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왔다.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라 ‘반성’과 ‘원칙’을 갖고 돌아왔다. 그의 대국민 담화에 여야는 일제히 ‘환영’으로 화답했다. 모처럼 조성된 정치권의 화해 분위기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표정도 밝아 보인다. 이제 거리는 안도와 기대로 넘쳐나고 있는 듯하다. 노 대통령은 집권 2기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해 복귀 즉시 청와대 조직개편을 마무리했다. 곧바로 총리 교체와 부분 개각도 예정돼 있다. 그는 또 경제 살리기를 위한 상황 점검에 이어 재계 의견 수렴에도 나서는 등 두달여 동안 ‘밀린 숙제’를 하는 아이처럼 바쁜 모습이다. 문재인 전 수석까지 또다시 ‘왕수석’으로 컴백하자 청와대도 모처럼 활기를 되찾고 있다.
백성이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행정을 챙기고, 정부가 일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힘을 보태겠다는 평범한 원리가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지금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동안의 지루한 정쟁이 그랬고, 얼마 전의 탄핵과정을 가슴앓이하며 지켜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우려처럼 어쩌면 지금의 화해 국면은 폭풍전야의 고요일지도 모른다. 또 국민들의 시선이 두려워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게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갈등과 반목의 상징이던 정치권이 말이 아닌 실천으로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모처럼 조성된 화합의 장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믿고 싶어하는 것들이 있다. 탄핵 기각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발빠르게 사과했다. 노 대통령이 ‘반성’과 ‘상생’을 언급한 데 대해 한나라당은 즉각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사과와 환영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아울러 국회의 탄핵 의결과정에서 찬성표를 던진 한나라당 당선자들이 역사 앞에 지은 죄를 깊이 뉘우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노 대통령은 국정을 일관성 있게 운영하고, 경제 살리기와 민생 챙기기를 하면서 ‘원칙’을 견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밝힌 원칙들이 올곧은 소신에서 나온 국정 철학이기를 믿고 싶어한다. ‘다음 기회’로 설명을 미룬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 또한 여론에 귀기울여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모두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C. G. Jung)은 “권력이 지배하는 곳에 사랑은 없다”며 권력에 대한 경계를 주문한 바 있다. 그의 말이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권력의 속성과 그에 대한 불신 때문일 것이다. 그의 우려가 제발 한국 정치권에서는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