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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700명의 포용성

등록 2021-06-05 11:46 수정 2021-06-09 01:47
1366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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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폭포로 향하다보면 만나는 작은 도시 킹스턴. 그 지역의 신문에서 인턴기자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취재원을 만날 때마다 먼저 ‘호구조사’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를 만나기까지 지난 몇 년간 한국·캐나다에서의 기자 경력을 풀어내면 ‘원어민(캐나다인)도 아닌데 기사를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어김없이 받았습니다.

서울시 전문직 공무원으로 10년간 일한 베트남인 팜튀퀸화씨가 원어민(한국인)과 다른 발음 탓에 민원인에게 “외국인이죠? 상급자 바꿔주세요”란 말을 듣는다고 말할 때 제 인턴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긴장하고 주눅 들어 쭈뼛쭈뼛하며 인터뷰를 망쳤던 저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말한답니다. “제 발음이 원어민과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무슨 이야기인지 모두 알아들었고, 어떤 상황인지도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민원을 처리할게요.”

이번호(제1366호) 표지이야기 ‘이주민, 새로운 한국인’은 채혜원 객원기자의 기획입니다. 2016년부터 5년간 독일에서 이주민으로 살며 그는 차별과 편견 속에서 ‘시민으로 산다는 것’을 깊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인구의 25%가 ‘이주배경’이 있는 독일에서도 외국인을 배척하는데 이주배경 인구가 4.3%에 그치는 한국은 어떨까 그는 궁금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짧게는 5년, 길게는 22년 생활한 영주권자, 결혼이민자, 활동가 자격 체류자, 귀화자 4명을 만난 이유입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겪은 소수자의 삶을 담담하게 털어놓습니다.

“어디에서나 (주목하는) 시선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검은 피부색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진 않습니다.”(부르키나파소 출신 무용가 엠마누엘 사누씨)

“이주자가 지역사회와 통합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청소노동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일하는 이주자를 많이 보지만요.”(일본 출신 나눔의집 활동가 야지마 츠카사씨)

이주민이 한 발짝 다가오는 동안,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되레 외국인과 한 발짝 멀어진 듯합니다. 법무부는 2021년 4월26일 국적법 개정안(간이국적취득제도)을 입법예고했는데, 외국인 특혜 논란과 더불어 중국인 혐오 정서가 퍼지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적법 개정안 입법을 결사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한 달 만에 30만 명 이상이 청원에 동의했습니다.

국적법 개정안을 보면, ‘2대에 걸쳐 국내에서 출생하거나 같은 혈통을 가진 동포의 자녀’가 국적 취득을 쉽게 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필기시험·면접 등 국적 취득 절차를 생략하고 신고만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합니다. 6살 이하 자녀는 별도 요건이 없고, 7살 이후엔 국내에서 5년 이상 체류해야 합니다. 2020년 기준 그 대상자는 3930명입니다.

문제는 영주권이 있는 외국인 대다수(95%)가 조선족, 화교 등 중국 국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인 특혜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매국 행위”(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중국 사대 정권”(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한국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아동과 미성년자를 위한 제도인데 지나치게 확대해석한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반대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국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간이국적취득제도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수는 한 해 600~700명. 우리의 포용성은 얼마나 되는 걸까요.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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