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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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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와 마광수

등록 2005-10-20 00:00 수정 2020-05-03 04:24

▣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햐, 세상 정말 좋아졌네요.”
그는 강정구 교수를 부러워했습니다. 13년 전의 일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요. 검찰이 다짜고짜 구속영장 청구해버렸고, 그날 당장 끌려갔어요. 구속적부심도 기각됐고요.” 그는 누구일까요. 구속 여부를 둘러싼 ‘논란’조차 시샘하고 싶은 사람.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왜 인간 차별하느냐며 항의성 농담을 날리고픈 사람. 바로 마광수 교수입니다.
그가 불현듯 떠올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1992년 10월 <즐거운 사라>라는 이름의 야한 책을 냈다는 이유로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두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외설’ 탓이고, 지금은 ‘독설’ 탓일까요? 황당무계하면서도 비극적인 코미디가 또 재연될 뻔했습니다. 마 교수는 인신구속을 다루는 사회의 태도가 성숙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물론 언론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92년 당시, 그의 구속을 반대한 신문이 <한겨레>를 포함해 극소수였던 것처럼.
마 교수는 강정구 교수의 주장에 100% 반대합니다. 그에게 북한은 왕조국가일 뿐입니다. 하지만 성을 내지는 않습니다. 흥분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토론하면 되잖아요. 토론!”

그런데 토론이 안 됩니다. 아니, 토론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습니다. “강정구는 북에 가서 살라”는 저급한 조롱만이 난무합니다. 이러다 보니 강 교수를 학문적으로 비판하려는 사람들도 주저하게 됩니다. 두달 전, 한 역사학자에게 강 교수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원고를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통일내전’ 발언이 막 파문을 빚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빨갱이다, 아니다” 따위의 ‘찌질한’ 수준을 넘어 역사적 사실관계를 논쟁적으로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시기적으로 너무 민감하다는 거였습니다. 마녀사냥식의 공격이 가라앉기를 기다리자고 했지만, 두달이 흐른 지금 그 수위는 오히려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저는 마광수 교수와는 달리, 강정구 교수의 주장에 100%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부분은 너무 당연해서 재미가 없을 지경입니다. 강 교수가 ‘역사 추상 방법론’의 하나로 사용한다는 ‘가정’들은 보수세력도 잘 써먹던 것입니다. “맥아더가 없었다면… 박정희가 없었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도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런 가정법이야말로 시민들을 바보로 취급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옳은가 그른가와 관계없이, 그 가정에 대한 강 교수의 결론에 틀린 구석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강정구 교수를 아끼는 학자들조차 그에게 진한 아쉬움을 느끼는 게 현실입니다. 그의 거친 어법과 표현 스타일이 불만입니다. “본인이 검증한 사료를 통해 이야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결국 위기에 몰린 수구세력에게 조직적 반격의 기회를 줬다는 안타까움이 더해집니다.

아무튼, 저도 역사적 가정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100년 뒤의 역사가들이 ‘강정구 교수 구속 소동과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진 2005년10월의 사태를 평가한다면? 음… 아마도 이럴 거라 굳게 믿습니다. “유치 만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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