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평창 진부면의 틀밭.
상추, 로메인, 오크, 고수, 쑥갓,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오이, 애호박, 맷돌호박, 수박. 문전옥답을 꿈꾸며 만든 (관짝을 닮은) 틀밭에 심은 작물이다. 틀밭 4개 가운데 2개 바깥 줄에 수박과 호박과 오이를 심었다. 덩굴을 올리려 하우스 뼈대를 세우고 그물망을 씌웠다. 서울 농부가 봄 농사를 마치고 새 작물을 심는 6월이 다 돼 모종을 심은 터라 언제 클까 싶었는데 덥고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돌아서면 쑥쑥이다.
특히 오이가 놀라운데, 덩굴을 그물에 묶어줄 때만 해도 허공에서 허청거리던 덩굴손이 그물 마디마디 야무지게 꼭 붙잡고 올라가 열매를 매달고 있다. 작년에 심은 오이는 수꽃만 피다가 끝났는데, 올해 오이꽃 끝에는 죄다 아기 열매가 달렸다. 금요일 저녁에 도착해 살펴볼 때는 손가락만 하던 오이가 이튿날 저녁이면 팔뚝만 해져 있다. 애호박도 주렁주렁 달렸다. 열매에 빛을 가리는 호박잎을 따서 된장국을 끓여 먼저 맛봤다. 오이, 상추, 고추에 호박잎까지 따니 돌아올 땐 채소가 한 보따리다.
문전옥답만큼 좋은 건 지인옥답. 경기도 고양에서 주말농사를 하는 친구가 셀러리와 오이를 잔뜩 줬다. 진부 철물점에 갔더니 사장님이 손님이 가져왔다며 로메인을 한 봉지 주셨다. 엄마 이웃집 아들이 텃밭에서 키웠다는 쌈채소와 호박, 토마토, 가지도 냉장고에 한가득이다. 받을 때는 좋은데 시들어가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바빠진다.
마트에서 산 채소는 물러버려도 그러려니 하는데, 내가 키운 채소는 한 잎도 버리기 아깝다. 지인이 나눠준 것도 그렇다. 얼굴 아는 생산자의 힘인가. 옛날 외갓집 마당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초여름이면 살구를 몇 가마니나 땄단다. 그러잖아도 농사일로 바쁜데, 외할머니는 살구가 아까워 저녁이면 함지를 이고 다니며 이웃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무슨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 알이라도 버려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열매채소를 소진하기 좋은 음식은 역시 카레다. 양파를 갈색이 나도록 볶다가 셀러리 한 줌, 마늘 한 숟갈 다져 넣으면 이국적인 맛이 난다. 물 붓고 카레가루를 넣고 가지·호박·토마토 할 것 없이 있는 대로 숭덩숭덩 썰어 넣고 중불로 익혀주면 이틀은 반찬 걱정이 없다.

밭에서 막 수확한 쌈채소.
쌈채소가 넘칠 때는 상추밥이다. 팬에 들기름 한 바퀴 두르고 찬밥을 잘 눌러 펴준 다음 상추(포함 여러 쌈채소)를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싶은 양의 두 배쯤 손으로 뚝뚝 잘라 얹고 뚜껑을 덮는다. 밥이 자글자글 소리를 내다가 구수한 냄새를 풍길 때쯤 불을 끄고 고추장 넣어 팍팍 비빈다. 청양고추 두어 개 썰어 넣으면 땀이 바짝 나는 게 무슨 보양식 먹은 것 같다.
쌈을 많이 먹으려면 ‘쌈 메이트’가 중요하다. 보통은 몇 장 먹고 나면 재미없는데, 강원도 출신이라 그런지 쌈 좋아하는 엄마와 언니랑 같이 먹으면 엄청 먹게 된다. 고기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고, 이것저것 넣은 쌈장도 좋지만 고추장 하나로 족하다. 보리밥이면 더 좋고 여름 콩을 넣어 갓 지은 밥이면 최고다. 어디까지나 주연은 상추다.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른 쌈에 관한 추억. 엄마랑 같이 살던 어린 시절, 봄이면 한 장씩 겹치기도 어려운 상추 솎은 걸 몇 양푼씩 먹곤 했다. 손바닥에 가득 쥐고 밥을 얹어 싸먹어 ‘주먹 쌈’이라 불렀다. 여린 풀이 아삭아삭 향기로워 바삐 먹다보면 엄마가 “너 진짜 상추 잘 먹는다”고 했다. “엄마도 엄청 먹네?” 별말도 아닌데 깔깔 웃고는 비어가는 양푼에 상추를 가득 채웠다.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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