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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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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마루타

등록 2017-12-05 14:00 수정 2020-05-03 04:28

제가 ‘빅데이터’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본 것은 2013년 3월이었습니다. 그 무렵 도쿄 특파원을 준비하던 저는 일본 NHK의 간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NHK 스페셜》을 즐겨 보았습니다. 그때 일본에선 동일본 대지진 같은 메가톤급 자연재해가 나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어떻게 세울지를 놓고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NHK와 일본 방재 전문가들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재해가 나자마자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 패턴’이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요. NHK는 2012년 9월부터 일본 구글, 트위터 등 8개 기업·단체의 도움을 받아 수십~수백만 대에 이르는 차량 내비게이션의 이동 정보, 1억8천만 건의 트위터 메시지 등을 수집했습니다. 수십~수백만 명의 사람이 남긴 위치 정보와 트위터 메시지를 이용해 대규모 자연재해가 났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한 것입니다. ‘정말, 참신한 발상이다’라고 잠시 감동한 뒤, 빅데이터란 단어를 기억에서 지웠습니다.

한동안 잊었던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이는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였습니다. 공채 10기 출신인 이원재 선배는 제가 도쿄에 있을 때 이따금 연락해왔습니다. 지난 4월 귀국해 편집장을 맡은 뒤, 그에게 “요새 핫한 경제 이슈를 주제로 3주에 한 번 칼럼을 써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칼럼이 얼마 전 연재가 끝난 ‘이원재의 인사이트 솔루션’입니다. 그 글에서 이원재 선배가 두어 차례 강조한 것이 빅데이터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최근 내가 무엇에 관심 있는지 가장 많이 아는 곳은? 구글이다. 전자우편을 사용하려고 무심결에 로그인해 이곳저곳 검색하면 관련 광고가 계속 화면에 뜬다. 내가 어떤 정치적 성향이고 어떤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는지 가장 많이 아는 이는 페이스북이다. 같은 이치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와 영화를 가장 잘 아는 곳은 유튜브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들은 어쩌면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제1170호 인사이트 솔루션)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빅데이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카카오, 네이버 등 정보기술(IT) 기업에 데이터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금광입니다. 데이터 수집 모델을 만들고 이를 분석하는 기술을 익힌 기업은 말 그대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데이터는 곧 힘이고 권력이자 무한한 부를 만들어내는 사업 기회입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이미 우리 일상에 침투해 사람들의 관심과 취향을 유도하고 소비 패턴을 규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끈질긴 노동이 필요했던 여러 작업이 자동화됐고, 인공지능이 가파르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20~30년 후엔 현존하는 직업 대부분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중요해지는 것은 ‘인간의 노동력’이 아닌 인간의 행동 특성에 대한 데이터입니다. 이런 상태가 방치되면 우리는 직업을 잃은 채 최소한의 소득만 보장받으며 사육당하는 영화 속 마루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두 개 거대 기업이 빅데이터를 독점하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제한되고 민주주의가 파괴됩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에선 이같은 정보 독점 시대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소개합니다. 지난해 9월 온라인 공간을 지배하는 소셜미디어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인 트위터를 수십만~수백만 시민들이 공동 소유하자는 협동조합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 운동에 찬성하느냐고요? 네, 물론입니다. 빅데이터는 페이스북의 소유물이 아닌 바로 나, 인류 공공의 자산이니까요.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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