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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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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치사한’ 이야기

등록 2005-07-27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더럽고 치사하게시리….”
의원님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한겨레21> 기자의 전화를 받고 말입니다. “의원님, 사건 수임이 많으시더군요.” “내 이름으로 한 게 아니야.” “의원님이 담당변호사로 돼 있던데요?” “….” “사실과 다릅니까?” “그건 왜 묻는데?” “네?” “거참, 더럽고 치사해서….” “….” 그래요, 나도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구질구질한 게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변호사 사무실에 걸어주는 대가만으로 한달에 500만원의 수임료를 챙긴다고 합니다. 직접 사건을 상담하거나 재판정에 나가는 변호사 출신 의원들도 있다는데, 그 연봉이 수억원에 이릅니다. 의사 출신 중 일부는 여전히 환자를 상대합니다. 심지어는 병원 카운터에서 카드 전표를 세는 모습까지 목격됐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생계에 우리가 너무 무관심했던 걸까요? 의정활동 하기에도 빠듯한 이들이 ‘알바’를 뛰고 있으니 말입니다. 특별후원금 모금 캠페인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사안입니다. 국회의원들의 영리단체 겸직 실태를 풍부하게 취재했고, 새로운 사실들도 여럿 밝혀냈습니다. 여러분께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기사입니다. 그러나 마감날인 금요일 저녁, 이 글을 쓰며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망설이고 망설이던 문화방송이 ‘이상호 X-파일’로 불리는 ‘안기부 도청 테이프’ 보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뉴스 화면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뉴스되는 이슈에 모든 언론이 개떼처럼 뛰어들 필요는 없겠지만, 손을 놓고 있다시피 했던 우리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자본권력에 ‘지하드’(성전)를 선포한 듯한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에게는 응원을 보내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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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의 보도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1997년 대선 직전, 당시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 했던 역할은 엽기적이었습니다. 경악스럽다기보다는 웃깁니다. 녹음테이프에 따르면, 그는 심부름꾼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여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쪽에 돈보따리를 건네는. 이 모든 사실은 안기부의 불법 도청이 있었기에 밝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맨 앞에 인용했던 ‘알바’ 의원의 말이 떠오릅니다. 홍석현씨의 돈심부름이나 안기부의 불법 도청이나 모두 ‘정말 더럽고 치사한’ 일들이라는 겁니다. 부업 하는 의원들이 괜시리 순수하게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우토로 이야기입니다. <한겨레21>이 우토로 돕기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지 두달이 지났습니다. 한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웬 생뚱맞은 이야기냐”고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컸습니다. 이제 조금씩 나아집니다. 이번주부턴 이 운동에 ‘아름다운재단’이 참여했습니다. 영화배우 김혜수씨 등 각계 인사 33인도 힘을 보탭니다. 급물살이라도 타는 걸까요? 철거 위기에 놓인 강제징용촌 우토로의 동포들이 땅주인의 ‘더럽고 치사한’ 횡포 앞에서 굴복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더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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