세 지고 이러는 거요. 미안해하면서 쭈뼛거리며 놀러다니면 좋을 거 같아요. (웃음)
홀가분한 삶의 처방전까지 가지고 있는 듯해서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은 심정. 더 물어 무엇하리. 응원처럼 경탄처럼 그에게 보내는 시 한 구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도종환 ‘처음 가는 길’
처음 가는 길은 다 어렵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어도 내게는 처음이므로 그렇다. 그러므로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에겐 진심 어린 축복과 깊은 응원이 필요할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공유정옥도 그리고 우리도.
이명수 심리기획자녹취 전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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