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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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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과 정원’ 일기장에 써본다

150㎞ 떨어진 텃밭, 집 앞에 있다면 음식물쓰레기는 소중한 거름이 될 텐데
등록 2023-03-19 01:13 수정 2023-03-19 05:11
여러 궁리를 했지만 집에서 음식물쓰레기는 퇴비가 잘 되지 않았다.

여러 궁리를 했지만 집에서 음식물쓰레기는 퇴비가 잘 되지 않았다.

텃밭과 정원, 남서향으로 앉은 마루에 늦게까지 해가 들고 툇마루엔 고양이가 노니는 집. 제1452호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의 ‘농사꾼들’을 읽고 일기장에 적었다. 딱 갖고 싶었던 집을 구했다는 그가 부러웠다. 나도 일기장에 쓰면 갖게 되려나. 이 중 가장 원하는 건 가까이에서 상시로 돌볼 수 있는 작은 텃밭. 다섯 평이면 충분할 것 같다. 우리 밭은 집에서 150㎞나 떨어져 있고, 또 제대로 관리하기엔 너무 크다는 게 아쉽다. 문 열고 나가 바로 땅을 밟으면 얼마나 좋을까.

텃밭이 위시리스트 1번인 이유는 요즘 음식물쓰레기(음쓰)로 퇴비 만드는 데 살짝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식구 살림에 밥을 열심히 해먹는 것도 아닌데 음쓰가 수월찮게 나온다. 우리 동네는 음쓰를 전용 봉투에 담아 저녁에 내놓으면 아침 일찍 수거해간다. 음쓰봉투는 2ℓ짜리를 쓰는데 이걸 다 채우는 데 일주일 정도 걸린다. 1ℓ짜리도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고 동네 슈퍼에 잘 가져다놓지 않는다. 겨울엔 그나마 괜찮은데 여름에는 일주일간 음쓰봉투를 채우는 게 불가능하다. 한나절이면 썩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냉동실에도 넣어봤지만 기분이 영 찜찜해 그만뒀다. 반쯤 썩은 내용물에 물이 질질 흐르는 음쓰봉투. 내 인생에서 빼버릴 수는 없을까.

3년 전부터 농사지으며 밭에서 흙을 퍼와 7ℓ짜리 플라스틱통에 흙 한 켜, 음쓰 한 켜, 흙 한 켜, 이렇게 모았다가 2주에 한 번 밭에 만들어둔 퇴비장에 버리고 있다. 밭에 자주 가는 농번기에는 이 방법이 할 만한데, 겨울엔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다보니 음쓰봉투로 돌아와야 한다.

지난겨울 집에서 퇴비 만드는 방법을 열심히 찾아봤다. 가장 마음에 든 방법은 흙 담은 통에 음식물을 그냥 묻어두는 것이었다. 찾아본 영상에선 2~3일이면 음쓰가 분해돼 흙이 됐다. 유용미생물(EM) 발효액을 뿌리면 시간이 단축되는데, 단점은 냄새가 꽤 난다고 한다. 흙 자체에 미생물이 있기 때문에 굳이 무언가 첨가하지 않아도 된단다. 이거다 싶어 10kg짜리 쌀통을 비우고 배양토를 채웠다. 겨울철 음쓰의 절반을 차지하는 귤껍질과 이것저것 부산물을 넣어봤는데 응? 일주일이 지나도 생생하다. 잘게 다져 넣고 자주 뒤섞어주면 더 잘 분해된다고 해서 흙 속의 음쓰를 가위로 오리고, 새로 넣는 음쓰는 도마 위에 올려 칼로 ‘쪼사서’ 넣고 아침저녁 흙을 뒤적거렸다. 베란다가 너무 추운가 싶어 주방 한쪽에 두기도 하고, 너무 메말라도 안 된다고 해서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기도 했다. 2월 한 달을 주물럭거린 (음쓰이던) 흙을 지난주 밭에 가져가 버렸다. 집 앞에 밭이 있다면 좁은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흙통을 뒤적거리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면 음쓰는 쓰레기가 아니라 소중한 거름일 텐데.

매일 누리는 작은 정원과 텃밭이 있다면, 정성껏 만든 퇴비로 철 따라 피는 꽃을 심어 사철 보고 싶다. 철마다 피고 지는 꽃을 보면 인생도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다 결국은 끝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오늘 밤에도 일기장에 적어야지. 텃밭과 정원, 그리고 고양이와 툇마루.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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