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틀밭 한쪽에서 무섭게 번지고 있는 컴프리.
오랫동안 스스로 ‘남에게 뭔가를 잘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농사짓는 밭이 생긴 이후로 농민들을 만나면 염치가 없어진다. 예전에는 상추라도 따가라는 말에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주저했는데, 지금은 누가 물어오지 않아도 저절로 내 말이 먼저 나간다. “혹시 밭에 애플민트 있어요?” “색이 나는 톱풀 있어요?” “캐모마일 키우세요?”
다행히 내가 찾는 식물 대부분은 밭에서 무섭게 영역을 넓혀가는 다년생이라 모두 흔쾌히 내준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건가? 특히 꽃비원에서 여러 번 퍼다 날랐는데 오남도 농민에게 뭘 달라고 하면 특히 반긴다. “우리 밭에선 모종삽으로 떠가고 이런 건 안 돼. 저기 삽 가져와.” 그렇게 이 밭 저 밭에서 삽으로 크게 퍼다 옮긴 다년생 허브와 꽃들이 넘쳐나 어느새 좁은 밭에서 민트만 세 종류가 자라고, 너무 번져 동네 커뮤니티 정원에도 심고, 단골 꽃집에도 화분에 심어 나눴다.
하지만 아무리 눈치를 보고 다녀도 좀처럼 구할 수 없던 작물이 있었다. 바로 ‘컴프리’. 뿌리가 땅속 2m 가까이 뻗는다는 전설의 식물로, 깊은 뿌리 덕분에 ‘땅속의 광부’라는 별명이 있다. 이 뿌리는 땅속 깊은 곳의 미네랄을 흡수해 잎에 저장하고, 그 잎은 토양을 회복시키는 자원이 된다. 그래서 퍼머컬처의 창시자 빌 몰리슨과 데이비드 홈그렌도 컴프리를 ‘다기능성 식물’의 대표로 꼽았다. 땅을 일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한번 심으면 절대로 도망가지 않는 다년생식물이면서, 좀더 부지런을 떨어 액비로 활용하면 땅에 많은 도움을 준다.
컴프리는 한때 친환경 농가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지만, 번식력이 너무 강해 관리가 어려워져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퍼머컬처 실천가들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으며, 한 뿌리가 5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그래도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최신 농업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 남들이 안 하는 농법을 실천하는 주변 농민들에게서도 컴프리를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내추럴 시드르(사과로 만든 술) ‘레돔’을 생산하는 ‘작은알자스’의 포도밭에 갔더니 군데군데 그 전설의 식물이 있는 게 아닌가! 다시 염치를 내려놓고 두 손을 내밀며 부탁해본다.
레돔의 주인장 신이현 농민은 군데군데 자리 잡은 컴프리의 성긴 뿌리를 몇 조각 캐서 마대에 담아 안겨줬다. 컴프리는 씨앗으로 번지는 것도 있고 포기로 번지는 것도 있는데, 씨앗으로 번지는 품종은 관리하기가 너무 성가셔 포기로 번지는 것을 추천한다면서.
그때만 해도 이리 거칠게 잘라낸 뿌리로도 컴프리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놀랍게도 밭 언덕에 빠르게 자리 잡아 그해 바로 꽃을 내줬다. 매년 포기가 놀랍게 번져 배수가 좋지 않은 틀밭 사이사이 포기 나눔을 해서 심어주니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누렇게 떠서 죽었던 작물들이 이제는 폭우를 맞아도 제법 잘 버텨내고 있다.
이제는 나에게 허브와 꽃을 내준 농민들에게 연락해 물어본다. “그 밭에 컴프리 있나요?” “글쎄? 우리 밭에는 아직 없는데.” 나는 기쁘게 말한다. “이번엔 제가 주고 싶어서요. 밭에 컴프리가 아주 많이 번졌거든요!”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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