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쓰는 건 뭔가 기록해둬야겠다는 강박증 같은 심리의 작용이다. 여러 신문에 종종 나오는 기사이지만, 에도 기록은 남겨야겠다는. 한 해 동안 2천 명 이상 희생되는 그들에 대하여.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만 모두 2181명이 숨졌다. 2003년 이후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가 4천여 명이고(민간인은 10만 명 이상이니 비할 바는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2001년 10월 개전 이후 올해 5월 말까지 사망자가 1천 명을 넘은 데 견주면, 가히 전쟁 수준이다.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발발한 것일까.
각종 자연재해로 숨진 우리의 이웃들이나 천안함 침몰 같은 불행한 사고로 숨진 이들은 우리에게 깊은 슬픔과 날선 각성을 촉구하지만, 저 2천여 명의 죽음은 신문 사회면의 1~2단 기사를 통해서나 겨우 원혼의 처절한 날숨을 불어낼 뿐이다.
산업재해 사망자들이다. 올해 1분기에만 521명이 사망했다.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넘어지거나 위에서 떨어지는 물건에 맞거나 충돌·붕괴 사고로 숨진다. 총탄에 맞거나 폭발에 찢기는 만큼이나 끔찍한 죽음이다. 그런 죽음이 사회면 1~2단 기사로 간략하게 ‘처리’된다. 사회적 논란도 불붙지 않는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죽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이다.
지난 7월27일 부산 해운대 우동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그 죽음의 숫자에 3명이 추가됐다. 초고층 아파트의 외벽 거푸집, 작업 발판 해체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64층 높이에서 추락해 숨졌다. 200m 높이였다고 한다. 조금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도 머리가 어찔하는 고소공포증 환자인 나로서는 다리를 후들거리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작업 환경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그런 공포쯤이야 거뜬히 이겨낼 만큼 용기 있는 가장들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라면 가족을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도 기꺼이 자원해 나섰을 것이다.
그렇게 담대한 이들이 한 해 수천 명씩 숨져간다. 올해 1분기에만 521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부동의 1등이다. 건설업(39.9%), 5~49인 사업장(38.9%), 60살 이상(19%)에서 가장 많다. 가장 많은 이들(32.1%)이 추락으로 사망한다. 끔찍한 현상이다.
에어컨이 켜진 사무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푸념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기사를 데스킹한다. 전쟁 분위기를 부추기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비판하는 기사를 출고한다. 아마 이 순간에도 어느 공장에서, 비좁은 작업장에서, 초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아빠·엄마를 잃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지 모른다. 짧은 기사를 쓰고 말지 모른다. 사건을 덮는 데 급급할지 모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때처럼 세상은 빙글빙글 돈다.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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