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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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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농촌판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져올 미래

등록 2021-05-08 03:35 수정 2021-05-08 18:09

‘어, 이건 충청도 사투린데?’

경기도 평택시 농촌 마을에서 만난 노인들의 말투가 반가웠습니다. 저도 충청도에 한동안 살았거든요. “어르신, 여기 젊은 사람은 안 보이네요?” “없슈. 노인들은 다 죽고 자식들은 다 팔고 나가고, 이제 이 동네는 없어질 거 같어.” 아…, 혹시 어르신도 외지인한테 논 파셨어요? “못 먹고 살으니께 파는 거지, 쪼들리니께. 어디서 돈 나올 데가 없잖아유. 애들은 가르쳐야 되구. 시골 사람은 논 못 사유. 엄두도 못 내유. 농사지어서는 땅 절대 못 사.”

제1361호 표지이야기 ‘외지인이 점령한 땅’에는 평택 농부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평택은 경기도에서도 외지인이 농지를 가장 많이 사들인 지역입니다. 최근 3년10개월간 평택 농지는 2만8162건 거래됐는데, 그중 매수자가 평택시민인 경우는 4443건(15.8%)밖에 안 됐습니다. 나머지 84.2%는 외지인이 샀죠. 황해경제자유구역, 서해선 안중역 등 각종 개발사업이 진행되며 평택시 현덕면 일대 땅값이 들썩이자 ‘서울 농부들’이 논밭을 쓸어담았습니다.

농번기에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커피 한잔, 비타민주스 한잔씩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역시 시골 인심이…, 아 내가 사왔어야 하는데. 정겨운 사투리에 잠시 들뜬 마음은 노인들의 이야기에 금세 가라앉았습니다. “옛날에는 동네 사람들이 한가족처럼 살았는데, 이제는 도시처럼 삭막해졌어.” 사람 사는 집보다 폐가가 많은 동네에 남은 ‘본토박이’는 쓸쓸해 보였습니다. 이분마저 떠나고 나면 동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지요.

평택의 농촌 소멸은 복잡합니다. 논밭 사이로 새 아파트가 올라가고, 도심은 쑥쑥 커지고, 길가에 부동산이 넘쳐나는 곳이니까요.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집과 땅을 사들이는, 분명 성장하는 지역인데 왜 농촌마을은 텅텅 비어가는 걸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시세 차익을 노린 도시민들의 투기 열풍으로 땅값이 올라 정작 농민이 농지를 살 수 없게 된 이 상황을 ‘농촌판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지역개발이 농촌 소멸을 가속한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농촌이 지금 그대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속 시원하게 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지역 균형발전’을 추진한다면서 농촌 소멸과 도시 집중화를 가속하는 모순적인 일을 벌이는 건 아닌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역에 투자한 사람들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게 ‘지역 균형발전’의 목적은 아닐 테니까요.

비슷한 모순은 수도권에서도 발견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3기 신도시를 발표했습니다.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진 상황이었고, 자산 불평등을 심화할 가능성이 높은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말고는 선택지가 별로 없어 보이니까, 결국 신도시를 선택한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3기 신도시 추진과 수도권 광역교통망 확충은 결국 수도권 집중, 서울 집중을 심화할 것이 자명합니다. 지역은 더욱 쪼그라들고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줄어들겠죠. 그게 우리가 바라던 미래일까요.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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