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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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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4-24 15:01 수정 2020-05-03 04:28

“21 편집장 생각 있냐?”

일본 도쿄에서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 준비를 서두르던 2017년 3월23일로 정확히 기억합니다. 고경태 전임 출판국장이 페이스북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날 마침 3년6개월에 이르는 제 도쿄 생활에서 벗이 되어준 노히라 신사쿠 피스보트 공동대표와 점심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와 밥을 먹고,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봤냐”는 고 전 국장의 독촉을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해보겠다”고 답한 것을 계기로, 저의 ‘컴백’이 현실화했습니다.

몇몇 ‘올드 독자’님들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전 2005년 봄부터 2008년 봄까지 꼬박 3년 동안 에서 사회팀 기자로 일했습니다. 그 무렵 은 사회 트렌드를 선도하던 ‘힙’한 잡지였습니다(영화 에선 PC통신 채팅으로 알게 된 한석규와 전도연이 서울 종로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을 들고 만납니다). 현장을 구르며 ‘평택 캠페인’이나 ‘야스쿠니 캠페인’ 등 굵직한 기획을 했고, 현안이던 경부운하나 비무장지대(DMZ)를 주제로 다양한 기사를 썼습니다. 기사를 쓰면 반응은 호의적이었고, 그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습니다.

편집장으로 에 돌아오며 ‘재미있고, 잡스러운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거대 담론을 얘기하기보다, 우리 일상의 크고 작은 얘기를 지면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때 왜 좀더 과감하고, 좀더 재미있고, 좀더 파격적이고, 때로는 좀더 뻔뻔하지 못했을까 자책합니다. 긴 얘기는 줄이고 제가 1년 동안 만들었던 표지를 나열해봅니다.

일상적인 지면 제작보다 더 힘겨웠던 것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미디어 환경의 변화란 콘텐츠 유통 단계의 변화만을 말하진 않습니다. 이미 콘텐츠는 종이 신문이나 잡지를 넘어 온라인과 모바일로 유통·소비됩니다. 그 때문에 ‘레거시 미디어’(전통 미디어)의 경영은 악화하는 중이고, 이것은 모두가 아는 얘기입니다. 이에 더해 지난 1년 동안 미디어 환경 변화라는 ‘혁명적 파고’가 한때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언론사의 편집권(콘텐츠 생산 단계)으로까지 밀려들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1인 미디어로 무장한 독자들은 주어진 기사를 읽는 수용자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미디어그룹을 압박합니다. 투정같은 얘기지만 그래서 때론 저희에 대한 독자님들의 질책이 너무 아프기도 했습니다. 어찌 됐든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미디어그룹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후임으로 오는 이는 류이근 전 디스커버팀 에디터입니다. 2000년 한겨레에 입사해 법조와 정치부를 두루 거친 뒤 이명박 정권의 자원외교, 최순실 게이트, 강원랜드 채용 비리 등 최근 한겨레가 내놓은 주옥같은 탐사취재를 도맡아 진행한 유능한 기자입니다. 류 신임 편집장에게 무거운 짐을 넘겨놓고 저는 한겨레 국제부로 이동합니다. 지난 1년은 저에게 벅찬 감동이었고, 시린 상처였습니다. 여러분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굿바이!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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