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551-363번지, 금강 한두리대교 주탑 아래 저수로 둔치. 이곳은 현재 4대강 재자연화를 둘러싸고 환경단체와 윤석열 정부가 벌이는 투쟁의 최전선이자 최후의 전선이다. 2021년 1월 문재인 정부에서 결정한 금강·영산강 5개 보 처리 방안을 2023년 7월 윤석열 정부가 모두 취소하자 환경운동가들이 이 정책을 지키겠다고 여기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2024년 6월10일 낮 찾아간 천막농성장은 파크골프장이 있는 일반 둔치(고수 둔치)에서 몇 미터 더 내려간 저수로 둔치에 마련돼 있었다. 저수로 둔치로 내려가자 너비 100m 안팎의 좁은 금강 물길이 깊고 빠르게 흘렀고, 600m 하류엔 세종보가 설치돼 있었다. 물길이 좁은 것은 세종보의 3개 수문 가운데 가장 낮은 북쪽 수문으로만 물이 몰리면서 생긴 일이다. 수문을 다 열어놓아도 보가 있으면 물줄기가 이상하게 흐르는 것이다. 저수로 둔치의 천막농성장은 비가 오거나 대청댐에서 물을 대량 방류를 하면 금세 물에 잠길 수 있고, 세종보를 닫으면 더 빨리 물에 잠길 것이다.
저수로 둔치의 주탑 아래 유(U)자형 교각엔 컬러 벽화와 글씨들이 빼곡하다. 어린이와 물떼새, 오리, 물고기, 풀과 꽃, 무지개, 구름 등이 그려져 있고 농성을 응원하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물떼새야 우리가 지켜줄게’ ‘흘러야 강이다’ ‘금강아 흘러라’ ‘세종보 해체’ ‘함께 공존하는 금강’ 등등. 천막 주변엔 플래카드도 펼쳐져 있었는데, ‘거침없이 흘러라’ ‘장벽을 걷어내고 맘껏 굽이쳐’라고 적혀 있었다. 저수로 둔치의 모래언덕엔 8개의 천막이 빙 둘러 세워져 있었다.
천막농성장엔 이미 강찬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영화 <삽질>의 감독인 김병기 <오마이뉴스> 기자 등이 찾아와 농성자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마침 이날 저녁엔 김 기자의 영화 <삽질>이 바로 이곳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다. 농성장엔 주요 참여자들인 대전충남녹색연합의 임도훈 자연생태팀장과 박은영 사무처장, 김성중 녹색사회국장, 문성호 상임대표,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등이 모여 있었다. 2023년 12월 87개 환경단체는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보철거 시민행동)이란 연대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환경운동가들이 여기 저수 둔치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것은 2024년 4월29일이었다. 6월10일로 43일째였다. 당시 환경부는 세종보를 5월 중 재가동(닫기)하기 위해 수문 수리를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또 세종시는 환경부가 세종보를 다시 닫으면 보행교 이응다리 주변에 설치된 마리나 선착장을 수상 활동 시설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세종시는 멀쩡한 강물 수영장을 버려두고 서울 한강처럼 고수 둔치에 인공 수영장을 만들 계획도 세웠다.
환경운동가들은 왜 이 위험한 세종보 상류의 저수로 둔치에 천막을 친 것일까? 임도훈 팀장은 “2017년 5월 세종보 개방이 시작된 뒤 세종시 금강에선 펄밭과 4급수 지표종인 실지렁이, 깔따구 애벌레, 녹조, 악취가 사라졌다. 대신 모래밭과 자갈, 다양한 멸종위기 동물들이 돌아왔다. 지금 다시 세종보를 닫는다면 세종시 금강은 다시 악취 나는 펄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농성 중”이라고 말했다.
박은영 처장도 “문재인 정부에선 4년에 걸쳐 보를 개방 실험하고 보 처리 방안을 마련하고 ‘국가 물관리 기본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감사원에서 5차 감사 결과가 나온 당일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 재심의(취소)를 국가물관리위원회에 요청하겠다고 밝혔고, 두 달 만에 국가 물관리 기본계획을 변경했다. 오랫동안 검토된 방안과 계획을 졸속으로 취소, 변경해 최악의 물 정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보철거 시민행동이 요구하는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세종보와 공주보의 재가동(닫기)을 중단하고, 둘째 금강과 영산강 보 처리 방안과 국가 물관리 기본계획을 원상 복구하며, 셋째 금강과 영산강에 이어 한강과 낙동강의 수문도 개방하고 보 처리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부와 세종시는 윤석열 정부의 물 정책 졸속 취소, 변경에 대해 이렇다 할 해명 없이 환경운동가들에게 2차례 계고장을 보냈다. ‘천막 설치는 하천 구역 내 불법 점용이니 6월10일까지 자진 철거하고 원상 복구하라. 기한을 넘기면 하천법 등에 따라 변상금을 부과하고, 경찰에 고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환경부에 물었다. 환경부 김구범 수자원정책관은 “세종보 수리 작업은 끝났지만, 아직 시운전을 못했다. 당장 세종보 수문을 닫고 담수할 계획은 없다. 농성하는 사람들도 있고, 둔치에 흰목물떼새의 번식처도 있고, 홍수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홍수 때 상류의 대청댐, 용담댐에서 방류하면 매우 위험해서 농성장에 계속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계고장을 보낸 세종시 박무영 국가하천팀장도 “계고장을 2차례 보냈지만, 당장 농성자들을 강제로 끌어내거나 경찰에 고발할 계획은 없다. 농성자들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계속 올라오라 설득하고 있다. 시간을 두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한다. 당장 세종보를 닫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환경부가 세종보를 닫으려는 이유는 세종보가 아직 완전, 상시 개방된 유일한 4대강 보이기 때문이다. 세종보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5월 가장 먼저 수문을 열었고, 현재까지 가장 오랫동안 수문을 열어놓고 있다. 그래서 수문 개방에 따른 강의 변화와 재자연화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다른 15개 보는 부분, 일시 개방했거나 거의 개방하지 못했다.
실제로 세종보를 개방한 효과는 분명히 나타났다. 2017년에서 2020년 사이 강물 체류 시간은 80% 줄었고, 유속은 80% 증가했으며, 모래밭은 41배, 수변 공간도 26배 늘어났고, 녹조는 49~98% 줄었다. 세종보를 닫았을 때 사라졌던 수달과 흰수마자, 미호종개, 흰꼬리수리, 흰목물떼새, 금개구리, 맹꽁이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포함해 수많은 동식물이 다시 나타났다.
이렇게 보 개방의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났는데도 왜 윤석열 정부는 4대강 사업과 보들을 유지하려는 것일까? 문성호 대전충남녹색연합 상임대표는 몇 가지 이유로 설명했다. “정치적으로 보면, 윤 정부의 주요 인물들은 이명박 정부 출신이 많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일하려면 그들이 지난 정부에서 한 일을 인정해줘야 한다. 경제적으로 보면, 윤 정부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해서 돈을 버는 토건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환경적으로는 세종보를 열어둬 자연이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4대강 사업과 같은 토건 사업을 유지하긴 어렵다.”
그러나 세종보 재가동(닫기)의 책임을 윤석열 정부에만 물을 수는 없다. 세종보 등 5개 보의 처리를 결정한 것은 전임 문재인 정부였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국가물관리위원회는 금강의 세종보 해체, 공주보 부분 해체, 백제보 상시 개방, 영산강의 죽산보 해체, 승촌보 상시 개방으로 처리 방안을 결정했다. 그러나 문 정부는 임기 안에 보 처리 시기를 결정하지 못했다. 또 한강과 낙동강의 11개 보는 개방 실험도 하지 못했다.
임 팀장은 “문재인 정부가 세종보 등 5개 보의 해체, 개방을 집행할 수 있었는데, 안 했다. 당시 환경부나 세종시도 소극적이었다. 당시 환경운동가들이 문재인 정부에 많이 들어갔는데, 이로 인해 현장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정부만 바라본 측면도 있었다. 시민들은 보 처리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무능했던 것이냐고 묻자 박 처장이 즉각 반박했다. “문재인 정부가 가덕도 신공항 문제를 처리하는 것을 보면, 결코 무능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진정 원하는 일은 아주 강하게 밀어붙였다. 4대강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역량이 아니라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1년 2월 더불어민주당 다수의 국회는 수많은 우려를 무시하고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졸속 통과시켰다.
이 천막 농성은 세종보 재가동(닫기)을 막기 위해 시작했지만, 현재는 4대강 사업이나 윤 정부의 물 정책에 대한 토론장 노릇을 하고 있다. 농성하는 환경운동가들을 응원하기 위해 거의 매일같이 전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찾아온다. 또 강에 대해 배우려는 세종 시민이나 아이들도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하루 평균 50명 정도 오갔으니, 이미 다녀간 사람만 2천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농성자들은 밝혔다. 보철거 시민행동의 기자회견을 포함해 환경, 노동, 인권, 여성, 종교, 교육, 학술 등 다양한 단체들의 기자회견이 10차례 이상 열렸다.
박은영 처장은 “그동안 4대강 사업을 두고 싸웠던 힘들이 여기 다시 모이는 것을 느낀다. 4대강 사업의 악영향이 가장 큰 낙동강 쪽에서 많이 왔다. 그분들이 와서 ‘금강이 낙동강이고, 낙동강이 금강’이라고 말할 때 연대감과 희망을 느낀다. 세종보가 4대강 문제 해결의 최후의 보루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방문객이 늘어나자 환경운동가들은 ‘슬기로운 천막생활’이란 제목으로 여러 문화 활동도 열고 있다. 예를 들어 물수제비 뜨기, 수달 그리기, 벽화 그리기, 돌탑 쌓기, 솟대 세우기, 새 이야기 강의, 강 이야기 강의, 라이브 음악 공연 등이다. 6월9일에도 세종시의 한 교회 어린이 20여 명이 찾아와 세종보와 강, 동식물 등에 대해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걱정하기도 했다.
이날 환경운동가들을 응원하려고 이곳을 찾아온 세종시 나성동 시민 최소영씨는 “세종시에 여러 해 살았지만 농성을 응원하기 위해 강가로 처음 내려와봤다. 그전에는 이렇게 강가로 내려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강가에서 물놀이해보지 못해 ‘친수’라는 말이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려와보니 강가가 좋았다. 환경부와 세종시가 시민들이 강가로 내려와 즐길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종보의 환경운동가들은 정부가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여기서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임도훈 팀장은 “이번 정부에서는 이미 어렵고 다음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보를 처리하면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봤듯 나서서 싸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세종보는 그냥 닫힌다. 그러면 금강뿐 아니라 4대강 전체가 더 어려워진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금강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세종=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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