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사실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뉴스 전문 케이블TV 채널을 보다가 웃음이 나왔습니다. 너무 솔직해서 그랬습니다. 한미 FTA와 관련된 시사 프로그램 진행 끄트머리에 나오는 여성 앵커의 클로징 멘트였습니다. “한미 FTA는 한국 경제에 청신호가 될까요, 적신호가 될까요?” 혼자 그렇게 물은 뒤 잠시 머뭇거리더군요.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잘 모르겠다”는 멘트를 날리는 겁니다. 허탈했지만, 의외로 여운이 남았습니다.
한미 FTA 2차 협상이 끝났습니다. 여론은 뒤집어지고 있습니다. 반대가 찬성을 추월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들 대다수는 여전히 헷갈립니다. 어쩌면 그 앵커의 고백은 한미 FTA에 대한 한국인의 평균적인 인식 수준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인지 모릅니다. 일단 한미 FTA는 머리가 아픈 주제입니다. 어려운 용어도 많고, 포괄하는 분야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국제 경제의 구조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중심이 없으면 흔들립니다. 반대 쪽 의견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찬성 쪽 논리에 솔깃해지지는 겁니다.
은 이번호에서 한미 FTA에 관해 뽕을 빼기로 했습니다. 첫 장 ‘원샷’부터 마지막 ‘노땡큐’까지 단 한 쪽의 지면도 예외가 없습니다. 표지이야기는 물론 구석구석에 있는 작은 칼럼들까지 한미 FTA와 인연을 맺게 했습니다. 이렇게 전 지면을 통털어 한 주제로 일색화한 것은 창간 이후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지난해 2월에 60여 쪽에 이르는 ‘박정희 X파일’을 표지로 꾸민 적이 있지만, 양적인 면에서 비교가 안 됩니다.
한미 FTA는 ‘밥’을 둘러싼 문제입니다. 협상의 결과에 따라 두 나라가 ‘밥’의 교환할 방식이 결정됩니다. 미국인들이 ‘대한민국 밥’을 다 퍼갈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밥’을 빌어먹어야 하는 신세가 된다면 끔찍합니다. 여기까지의 ‘밥’은 소득의 수단을 상징합니다. 이제 우리는 한미 FTA를 향해 전혀 다른 한국식 표현으로 이렇게 시비 걸고 구박해야 할 겁니다. “넌 내 밥이야!” 요즘 쏟아지는 시민단체의 자료집과 책들은 그러한 시비의 소산입니다. 한데 왠지 전문적이고 학술적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은 좀더 쉽고 재미있고 대중적으로 ‘저널’하게 시비를 걸고 싶었습니다. 한미 FTA가 ‘죽일 놈’은 아니지만 끝까지 뒤를 밟으며 의심해야 할 존재인 것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벌써 한미 FTA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어느 지인에게 들은 피해 사례입니다. 길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한미 FTA를 공개적으로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농촌 사랑 캠페인을 다 믿지 마십시오. ‘우리 농산물을 더욱 사랑해주십사’ 우리 쌀을 공짜로 나눠드린다는 유혹. 여기에 꼬여 생각지도 않던 40만원짜리 인삼 엑기스를 강매당한 분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한미 FTA 핑계 조심하세요.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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