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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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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서 행복해요?

등록 2005-06-0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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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행복해요, 라는 광고카피가 있습니다. 이 땅의 남성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남자라서 행복합니까?

남자들이 가장 열변을 토하는 순간은 군대 얘기를 할 때라고 합니다. 고생을 했든 어쨌든, 병영 생활은 결과적으로 추억을 선물합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말하기는 좀 거북합니다. “군대 가서 행복해요.”

내세가 있다면, 이라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래서 개나 돼지, 뱀이나 오랑우탄이 아닌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여러분은 대한민국에 또 태어나고 싶습니까? 저는 가급적 대한민국에는 안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군대 때문일 겁니다. 그 체험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제 아들도 군대 보내기 싫습니다. 아직 10년도 더 남았지만, 그때가 되면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걸어놔도 돌아간다”는 속담 따위가 통용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흥분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그게 진심인 것을.

박노자 교수는 한국의 군대를 겪어보지 못했지만, 저와 생각이 비슷합니다. 그는 2주 전 <한겨레21> 561호에 ‘국적 포기’를 둘러싼 마녀사냥을 중단하라고 썼습니다. 국적포기자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차분히 살펴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의 후진적인 군대문화를 먼저 돌아보자는 거였습니다. 여기에 네티즌들이 발끈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21>에 떠 있는 기사의견란에 비난이 쇄도했습니다. “상류층의 모럴 해저드에 면죄부를 준다”는 논지의 비판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감정적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너무 역겨워 <한겨레21>에 토할 뻔했다”고 합니다.

국적포기자들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건 뻔합니다. 새 국적법 발효를 앞두고 국적이탈신고서를 제출한 1820명 중 상당수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왜 네팔이나 베트남, 또는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적을 얻기 위해 대한민국적을 포기하는 이는 없냐 이겁니다. 그래서 화내는 네티즌들을 이해합니다. 군대를 다녀왔거나 가야 하는 이들은 그 경험을 공평하게 나누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공공선’의 뼈대가 되는 사항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일에 핏대를 안 올렸으면 하는 소망을 해봅니다. 우리 사회는 군대기피자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아니,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꾼다면 더 큰 ‘공공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겨레21>은 국적포기자들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고 두둔하자는 거냐고요? 아닙니다. 오히려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한국적과 조선적의 정체성을 지켜온 우토로의 동포들을 더 존경합니다. <한겨레21>은 이번호부터 일본인들로부터 강제퇴거 위기에 놓인 그분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합니다. 국적 포기를 용납할 수 없는 독자 여러분, 돈 좀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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