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1.
그들은 억울했다,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절박한 심정을 표출했다, 평화적으로. 국가는 귀기울이지 않았다. 어느 날, 거리로 나섰다. 현행법 위반이었다. 국가는 그들을 체포했다. 그러나 헌법은 법률 위에 있었다.
2.
1963년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시에서의 일이다. 당시 버밍햄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흑인들의 평화적인 저항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4월6~7일과 9~10일 사전 신고 없이 거리행진에 나선 흑인들이 체포됐다. 당국은 10일 밤 이후의 거리행진을 금지하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부활절을 앞둔 성금요일이던 4월12일,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한 50여 명의 흑인이 행진을 강행했다. 몇 블록 가지 못해 경찰이 이들을 막아섰고 붙잡아 감옥에 가뒀다. 부활절에도 행진은 이어졌다. 50여 명 가운데 20여 명이 투옥됐다. 지켜보던 군중 사이에서 경찰을 향해 돌이 날아갔다. 그 또한 바로 체포됐다.
이 사건은 미 연방대법원에까지 올라갔지만, 피고인들은 패소했다. 그때,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법관 중 한 명인 윌리엄 브레넌이 소수의견을 썼다.
“이 법정은 오늘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너무나 파괴적인 무기를 국가의 손에 쥐어줬다. 우리는 소요사태와 시민 불복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 주의를 돌려서는 안 된다. 그 중요한 문제란 국가가 도로나 인도를 통제할 권한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이나 결정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일이다.”
브레넌은 질서의 가치가 때로 무질서의 가치에 경의를 표해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공공질서의 희생을 가져올지라도 선동이나 과격 행위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국민의 자존과 반대 의견을 허용하는 정치체제를 위해선 저항의 행위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들의 주장을 펴기 위해 제도화한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처지의 시민들에게 행동은 대체 불가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3.
2008년 대한민국의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지금 한국은 스스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시민들의 평화적인 저항을 상징하는 나라다. 5월24일 이래 사전 신고 없이 거리행진에 나선 시민들이 체포됐다. 당국은 거리행진은 불법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후에도 수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30일 현재 211명이 체포됐다. 검찰은 그들 중 일부를 기소할 것이다. 법원은 뭐라고 말할까. 거리에선 아직 돌멩이 하나 날아가지 않았다.
4.
현행법을 위반하는 행동도 그 법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면 정당할 수 있다. 브레넌의 소수의견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논하는 듯하다. 그러나 마틴 루서 킹은 거리에 나서기 전 이미 그 모든 논증을 피부로 알고 있었으리라. 지금 촛불을 든 이들도 모두 그러하리라. 뒤늦게 펜을 드는 글쟁이는 그래서 서글프다.
그래도 예측불가의 이 ‘사태’를 좇아 기록하는 일은 가슴 벅차다. 나라가 꼴을 갖춰가고 세상이 더 살 만해지는 일의 시작은 늘 그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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