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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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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내리지 말고 흙에 양보하세요

환경보호·자원순환 둘 다 잡는 생태화장실
등록 2023-05-19 13:38 수정 2023-05-26 01:34
똥에 왕겨를 섞어 퇴비로 발효시키고 있다. 박기완 제공

똥에 왕겨를 섞어 퇴비로 발효시키고 있다. 박기완 제공

똥을 싼다. 물을 내린다. 지난 33년 동안 귀한 거름을 버려 온 방법이다. 똥이 귀한 거름이란 걸 알았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똥은 거름이 된다. 놀랍게도 그렇다. 귀농 전, 경기도 고양에 있는 우보농장에서 농사교육을 들을 때였다. 우보농장엔 화장실이 있었는데, 생태화장실이다. 앉아서 똥을 누면 큰 대야에 똥이 떨어진다. 여기에 벼의 껍질인 왕겨를 뿌린다. 똥 냄새는 왕겨로 발효되면서 사라진다. 가득 찬 똥을 땅속에 묻어 1년 뒤에 퇴비로 사용한다.

이 경험을 곡성에 와서도 적용하고 있다. 생태화장실에서 똥을 모으는 것이다. 오줌은 약수통에, 똥은 똥통에 나뉘어 들어간다. 똥과 오줌이 섞이면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똥을 싸고 난 뒤엔 왕겨나 낙엽으로 그 위를 덮는다. 이를 준비된 퇴비함에 넣고, 물을 자주 넣어주고 잘 섞으면 두 달 안에 퇴비로 사용할 수 있다. 쾨쾨한 똥내는 사라지고, 산에서 나는 향긋한 흙내가 난다.

실험해봤다. 흙을 비옥하게 하는 다층뿌리덮개 실험이다. 밭을 만들고, 그곳에 모종삽으로 구멍을 낸다. 물을 한참 뿌려주고, 베어낸 풀을 덮고, 집에서 모은 인분을 넣는다. 신문지를 적셔서 그 위에 올리고 왕겨로 마무리한다. 아직 덜 발효된 똥은 식물을 죽일 수 있으니 구멍을 파서 잘 발효된 거름을 넣고, 모종을 그곳에 심는다. 모종은 거름의 힘으로 뿌리를 내리고, 시간이 지나 발효된 거름의 도움으로 잘 자라게 된다. 양배추와 케일을 심고, 그 사이엔 벌레를 내쫓는 허브 딜을 심었다.

며칠 뒤, 집에서 키우는 닭 세 마리가 탈출했다는 소식을 이웃에게 연락받았다. 멀리 나와 있어 다시 가진 못하고, 그분께 부탁해 닭을 넣었다. 망했다. ‘닭들이 온 밭을 다 뒤집어놨을 거야.’ 집에 돌아왔다. 밭을 보니 생각보다 멀쩡하다. 닭들은 무꽃 주위에서 좀 놀다가 다층뿌리덮개 밭으로 왔는데, 자기들이 좋아하는 양배추와 케일을 많이 먹진 않았다. 오히려 왕겨를 헤집어놨다. 왕겨 밑에는 자연의 분해자 역할을 하는 지렁이와 공벌레(콩벌레) 등이 모여 똥을 분해해 비옥한 거름을 만들고 있었다. 내 똥이 또 하나의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소똥구리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 티브이로만 봤던 곤충이지만 ‘소똥을 굴리면서 살다니 웃긴 벌레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소똥구리 멸종 원인은 풀을 먹으며 풀에 똥을 쌌던 소들을 모두 콘크리트에 올려놨기 때문이다. 지금은 위생법상 가축을 풀 위에서 기를 수 없고 몇몇 축산농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허가를 받아 키우는 것으로 안다. 똥을 흙으로 돌려보냈다면 살아날 순환의 고리를 엉뚱한 곳에 두고 생고생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돌려주지 않았다. 인간은 한 번 내릴 때마다 8~15ℓ의 물이 버려지는 방식으로 똥을 ‘처리’하고 있다. 똥을 땅에 돌려줬다면 자연은 지금보다 훨씬 비옥해졌을 것이다.

하천 최상류의 물은 맑지만, 많은 생물이 살지 못한다. 영양가가 없기 때문이다. 이곳을 비옥하게 만드는 생명체가 있으니 바로 연어다. 연어는 바다에서 양질의 영양소를 얻어 최상류로 올라와 알을 낳고 죽는다. 이를 불곰이 먹고, 그 주변에 똥을 눈다. 황폐했던 숲이 바다의 영양분으로 비옥해진다. 인간의 똥은 얼마나 영양가가 많을까. 온갖 것을 섭취해 얻은 수많은 영양소. 아, 이 귀한 영양소를 땅에 뿌리지 않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런 영양소를 모으고 땅에 뿌리는 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유일한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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