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냉이는 벌써 꽃대를 올렸고, 어린 쑥도 잎을 내밀었다. 광대나물은 이미 겨울부터 뿌리를 내리다 날이 따뜻해지니 본격적으로 몸을 키운다. 2023년 병아리였던 애들이 이제 벌써 중닭이 되어 알을 낳는다. 엄지손가락만 한 알(초란)을 낳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암탉 네 마리가 돌아가며 알을 낳는다. 산란장이 부족해 몇 개를 더 만들어줬다. 어린 수탉 한 마리는 성계 수탉(아빠닭)에게 맨날 괴롭힘을 당하지만, 볏이 늠름하게 서며 잘 크고 있다.
올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동네 어르신들도 원래는 눈이 내려야 할 날씨에 비가 왔다며 걱정이셨다. 2023년 2월 전남 곡성에 처음 왔을 때를 생각하면 이번 겨울은 겨울 같지 않다. 가끔 봄이나 가을 같아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2월 말인데 벌써 날벌레가 돌아다닌다. 날씨가 이상하다. 낯선 따뜻함이다.
겨울이 따뜻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겨울은 추워야 한다. 춥지 않으면 죽어야 할 벌레가 죽지 않는다. 올해는 벌레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지금까지 내가 지어온 순환방식 농사에 확신이 든다. 한 가지만 심지 않는다. 다양하게 심는다. 완두와 상추, 파를 같이 심는다. 완두는 넝쿨져 올라가면서 상추에 그늘을 드리운다. 상추는 그늘로 인해 꽃대가 늦게 올라와 상추 맛을 오래 볼 수 있다. 완두가 만들어내는 질소 성분이 상추의 성장을 돕는다. 파는 상추에 달라붙는 벌레를 쫓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밖에 고추와 수수, 들깨의 조합, 토마토와 바질 등 서로 거름으로 경쟁하지 않고 성장에 도움을 주는 방식의 조합이 많다.
직접 만든 천연 거름도 충분히 넣어준다. 밭가에 생태화장실을 만들어 똥과 오줌을 모은다. 겨우내 모아 거무튀튀하게 삭힌 오줌을 1:5 비율로 물과 함께 섞어 밭에 주면 작물이 몰라보게 성장한다. 우리가 싼 똥도 왕겨와 함께 물을 충분히 주며 두 달 이상 묵혀 사용한다. 냄새를 맡아보면 똥내는 사라지고 숲에서 나는 은은한 흙내가 난다. 발효가 잘됐다는 뜻이다. 횃대 아래 수북이 쌓인 닭똥도 거름으로 활용한다. 고추밭에는 닭똥이 제격이다.
무릎 깊이만큼 땅을 파서 그곳에 감나무를 전정하고 나온 가지, 산에 있는 나뭇잎, 부엽토 등을 넣어주고 발로 꾹꾹 밟으며 물을 흠뻑 뿌려준다. 그 안에서 그것들이 발효되며 많은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톡토기부터 지렁이, 각종 벌레가 몰려들어 그곳을 비옥하게 한다. 다양한 벌레가 살아 숨 쉬면서 먹고 먹히는 생태계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비옥함은 이곳에 한정되지 않고 가까운 밭으로 퍼진다. 온 밭이 비옥해진다.
이는 새로운 방식이기보다, 자연의 방식을 따라 하거나 옛 어르신들 방식을 따라 한 것뿐이다. 오랜 시간 자연에서 적응해온 방식은 기후위기도 너끈히 이겨낼 것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배추밭을 본 적이 있다. 대규모 관행농에선 소수의 벌레가 기승을 부린다. 천적도 없다. 갈수록 덥고 습해지는 기후 속에서 벌레는 자기 세상인 양 늘어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독한 살충제밖에 답이 없다. 살충제를 투여할수록 땅은 더 오염되고, 소비자는 오염된 농작물을 먹고, 농부의 시름은 깊어질 것이다. 죽어가는 땅에선 희망을 찾기 힘들다. 과거 우리 조상의 지혜와 새로운 적정기술을 접목해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농법을 찾아야 한다. 역동적인 땅, 순환하는 땅, 그 안에 답이 있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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