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네이처’(Mother Nature). 영어권에서 대자연을 ‘어머니’로 표현하는 게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참 야속한 이름이다. 자연은 생명의 근원이자 인간을 보듬는 둥지인 한편, 뭇 생명과 인류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안기는 소용돌이이기도 하니 말이다. 3월11일 일본 열도를 삼킨 대지진과 쓰나미의 위세 앞에서 우리는 숨죽인 어린아이가 되어 심장 깊숙한 곳을 강타하는 공포를 삼켜야 했다.
원인을 조사할 수도 없고 문제의 근원을 파낼 수도 없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자연, 스스로 그러하게 된 일이다. 자연의 일부로서, 뭇 생명을 내고 거두는 자연의 흘러감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마음 속에서 오만을 씻어내고, 인류애라는 끈을 붙잡고 함께 물살을 헤쳐나가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대지진 소식이 들리기 전까지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청소노동자 어머니들이다. 시급 4320원에 쉴 틈 없이 하루 10시간을 일하고, 아침·점심 끼니는 곰팡이와 쥐들의 서식처인 계단 밑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해결하며 살아가는 어머니들. 시급 860원을 올려달라는 요구로 파업까지 벌여야 하는 어머니들. 그들에게 남들만큼의 임금과 작은 휴식공간조차 마련해주지 않는 이 사회는 과연 인간의 사회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3월8일이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이었다.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는 미국 노동자들의 뉴욕 궐기가 이 기념일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 청소노동자 어머니들의 삶은 과연 그때와 견줘 얼마나 윤택한 것인지 돌아본다. 말이나 허울뿐인 제도로는 양성 평등이란 휘황한 가치를 드높이지만, 계단 밑의 저 남루한 일상에는 애써 눈감거나 아예 무감각한 게 오늘의 여성 현실이다.
자연의 눈으로 보면 100년은 찰나와 같은 시간이다. 그동안 인류의 문명은 전진해왔노라고 자만해선 안될 일이다. 자연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궁한 시간을 도도하게 흘러갈 것이고, 그 앞에서 우리가 서로 손잡고 개척해나가야 할 인간다운 세상의 지평 또한 한계가 없을 것이다. 오늘, 손톱만큼이라도 전진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의 나고 사라짐이 저 쓰나미에 쓸려가는 티끌과 무엇이 다르겠나.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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