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가 떠났다. 하리는 부모님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다. 10살이 넘었으니 개라고 말해야겠지만 하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기 같았다. 펫숍에서 사온 강아지가 아닌, 2011년 우리 집 마당에서 태어난 개다. 하리는 쫑긋한 귀, 길쭉한 흰 털에 군데군데 부드러운 갈색 무늬를 가졌다. 나이를 먹어서도 코와 눈이 새카맸다. 평생을 마당에 묶여 살다가 마지막 한 달은 충남 천안에 있는 여동생의 아파트에서 보냈다. 하리는 심장사상충 말기였다. 처음 동생이 병원에 데려갔을 때, 회복하는 듯 보였던 하리는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서 안락사를 말할 정도가 됐다. 수술 중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수술비는 300만원이었다.
3월18일 토요일 아침, 하리가 수술대에 올랐을 때, 나는 여진 작가님과 함께 서울 학여울역 세텍에서 열린 비건페스타에 있었다. 행사장을 돌고 나서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동생 주혜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하리 떠났어.”
주혜는 하리가 든 상자를 안고 택시에 탔다. 여진 작가님과 카페에 가기로 했지만, 작가님의 배려로 일정을 취소하고 천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천안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례식장까지는 택시로 이동했다. 대부분의 동물장례식장은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외진 곳에 있다. 주혜가 새파란 원피스를 곱게 입고 마중 나와 있었다. 아침부터 울어 눈이 잔뜩 부은 채로.
추모실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울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반투명한 유리문을 열자마자 보인 하리의 사진을 마주치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화면 속 밝게 웃는 하리 사진 아래로 다시 깨지 않는 잠에 든 하리가 누워 있었다. 그 앞에 주저앉아 이제 맡을 수도 없는 꽃을 하리 머리맡에 놓으며 들리지 않는 말을 속삭였다. 꽃냄새 더 많이 맡게 해줄걸.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주혜는 하리에게 꼭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 다시 만나자고 기도했다. 나는 다시 태어나지 말라고 기도했다. 다시는 동물로 태어나지 마.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기를….
지구에 사는 수십억 동물 중 지금의 하리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동물은 몇이나 될까. 주혜가 하리에게 다시 만나자고 말할 때, 오물을 뒤집어쓴 돼지와 좁은 우리에 빽빽이 갇힌 닭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윤회가 있어서 하리가 고기로 도살당하면 어쩌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고통받는 생을 살다 가면 어쩌지? 하리가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고 빌었다.
괜히 성급하게 수술한 건 아닐까? 다른 병원을 더 찾아봤어야 하나? 주혜는 자책하며 더 울었다. 그저 우는 동생을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리는 행복한 멍멍이였다고 생각한다. 마당 개로 태어나서 수백만원의 치료비와 몇십만원의 장례비를 아낌없이 치르는 보호자를 만났으니까.
화장과 분골을 마친 하리는 주먹만 한 도자기에 담길 만큼 작아졌다.
“오늘은 언니도 있고 채식할래. 오늘만큼이라도 그러고 싶어.”
한 끼도 먹지 못한 주혜가 말했다. 이 작은 동물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이 많은 시간과 마음과 비용을 들여놓고 죽은 동물을 맛있게 먹는 건 기이한 일이니까.
우리는 나란히 거실에 앉아 들깨수제비를 먹었다.
글·그림 초식마녀 비건 유튜버*비건 유튜버 초식마녀가 ‘남을 살리는 밥상으로 나를 살리는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4주마다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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