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알고 보니, 죽지 않고 살아 있더군요.
1990년대 초반에 발생했던 사건입니다. 지아무개라는 전투경찰 대원 한 명이 실종됐습니다. 휴가 마지막 날 귀대를 앞두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불확실한 목격자와 괴담이 난무했습니다. 상관이나 선임병들에게 폭행·치사 당한 뒤 은폐됐을 거라는 추측까지 나왔습니다. 그가 휴학 중이던 대학의 친구들은 대책위를 꾸렸습니다. 부모님도 “진상을 규명하라”며 머리띠를 맸습니다. 그의 주검이 매장됐을지 모른다는 무덤까지 발견됐습니다. 그러곤 얼마간의 지리멸렬한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1년 뒤쯤 그가 나타났습니다. 멀쩡한 몸으로 경찰 불심검문에 걸렸습니다. 신문배달원의 신분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귀대 시간이 늦어 상관에게 기합을 받을까봐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신문 사회면 1단으로 실린 그 짤막한 기사를 보며 푸하하하 웃던 기억이 납니다.
‘납북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씨도 그렇게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었던 김영남(45)씨는 그녀가 1994년 4월13일 병원에서 자살했다고 증언합니다. 북한 당국의 주장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일본에 있는 가족들은 안 믿습니다. 일본 정부도 유골의 DNA를 들먹이며 트집을 잡습니다. 저는 메구미씨가 죽었다는 쪽에 걸겠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상 일본 쪽보다 북한 쪽 말에 더 신빙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99%의 예측을 깨는 파격적인 반전이 있다면, 세상이 혼란스럽되 재밌어지겠지요. 앞서 언급한 전투경찰의 해프닝처럼….
김영남씨 실종사건 역시 그 해프닝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전투경찰 지아무개씨는 “상관한테 혼날까봐” 숨었습니다. 1978년 8월6일 선유도 해수욕장에 놀러갔던 군산기계공고 1학년 김영남군도 “선배한테 맞기 싫어서” 숨었다고 합니다. 김영남씨는 기자회견에서 “나무 쪽배에 숨었다가 깜빡 잠이 들어 망망대해에 흘러간 뒤 북한 선박에 구조됐다”고 증언했습니다. 이걸 곧이곧대로 믿으라는 건 너무합니다. 그럼에도 “맞기 싫어서 숨었다”는 부분은 진실에 가까워 보입니다. 안기부는 1997년 11월20일, 김영남씨를 비롯한 ‘78년 실종 고교생 3명’이 북에 있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다음날치 를 찾아보니 실종자 가족의 반응을 이렇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전북 군산시 해망동에 사는 김씨의 형(50)은 ‘영남이가 당시 선후배 6명과 함께 선유도로 놀러갔다 선배의 폭력을 피해 개펄 뒤쪽으로 달아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공작원은 학원폭력에 고통받는 남한의 청소년을 구출한 게 아닐까요? 김영남씨는 또 그 선배에게 맞을 것 같아 북한에 눌러산 건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이번호 표지도 학원폭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체벌과 왕따만이 폭력은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형편없는 밥 허겁지겁 먹게 하는 것, 그리하여 배탈로 드러눕게 하는 것도 학원폭력입니다. 급식 때문에 월북하는 일 없도록 잘 먹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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