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온 삶을 대변하듯, 얇고 가는 손가락이 마디마디 울퉁불퉁 굵었습니다. 그 손은 12년, 13년, 혹은 17년 잠실야구장 서쪽 적환장(주변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온갖 쓰레기를 골라냈더랍니다. 구겨진 캔과 마시다 만 페트병 등이 그의 손을 거쳐 분리수거됐습니다. “지문이 안 나왔다. 관절염 같은 게 왔는지 (손가락이) 잘 안 구부러지더라.” 쓰레기 가득한 컨테이너에서 신씨를 응급구조한 현장 활동가는 당시 그의 손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제1312호 표지에 등장한, 투명 쇠사슬에 묶인 손은 ‘잠실야구장 노예’라 불리던 신태원(62·가명)씨 손입니다.
그 손이 이제 종이도 접고 색칠도 합니다. 5월1일과 4일 이틀에 걸쳐 신씨 집을 찾았습니다. 집에는 그가 사회복지관에서 만들었다는 종이 공예품과 책갈피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의 일상생활을 돕는 사회복지관 생활 코치가 말하길, 색칠 활동 때 주로 어두운색을 찾던 신씨가 이제는 초록색도, 빨간색도 쓴다고 합니다. 1년 넘게 함께 거주하는 룸메이트도 돕습니다. 룸메이트 ‘박 선생님’(64·가명)은 5년여 전 전남 신안 염전에서 구출된 또 다른 학대 피해 지적장애인입니다. 신씨는 거동이 불편한 박 선생님이 넘어질까봐 화장실 바닥을 물기 하나 없이 닦아내곤 합니다. 야구장 근처에서 곰팡이 핀 빵을 주워 먹던 손이 이제는 고추장멸치볶음도 만들 줄 압니다. 뒤늦게 찾은 손의 평범한 쓰임새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박탈당하고 ‘노예’처럼 부려지는 장애인이 신씨만은 아닐 것입니다. 장애인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 대가나 수당을 가로채는 행태가, ‘범죄’라는 인식 테두리 안으로 들어온 것은 2014년 ‘염전 노예’ 사건이 불거진 이후입니다. 5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수사기관이나 정부, 법원의 인식은 과거에 머무른 듯합니다. 노인학대나 아동학대, 장애인 차별 관련 통계는 매년 발표되지만, 국가 차원의 장애인 학대 관련 통계는 2017년 장애인옹호기관이 설치되고 나서야 집계·발표되기 시작했습니다. 폐쇄된 공동체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노예 노동이 세상 밖에 알려지기도 쉽지 않은데, 가해 사실이 드러났다 해도 고용노동부와 경찰·검찰, 법원을 거치면 사건은 한없이 쪼그라듭니다. 변호사와 인권활동가 16명이 잘못된 수사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프로젝트 ‘울력과 품앗이’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잠실야구장 노예’, ‘사찰 노예’를 비롯한 장애인 노예 노동 다수가 익명을 요구한 시민들의 언론 제보로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또 한 번 시민 제보에 기대봅니다. 어렵게 발견되고도 가해자 처벌은 유야무야돼버린 ‘부실수사’ 사건을 목격한 시민들의 제보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제보 접수: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강원 human5364@daum.net,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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