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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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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광장

등록 2008-06-17 00:00 수정 2020-05-03 04:25

▣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우리말로 쓰여진 가장 아름다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한민국 헌법을 첫손에 꼽겠다. 시처럼 반짝이는 언어로 조탁되지도 않았고(사실 헌법의 문장은 한자투성이에 조악하기 그지없다), 소설처럼 삶의 숨겨진 결을 흥미롭게 또한 감동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지만(오히려 개념어의 나열인 헌법 문장에서 구체적 삶이란 완전히 배제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아름답다. 수억 명 사람들의 눈물과 피, 염원과 환희를 담고 있어서다. 60년 전 우리의 헌법을 처음 갖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만주벌판 눈보라 속을 헤매었나, 주린 배를 부여잡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나. 그 뒤로 헌법이 여덟 차례나 새 옷을 입고 나타날 때마다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 흘리고 개탄하고 목놓아 또 다른 헌법을 불러야 했나. 그 모든 삶들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마다 결을 새겨넣었으니, 그 단어는 단단하여 빛나고 문장은 간명하여 장엄하다.
그저 “몇몇 사람이 제멋대로 얼마간 가지고 놀다가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난감”이나 “‘독재불량 정치’로 설사를 하고 뒤를 닦는 휴지”(박홍규 )였던 헌법이 이제야 진가를 널리 인정받아, 제1조가 통째로 국민 애창곡의 노랫말이 됐다. “나는 그 어떤 위대하다는 동서양 철학보다 우리 헌법을 사랑한다. 완벽한 미인은 아니지만 정말로 사랑한다. 더욱 사랑해서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던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는 요즘 무척이나 기쁘시겠다. 나 또한, 사형제 폐지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을 명시하고 있는 독일 헌법의 금발 요염한 자태에 간혹 눈길을 뺏기기는 해도, 대한민국 헌법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기쁘다. 헌법이 단지 추상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삶의 문제에 적용돼야 하며, 우리는 그 적용 방법을 발랄하게 창조해나갈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헌법은 바야흐로 빼어난 서정시이자 대하소설로 역이행하고 있음이다.
그리고 헌법은 제1조만 있는 게 아니므로, 앞으로 또 기뻐할 일이 생겨났으면 하고 바란다. 국민주권을 선언한 제1장은 국민의 권리를 규정한 제2장으로 이어진다. 직장에서 또 가사일로 고통받는 유모차 부대나 하이힐 부대는 제11조와 34조를 노래한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휠체어를 타고 촛불집회장에 나온 이들은 제34조를 휠체어에 붙인다.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돌보는 이 없는 빈곤층 노인과 아이들, ‘알바’하면서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청소년들은 제32조와 34조를 촛불과 함께 흔든다.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청소년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대운하에 뿔난 이들은 ‘명박산성’ 너머로 제35조를 외친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학교에서 원하지 않는 종교 교육을 강요받는 학생들은 제20조를 광화문 아스팔트 위에 분필로 눌러쓴다.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그리고 또 제37조로 못을 박는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또 있다. ‘기업 프렌들리’에 신물나고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민생고를 겪는 서민들은 저 멀리 제119조를 불러낸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선언이 선언에 그치지 않음을 선언한다. 그리하여 촛불의 물결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제10조)는 참세상의 서사시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그러자면 서울시청 앞 광장의 ‘서울광장’이라는 밋밋한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참에 ‘헌법의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 역사는 기꺼이 서울의 이 새로운 명소를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으로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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