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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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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표본

등록 2006-07-1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1억5천만원어치 아픔을 드려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골고루 아픔을 나눠드린 것은 아닙니다. 한분이 혼자 차지했습니다. 금창태 사장입니다.
정말이지 이런 칼럼을 또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종업계 매체에 관해 다시 왈가왈부하기 싫었습니다. 그렇지 못한 상황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금창태 사장이 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16~17쪽 관련기사 참조). 2주 전 이곳에 쓴 ‘사장님, 그래도 됩니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문제 삼았습니다. 사전에 본인에게 확인을 하지 않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겁니다. 그는 민·형사상 책임을 모두 물었습니다. 민사소송 가액은 1억5천만원입니다. 뿐만 아니라 비난 성명을 발표했던 한국기자협회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도 똑같은 방식으로 고소했습니다. 도합 4억5천만원입니다.

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지금 시간은 새벽 2시, 마감은 급한데 글의 진도가 잘 안 나갑니다. 잘못 자판을 놀렸다가 곱빼기로 소송에 휘말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1억5천만원의 ‘위축 효과’와 ‘재갈 효과’가 은근히 센가 봅니다.

소송이 닥칠 거라는 예감은 했습니다. 이미 금창태 사장에게 개인적으로 전해들었던 내용입니다. 문제의 칼럼이 실린 이 발행됐던 6월26일 저녁, 그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의 언론인 생활 중 가장 모욕적인 일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언론 탄압의 가해자’로 비쳐지는 게 참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몰상식의 표본’이라는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남을 실명으로 비판하는 게 얼마나 못할 짓인지 잘 압니다. 그의 어조는 높았고 거칠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 정도 수준의 화풀이는 꾹 참고 감수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래도 최후통첩 멘트는 듣기 거북했습니다. “모레 오전까지 내 사무실로 와서 사과하지 않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 저도 인간적 모멸감이 솔솔 피어오를락 말락 했습니다. 설마 오란다고 쪼르르 달려가 석고대죄하리라 믿지는 않으셨겠지요?

그날 의 몇몇 기자들에게는 “고맙다”는 전화 인사를 받았습니다. 비극적인 일입니다. 남의 신문사 내분에 엉뚱하게 끼여 곤혹스럽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 소송에 대해 “끝까지 강력 투쟁”따위의 선언은 남발하지 않겠습니다. 토론이 필요하다면 하겠습니다. 금창태 사장이 비타협적으로 소송에 임하겠다면 이기기를 빌겠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이렇게 말을 바꾸는 날이 오기를 상상해봅니다. “편집국장을 따돌리고 삼성 관련 기사를 삭제한 금창태 사장의 행위는 정당한 편집권의 행사이며, 따라서 ‘상식의 표본’으로 기록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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