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로 연결된 ‘랜선 친구’ 송소수자님은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쓰레기를 주워온다. 그처럼 시간과 마음을 내어 쓰레기를 줍는 실천을 줄여 ‘쓰줍’이라 부르는데, 그가 쓰줍 기록에 함께 덧붙인 ‘나도 버렸었고, 지금도 흘릴 수 있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줍는다’는 문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올해 텃밭 쓰레기를 줍다 화가 단단히 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은 나에게도 무력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겸손한 마음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마음을 다르게 먹는 건 당장 할 수 있지 않을까.
때마침 정원활동가를 지원하는 ‘마인드풀가드너스’가 정원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여는 ‘mgww’(마인드풀가든와이드웹)라는 플랫폼을 론칭했고, 여기서는 누구나 정원과 관련된 활동이라면 새로운 모임(프로젝트)을 열 수 있다. 나는 텃밭에서 쓰레기 줍는 프로젝트를 열기로 했다. 요즘 길에서, 산에서, 바닷가에서 쓰레기 줍는 행사가 많이 열리는데 왜 어느 곳보다 쓰줍이 필요한 밭에서는 열리지 않는가?! 내가 바로 밭에서 하는 쓰줍의 창시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밭에서 플로깅’이라 이름 지었다.
나의 쓰줍 동지로 참여한 이들은 예상대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시민이었다. 참가 전에는 약간의 농업용 비닐을 주울 거라 예상했지만 농사는 친환경 활동이고 농장은 청정한 자연이라 생각해왔단다. 하지만 애써 쓰레기를 찾지 않아도 밭에는 비료 포대와 모종 포트, 작물을 묶는 플라스틱 끈과 시든 작물이 잔뜩 쌓여 있고 누가 투기했는지 알 수 없는 생활쓰레기와 담배꽁초까지 가득하다. 게다가 쓰레기를 수거하는 과정은 얼마나 험난한가. 길가의 쓰레기는 쉽게 주울 수 있지만 대부분의 농장 쓰레기는 엉겨 붙은 것을 풀어내거나 땅에서 캐내야 한다. 주말농장의 쓰레기를 마주하며 농사에 대한 환상은 와장창 깨졌지만 새로운 쓰줍 동지들과 한결 깨끗해진 밭에 둘러앉아 뒤풀이를 함께하니 즐거움이 생긴다.
밭이나 정원을 생각하면 대부분 열매를 따거나 꽃을 꺾는 활동을 떠올리지만 밭에서 할 수 있고 꼭 필요한 일은 생각보다 많다. 나 같은 도시농부에겐 풀 뽑아주는 사람보다 쓰레기를 주워줄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이는 밭을 떠날 틈이 없어 자기 밭에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인드풀가든와이드웹에는 이런 상상력이 가득하다. 밭에서는 골칫거리인 풀을 모아 예쁜 리스(화환)로 엮어내는 프로젝트도 있고, 심지어 흙 밖에서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를 구출해 살기 좋은 곳으로 옮겨주는 프로젝트도 있다! 여태껏 사람을 모으는 일에는 거창한 기획과 운영이 필요한 줄 알았는데 자원과 노동력을 낭비하지 않고도 기획자와 참가자 모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보며 앞으로 밭에 누구나 불러서 어떤 모임을 열어도 좋겠다는 용기와 힘을 얻는다. 다음에는 밭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발언권 몰아주기’나 각자 도시락을 싸서 모이는 ‘밭에서 피크닉’ 같은 것을 해봐야겠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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