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2005년 을유(乙酉)년 새해가 밝았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역대 대통령 한분이 야당 시절, 군사정권의 모진 탄압에 맞서 내뱉은 이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닭띠 해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지난 한해 우리 사회가 갈등으로 대립하고 경기 침체까지 겹쳐 여러 가지로 힘겹게 지내온 탓일 게다. 그래도 여지없이 새해가 밝아오는 것을 보면 그분의 말이 지금에 와서도 곱씹어볼 만한 구석이 있어 보여 다행이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분 집권 시절에 시작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국 경제의 목을 비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해가 바뀔 때가 되니 얼마 전부터 공·사석에서 자주 화제에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을사보호조약 체결 100주년, 8·15 해방 6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 새해에 맞게 될 역사적인 사건들의 연표인 셈이다. 끝자릿수가 0으로 끝나는 것을 즐기는 관행 때문인지는 몰라도 100, 60, 40으로 이어지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금세 입에 달라붙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세 사건은 일본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을 잘 아는 한 지인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2005년을 국운 상승의 해로 여기며 정부는 물론이고 각 사건의 관련 단체와 기관들이 벌써 몇해 전부터 각종 기념행사를 준비해왔다고 한다. 그는 일본이 대륙 진출의 야심을 다시 한번 드러내며 이를 호재로 삼으려 하는 것 같다는 해석도 덧붙여주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일-한 우정의 해 2005’ ‘일-한 공동미래 프로젝트’ ‘일-한 국민교류의 해’ 등의 홍보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 열풍’ 발언을 앞세우며 교류 협력을 강조하는 그들 특유의 치밀함도 엿보였다.
물론 세 사건 가운데 8·15 해방 이외의 두 사건이 우리에게는 치욕스런 역사인 탓인지 아직 한국은 조용한 편이다. 정부와 광복회가 남·북·해외를 망라한 대규모 8·15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뿐이다. 올 한해 일본의 한반도 ‘러브콜’이 심상치 않을 것 같은 분위기인데, 우리도 뭔가 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관련 단체나 역사연구학회 같은 데서 을사보호조약과 한-일 국교 정상화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해보고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를 모색해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살아가야 할 한해가 아닌가 싶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많은 고민과 함께. 그 답은 우리 사회 최대의 난제인 갈등 해소와 통합에서 찾았으면 한다. 경제 살리기 또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에게 절실한 과제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살맛 나는 세상’을 한번 만들어봤으면 한다. 국민 모두가 더불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국가 에너지는 저절로 용솟음칠 것이고, 일본도 한반도의 국운 융성 기운을 가벼이 보지는 못할 것이다. 새해의 화두가 통합과 경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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