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아직도 계시네.’ 몇 해 전 우연히 그를 다시 본 날, 문득 속으로 든 생각이었다. 그의 유니폼 상의는 처음 봤을 때와 달랐다. 지금은 그때와 또 다른 색 작업 점퍼를 입고 다닌다.
그와 가끔 마주칠 때마다 어색했다. 인사말을 먼저 건네곤 했지만, 더는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아서 언젠가부터는 눈인사로 대신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는 척하는 게 어색해졌다.
오늘은 아침 일찍 그가 내 자리 옆으로 와서 일했다. 왼쪽 벽에 붙어 있는 쇠문으로 된 10㎝ 두께의 캐비닛 세 개를 열더니,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고선 눈 마주칠 틈을 주지 않은 채 떠났다. 그가 떠난 뒤 호기심에 철제문을 열어보니, 회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전선들과 스위치들이 있다. 8개월 가까이 이 자리에서 일하면서 그 속을 처음 들여다봤다. 바로 든 생각이란 ‘음, 이런 어려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였다.
그를 처음 본 건 2010년 노동조합 일을 하면서다. 사내 비정규직을 줄이고자, 이것저것 알아보다 기계와 전기 설비를 도급업체에 맡긴 걸 알았다. 그때 처음 그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실태 파악은 했으나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조합을 떠났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회사에서 그의 모습을 보면서, 후임 조합과 회사가 나서서 그의 고용 형태에 좋은 변화가 생긴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8년이 지난 지금, 그 외에 그 일을 하는 사람 중 아는 얼굴이 없다. 모두 떠났다. 그조차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인제야 확인해보니, 그는 업체가 바뀔 때마다 퇴사와 입사를 반복했다. 그 자신이 계속 남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회사는 위장 도급 시비를 없애기 위해 도급업체 직원들에게 근무 지시나 간섭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곳을,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서울 공덕동에서 600여 명이 함께 일하고 있지만, 그는 우리가 되지 못하고 그들이 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엔 다 우리였다. 언제부터 우리와 그들로 갈렸다. 우리는 ‘투명한’ 그들의 존재도 모른 채 말도 섞지 않는다. 부러 안 하는 게 아니라, 모르니 할 말이 없어서다. 대여섯으로 얼마 되지 않는 수이긴 하지만, 그들은 좀체 표시 나지 않게 일한다.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는 계층이 되었다. 주로 40대인 그들은, 발버둥 치다가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1994년생 김용균들’의 미래일지 모른다.
나와 우리의 고통은 익숙해질 수 없다. 하지만 너와 그들의 고통은 금세 잊히거나 익숙해진다. 노동자 열 중 넷이 비정규직인 나라, 비정규직 천지인 나라에서 ‘김용균들’의 고통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건 결코 그 수가 적어서가 아니다. 비정규직은 배제되는 타자이고, 우리와 묶일 수 없는 그들이어서다. 죽어서야 가끔 주목받지만, 주목도 받지 않는 죽음이 또 얼마나 많은가. 주목받은 죽음조차 얼마나 쉽게 잊히는가.
김용균씨가 숨진 뒤 곳곳에서 울려퍼진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그런 현실에 대한 분노이자 절규다. ‘김용균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들렸던 외침이다. 5년 전 신년호 표지 제목이기도 했다. 또다시 되풀이되는 비극 앞에, 김용균씨 영정 앞에 우리의 첫마디는 “미안하다”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제야 비로소 다시 한번 너는 내가 되고, 그들은 우리가 될 수 있다.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고, 그들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된다. 서울 광화문광장 추모 집회 참석자들이 들었던 손팻말과 추모 게시판에 붙은 편지는 그 다짐들이다.
“너는 나다.” “내가 김용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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