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대검) 중앙수사부의 소환 조사를 받을 때, 저는 다른 신문사의 검찰 출입기자였습니다. 검찰 개혁 깃발을 내걸었지만 실패한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서 모욕과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검 수사기획관의 언론브리핑을 노트북에 받아치고 그것을 신문 지면에 옮겨쓰는 ‘받아쓰기 기사’를 매일 쓰면서도 저는 제 잘못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검찰을 출입하니까 수사 상황을 충실히 전달하는 게 기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었습니다.
‘현실 자각 타임’은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검찰이 휘두르는 칼날에 고통받는 그를 외면한 채, 검찰 편에서 취재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그 ‘망나니 칼춤’에 제가 추임새를 넣어왔다는 걸 알아차리자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검찰의 민낯을 몰랐던 저를 책망했지만 너무 늦은 후회였습니다. 그 뒤로도 검찰은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호흡을 같이하며 무소불위의 힘을 유지했습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검찰 개혁의 속도를 낼 때 ‘이번만은’이라는 절실한 마음과 ‘이번에도’라는 불안한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검찰 개혁은 길을 잃었고, 또다시 벼랑 끝에 서게 됐습니다.
제1341호에서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되짚어봤습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인사입니다. 몇 사람이 밀어붙여 ‘검찰주의자’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 말입니다. 그는 “검찰 권력을 나누고 쪼개자고 하면 대통령도 집으로 보낼 분”(이연주 변호사)인데 검찰 개혁을 지휘할 검찰총장 자리에 앉혔으니, 문재인 정부는 독이 든 술잔을 마신 격입니다. 두 번째 실책은 검찰의 힘을 빼는 데 실패한 반쪽짜리 법·제도 개혁입니다. 2019년 관련 법 개정에서 검찰 수사권은 축소되지 않고 수사-기소 권한 분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20년 법무부 장관 추미애와 검찰총장 윤석열의 끊임없는 충돌과 검찰의 무절제한 수사가 우리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게 합니다.
검찰 개혁을 제 궤도로 되돌려놓을 방법이 없을까요?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 실패를 분석한 책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쓴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 개혁을 원점에서 생각하자고 제안합니다. “정부 리더그룹 안에서 검찰 개혁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개혁 효과가 날 수 있도록 법무부 장관이 현장으로 내려가 검사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매 순간이 최악인 것처럼 보이지만 더 나빠질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며 이제라도 추-윤 “싸움을 끝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다시, 검찰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우원식 “한덕수, ‘내란 특검’ 후보 추천 의무 오늘까지 이행하라”
[속보] 노상원 ‘계엄 수첩’에 “북의 공격 유도”… 정치인·판사 “수거 대상”
“탄핵 반대한다더니, 벌써 들뜬 홍준표…노욕만 가득” 친한계, 일침
[단독] HID·특전사 출신 여군도 체포조에…선관위 여직원 전담팀인 듯
안철수 “한덕수, 내란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 않는게 맞다”
[단독] 윤석열, 4·10 총선 전 국방장관·국정원장에 “조만간 계엄”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내란 직후 임명…자격 없다” 국회 행안위서 바로 쫓겨난 박선영
롯데리아 내란 모의…세계가 알게 됐다
‘내란의 밤’ 4시간 전…그들은 휴가까지 내서 판교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