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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9-12-24 13:28 수정 2020-05-03 04:29

엊그제 마감에 쫓기듯 미루고 미뤘던 건강검진을 했다. 차례를 기다리다보니 벽에 걸린 낯익은 그림 하나가 눈길을 끈다. 1천억원 넘는 가치를 지녔다는 그림을 보면서 발칙한 의문을 품는다. 저게 뭐라고, 저 인물화 한 장에 터무니없는 가치를 매길까.

350년 전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는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할 만큼 귀한 그림이지만, 그림에 무지한 내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가치다. 재화와 용역에 매기는 가치가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지만, 그 잣대의 크고 작음이 부질없단 생각에까지 미쳤다.

어쩌면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서 대상의 가치를 제대로 매기지 못하는 건지 모른다. 페르메이르란 작가를 알았다면, 검은 바탕 위 신비로운 표정을 짓는 그림의 특색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한때 유행한 “마데 인 코리아, 한번 빠져보시겄습니까?”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느 나라에서 어느 회사가 만들었는지에 따라 비슷한 제품의 가격도 천양지차다.

안타깝게 디지털 공간에서 소비되는 뉴스는 대부분 어느 언론사의 어느 기자가 쓴 건지도 모르는 채 유통된다. 네이버에서 봤는지 다음에서 봤는지 기억할 뿐이다. 뉴스 소비의 현실도 다를 바 없다. 그래도 여전히 종이 잡지를 보는 독자, 소수에 불과하지만 디지털에서도 뉴스 브랜드를 찾아보는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짧은 이야기가 있다. 이 어떤 매체이고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와 교열, 사진, 취재 기자가 누구인지 안다면 꼬리표 없는 기사만 봤을 때 매길 수 있는 가치와 또 다른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짧은 지면에 취재기자만 추려 거칠게 한두 줄로 소개한다.

박태우는 집요하다. 노동 이슈와 정책에서 독보적이다. 이슈를 발굴하고 끌어간다. 공부로 전문성을 더 키우고 있다.

조윤영은 하나라도 더 듣는다. 한 명이라도 더 만난다. 책상머리가 아닌 발품을 판다. 노동으로 상처 난 이들을 주목한다.

방준호는 토씨 하나까지 세심하게 다루는 연금술사다. 사색과 진정성은 그의 글이 지닌 힘이다. 끊임없이 공부해 쓴다.

이재호는 못하는 게 없다. 운동, 통계, 일기쓰기, 영어…. 보건복지 쪽이 전공이다. 난민 기사를 가장 많이 쓴 기자다.

변지민은 군더더기가 없다. 기사에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다. 익숙하고 편하지만 낡은 틀을 깬다. 혁신하고 창조하는 기자다.

장수경에게 탁월한 제목은 기본이다. 기사 또한 흠잡을 데 없다. 섬세한 동시에 따뜻한 시선을 지녔다. 소수자 인권에 눈이 밝다.

이승준은 의 ‘모든문제연구소장’이다. 척척박사다. 다독가다. 내세우지 않고 몸을 낮추는 기자다. 본디 에너지에 관심 많다.

하어영은 가슴이 뜨겁다. 굵직한 이슈에 늘 자기 흔적을 남긴다. 섰다가 넘어지고 다시 서는 오뚝이다. 사건 전문이다.

전정윤은 공감 능력이 탁월하다. #오빠미투와 청소년 자해는 그가 아니면 길어올릴 수 없는 기사다. 저 낮은 곳에 시선을 둔다.

구둘래는 고경태를 잇는 최고 카피라이터다. 표지 제목은 주로 그가 빚었다. 낙천적 성격에 천재적 재능을 갖췄다.

이춘재의 펜은 예리하다. 네 편 내 편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문장을 벼려 글에 날을 세운다. 그는 법조 전문이다.

서보미는 따뜻하면서도 각을 세우는 기자다. 잘못된 것에 분노하고 슬픔에 쉬이 공감한다. 삶의 숱한 현장을 기어이 기사로 만들어낸다.

김현대는 최고령 기자다. 담백한 문장은 맛깔스럽다. 인간미 넘치는 그에게 기사는 나와 우리의 공존을 지향한다.

허윤희는 우리에게 없는 눈이 있다. 무심코 지나치는 것을 포착한다. 삶의 아픔과 소소함을 따뜻하게 잘 담아낸다.

열넷 기자들의 삶과 생각, 시선은 세상과 접점을 이루며 때론 충돌하며 기사가 되고 표지가 된다. 다 담아낼 수 없지만 이들이 취재와 기사로 풀어내는 세상은 매주 에 표현된다. 감히 최고의 기자들이 쓰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기사라고 말하고 싶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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