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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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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감자냐 고구마냐…결론은 라면

다 심기엔 텃밭이 좁은데 감자를 심으면 고구마가 아쉽고 고구마를 심으면 감자가 생각나네
등록 2023-06-03 03:49 수정 2023-06-06 05:07
5월5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구마 순을 심었다.

5월5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구마 순을 심었다.

“일어났소? 고구마 심으러 갑시다~.”

휴일 아침 추적추적 비 오는 소리에 깨던 잠이 다시 달아지는데, 부지런을 타고난 텃밭 동무가 일찌감치 전화했다. 감자는 몰라도 고구마는 포기 못하는 그는 ‘고구마의 땅’ 전남 해남 출신이다.

감자와 고구마는 ‘짜장면과 짬뽕’ 같다. 서로 전혀 다르면서도 비슷한 느낌이고, 둘 다 심기엔(먹기엔) 텃밭(위장)이 좁다. 그래서 감자를 심으면 고구마가 아쉽고, 고구마를 심으면 감자가 생각난다.

감자는 찬기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중하순에 낸다. 싹 날 눈이 달린 씨감자를 적당히 잘라, 불 피우고 남은 재를 잘라낸 단면에 묻혀 소독한 뒤 심는다. 두 달여 지나 5월 중순이면 잎과 줄기가 무성해지면서 허옇고 소담한 감자꽃이 핀다. 이때 예쁘다고 넋 놓고 바라만 보면 나중에 후회한다. 꽃 필 무렵이 순지르기를 해줘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지 감자’란 말처럼 잎이 말라가는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가 수확철이다. 감자를 캐낸 밭은 가을 농사 전까지 놀리거나, 열무같이 금세 자라는 작물을 심기도 한다.

고구마는 날이 더워질 무렵 심는다. 밭고랑 한가운데 괭이로 길게 줄을 낸 뒤, 순을 반쯤 눕히고 흙을 덮는 식이다. 추석 지나 바람이 차게 느껴질 때쯤 수확하고 나면, 빈 밭에 마늘이나 양파 따위 겨울을 날 작물을 파종하면 된다. 감자와 달리 고구마는 수확 전에도 잎과 순을 수시로 거둔다는 장점이 있다.

고구마 순은 껍질을 벗겨 삶아 무치거나, 고등어 같은 생선을 조릴 때 곁들이면 좋다. 손 빠른 분들은 김치도 담근다. 잎도 먹는다는 건 텃밭을 시작한 뒤에야 알았다. 쌈채소와 함께 싸 먹으면 달큰한 맛이 일품이고, 살짝 데쳐 양념해 버무려도 그만이다.

입하 즈음이어서 절기상 고구마 심기에 적당했다. 때맞춰 비까지 뿌려주시니, 동무 입에서 “오지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난해 새로 만든 좁고 긴 고랑 네 군데에 호미 하나 정도 간격으로 빼곡히 순을 넣고 나니 어느새 비가 잦아들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인류가 발명해낸 게 바로 라면이다.

라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야외에서 여럿이 먹을 때 가장 맛있다. 텃밭에 놀러 오는 친구들을 대접할 때도 쌈과 고기는 거들 뿐, 입가심으로 라면이 등장할 때에야 비로소 탄성이 터진다. 텃밭표 라면의 화룡점정은 뭐니 뭐니 해도 미나리와 쑥갓이다. 라면이 알맞게 익으면 불을 끄기 직전 미나리와 쑥갓을 수북하게 올린다. 그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텃밭 들머리 낮은 땅에 심어놓은 밭미나리 모종이 맞춤하게 자랐다. 씨 뿌린 쑥갓도 햇볕이 따가워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지고 있다. 각종 잎채소도 수확기로 접어들었으니 더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5월13일, 올해 첫 고기를 구웠다. 텃밭 동무들이 둘러앉아 풍성해지는 계절을 찬양했다. 이윽고 때가 됐다. 물이 끓는 동안 한 움큼씩 뜯어온 미나리와 쑥갓을 씻었다. 벌써 입에 침이 고인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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