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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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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MB

등록 2018-03-27 14:28 수정 2020-05-03 04:28

“야 이 새끼들아,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냐!”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생각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보다 36년 앞서 서울시장을 지냈던 ‘원조 불도저’ 김현옥(1926~1997)입니다. 한국 도시계획의 권위자 고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김현옥은 말 그대로 일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임 첫해인 1966년에는 지하도·육교·고가도로 등 도로 건설에 미쳤고, 둘째 해인 1967년에는 도심 속 흉물로 변한 세운상가에 미쳤고, 1968년에는 한강 개발과 여의도 윤중제 건설에 미쳤으며, 마지막 해엔 시민아파트 건설에 미쳤다고 합니다. 남산 1·2호 터널을 판 것도, 사직터널을 뚫은 것도, 삼청터널을 건설한 것도, 얼마 전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변한 서울역 앞 고가도로를 놓은 것도, 북악 스카이웨이를 만든 것도 모두 김현옥이었습니다.

글 앞에 소개한 욕설은 김현옥이 ‘실패한 근대화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민아파트를 건설하며 했던 말이라 합니다. 그는 시민아파트를 주민들이 접근하기 편한 평지가 아닌 산 위에 지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가장 먼저 지은 아파트는 서대문구 현저동 금화아파트 19개동이었습니다. 아파트를 산 위에 지으려 하자, 서울시 몇몇 국장·과장이 “아파트를 높은 데 지으면 위험하고, 주민들이 불편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반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김현옥이 위와 같은 답을 내깔겼다 합니다. ‘무데뽀’ 행정, 전시행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말이지요.

이렇게 시작된 공사가 제대로 마무리될 리 없었습니다. 김 시장의 건설 철학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양을 이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파트 터에 대한 제대로 된 측량이나 지질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공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다 사고가 터집니다. 당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마포구 창천동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입니다. 건설업체는 계약을 따낸 뒤 수수료(커미션)를 받고 무면허 업자에게 공사를 넘겼고, 업자는 구청 건축과에 뇌물을 흩뿌렸으며, 건축과 실무자들은 부실 공사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적잖은 용돈을 받아 챙겼습니다. 결국 입주 한 달이 못 된 1970년 4월8일 새벽 6시20분 아파트 한 동(15동)이 폭삭 내려앉습니다. 이 사고로 32명이 숨지고 38명이 다쳤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 참사에 대해 “불도저식 건설 행정과 전시 효과적인 겉치레 실적주의, 부패한 관료 행정이 한계점에 도달해 스스로 자기모순을 노출시킨 것이 이번 사건의 진정한 의미”라는 평을 내놓습니다.

3월23일 새벽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습니다. 그의 구속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38년 전 김현옥의 행정을 날카롭게 비판하던 전문가들의 지적에서 21세기 한국 사회는 얼마나 자유로운가요. 그런 마음을 담아 제1205호는 ‘우리 안의 MB를 돌아보자’는 뜻에서 MB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오승훈 편집팀장은 2007년 한국 사회가 MB를 대통령으로 뽑을 때 우리 “마음속에 ‘세속적 욕망’이 꿈틀거렸음을 부인할 순 없다”고 지적합니다. 또 김완 이슈팀 기자는 “MB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부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MB는 우리가 만든 세계에서 성공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외칩니다. 이명박이라는 괴물은 외계에서 침범한 ‘에일리언’이 아닙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잉태하고 키워낸 우리의 일부이자, 어쩌면 당신과 나의 맨얼굴을 가장 에누리 없이 보여주는 잔인한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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